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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왕실의 마지막 후예인 송나라의 마지막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16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7
조회수 : 101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07 13:11:29

벽공이 제위 3년 만에 죽자, 아들 척성(剔成)이 즉위하였다. 척성 재위 41년에 그의 동생 언(偃)이 그를 습격하니, 척성은 패하여 제나라로 도망을 갔다. 언은 스스로 즉위하여 송나라 군주가 되었다.

 

언은 11년에 스스로 왕(王)이라고 칭하였다. 동쪽으로는 제나라를 싸워 이겨 다섯 채의 성을 탈취하였다.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싸워 이겨 토지 300리를 탈취하였다. 서쪽으로는 위(魏)나라의 군대와 싸워 이겼다.

 

그리하여 제와 위(魏)나라는 송나라의 적국이 되었다. 그가 쇠가죽 주머니에 피를 담아 걸고는 활을 쏘아 맞추니, 그것을 「사천(射天)」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는 술과 여인에 빠졌다. 대신들 중에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그를 쏘아 죽이곤 하였다. 그리하여 제후들은 모두 그를 걸송(桀宋)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송나라 왕은 다시 그의 조상인 주(紂)의 전철을 밟고 있으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송나라의 건국자인 미자(微子) 개(開)는 은(殷)나라의 왕이었던 을(乙)의 큰아들이며,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입니다. 은 멸망 이후 주무왕은 은주왕의 아들인 무경녹보(武庚祿父)에게 은왕실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고, 관숙과 채숙에게 무경녹보를 보좌토록 하였습니다. 주무왕 사후, 주성왕 때 주공단이 관숙과 채숙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 그를 무경녹보 대신 은 왕조의 후사로 대체하여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자는 「미자지명(微子之命)」을 지어 이 뜻을 널리 알리고 송을 건국하였습니다.  

 

 

송나라 왕 언이 재위 47년에 이르렀을 때, 제민왕(齊閔王)이 위(魏)나라 그리고 초나라와 더불어 송나라를 정벌하여 왕인 언을 죽여 송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그 토지를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 출처 : 사기 송미자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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