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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였어요?
게시물ID : gomin_16166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mdvb
추천 : 1
조회수 : 33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4/15 00:15:31
전 모르겠어요.

저는 음. 일단 스물다섯살이구요. 
일러스트레이터에요. 일단 동화책을 위주로 하지만 학습지도 그리고, 핸드폰 배경화면 같은것도 그리고 신문이나 광고나 그런데 들어가는 삽화를 그리는 사람이에요.
별로 흔한 직업은 아니라서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이쪽 일이 그렇게 전망이 밝지가 않아요. 뭐 요새 어떤 직업이 전망이 좋겠느냐만은..
아직 신인이고 일이 많이 들어오는 편도 아니고 해서 파트타임으로 미술학원에서 일해요.유치부 담임이구요. 그냥...출근해서 아기들이랑 그림 그리고,
퇴근해서 본업으로 삼는 그림작업 하고, 자고..일어나서 또 출근하고..목표가 있다면 제 이름으로 나온 동화책이 가지고 싶어요. 
그 책으로 제가 가르치는 나이의 아이들이 희망도 얻고,여러가지 상상도 하고 
삶의 한 부분에서 조그맣게나마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때 왕따를 되게 심하게 당했어요. 그래서 몇년 내내 말한마디 하지 않고 학급문고에 있는 책만 돌려보고 돌려보고 또 돌려봤어요.
애들은 제가 만지는 책들은 더럽다고 안 봤기 떄문에 덕분에 책은 온통 제 차지였거든요. 좋았어요.
그 때 저를 받아주는 건 가족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친구들은 더더욱 아니였기 때문에,제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책밖에 없었어요.
그때 읽었던 예쁜 내용들이, 그리고 거기서 저를 보고 웃어주는 그림들이 너무 좋아서 조금씩 끼적인 그림들이 결국 저를 여기까지 만들어 줬네요.

저는 제 그림이 아이들에게 희망이길 바래요. 보고 잠깐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그리고 그리는 저 또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근데 잘 모르겠어요. 헬조선에서 그림쟁이로 산다는건 지정된 엄청 타이트한 시간에 맞춰서 미친듯이 밤새워서 요구하는 그림을 찍어내고 찍어내고 또 무한대로 찍어내고,
기계처럼 2주만에 백여장을 찍어내고 나면 고작 백만원 채 안되는 돈에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삶은 삶대로 무너지고.
이게 제가 원하는 그림쟁이의 삶이었나,회의감이 들어요. 사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정말 힘들었는데, 
앞으로 더 힘들여서 가야 하는 길이 그냥 공장에서 기계돌리듯 그림 찍어내는 삶이라니.

요 며칠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벌써  가고싶던 회사에서 인정받아서 임원직까지 노리는 아이도 있고, 너무너무 행복하게 꿈을 이루려 유학 다녀온 애도 있고,
나는 이 일을 하는게 행복해, 이런 목표가 있으니까 더욱더 오기를 가지고 붙잡고 올라갈거야, 정말정말 행복해..라는 말들을 하는데

저는 출근해서 시급 얼마에 애들 돌보고 원장님 눈치보고 시키는 일 하다가 퇴근하고, 집에와서 지친 몸 이끌고 그림 그리고.
마감해야하는데 많이 자면 죄책감느끼면서 일어나서 출근하고,친구들 만나거나 밥 먹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그림 그리고...
별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나는 그냥 일개 알바생에 초보작가일 뿐이고...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사는 인생인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내 미래는 뭘까.
전업작가가 되어서 일하고 일하고 가끔 링겔맞고 또 일하러 가는 삶?
애들 가르치면서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

모르겠어요. 분명 나는 멋진 작가가 될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달려왔는데.

친구하고 이야기해봤더니 워홀을 가거나 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보라고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워홀도 목적없이 가서 그림도 못그리고 의미없이 알바만 하다올까 겁이 나요.

제 인생의 반짝반짝함은, 원하는 걸 이뤄내는 삶은 어디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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