▲ 대한노인회 전국 지부장들이 지난 3월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220만 경로당 노인들의 외침'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올리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을 미덕으로 내세운 이 나라에서 노인들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주는 모임장소에 이같은 과잉 규제는 지나친 노인 괄시이며 현대판 고려장이다." (탁태균 대한노인회 김제지회장)
"불법 대선자금이 불거진 마당이라 선거관리에 대한 눈들이 심상치 않다. 이런 마당에 선거법 개정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대한노인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온라인 '맞장'을 떴다. 전국의 어르신들은 선관위의 홈페이지에 '도배질'로 공격을 시작했고, 선관위는 해명자료까지 내며 노심(老心) 달래기에 나섰지만 "그래도 선거법 개정에서 물러설 수 없다"며 버티는 상황이다.
성난 노년 누리꾼들 "경로당이 금기의 땅 됐다"
노인들이 서툰 컴퓨터 실력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시위를 벌이게 된 사연은 이렇다.
작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자체장 뿐만 아니라 예비 후보자들은 선거구의 구민과 관련된 기관이나 시설에 일체의 기부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이에 따라 그동안 예비 후보자들이 경로당에 기부해온 쌀이나 부식 혹은 한 달 30~40만원 정도의 지원비 등도 끊겨버린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인들은 선거법 개정을 '경로당을 죽이는 개악'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노인회 전국 지부회는 지난 3월 '220만 경로당 노인들의 외침'이라는 성명서를 보건복지부, 중앙선관위 등의 홈페이지에 올려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로당은 부식비를 못 내는 노인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인간미가 흐르는 곳이었다"며 "그러나 선거법 때문에 경로당에 어떤 물건도 보낼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로당은 발길이 끊긴 금기의 곳이 되어 버렸다"며 "한이 쌓여 울부짖는 노인들의 진솔한 외침을 들어라"며 선거법 개정안의 재개정을 촉구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지난 7월 해명자료를 발표해 "경로당을 대상으로 한 노인복지 사업이 모두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고 성난 노심(老心)을 달랬다.
선관위는 "개정안은 지방선거 예비후보자인 현직 단체장이 직무행위를 빙자해 선거구민에게 기부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취지"라며 "또한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 직무활동이 현직 단체장의 개인 업적 홍보용으로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또 "각 지자체가 세부 시행계획을 세워 해당 구역의 단체를 지원할 경우에는 선거 시기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관위 "예비 후보자 기부 막으려는 취지, 지자체 지원은 가능"
그러나 이같은 선관위의 설득에도 노인들의 분노는 5개월이 지나도록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선관위는 물론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심지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는 등 노년층 누리꾼들은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선거를 대비해 지자체장이나 지역 유지들이 경로당을 찾아 얼굴을 내밀고 금품이나 음식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사전 선거운동이 많아 선거법 개정은 어쩔 수 없다"며 "마침 불법 대선자금 등이 불거진 마당에 선거법 개정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한 그는 "경로당 운영이 어렵지 않도록 보건복지부와 충분히 논의를 거쳤다"며 "개정안의 취지를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도 "경로당 노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있다"면서 "무의탁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등 노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