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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결혼하게된 이야기
게시물ID : love_16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angini
추천 : 2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4/21 0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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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우선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야기는 무척 길고, 또 현실이라 보기엔 우연적인 부분도 있어 받아들이시기에 조금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기억이 잘 안나 각색한 부분도 드문드문 있네요ㅋㅋㅋ 또 반말로 진행될 예정이기에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ㅜ 우리들이 결혼하게 된 이야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공부를 썩 잘 하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의욕만은 충만했기에, 당시 어머니를 졸라 조그만 종합학원을 다니게 됐다. 들어가기 전 반배치 고사를 봤는데 결과는... 총 5개의 반 중 뒤에서 4번째의 반에 들게 됐다. 결과에 낙심하던 것도 잠시, 학원을 다니게 된 나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위해 반을 옮기던 중 만난 그녀,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은 여기 쓰라고 만들어 진 것 같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한눈에 하얀 피부, 뿔테를 썼지만 오목조목 뚜렷이 드러나는 이목구비, 쌍커풀이 짙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눈. 정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한 눈에 반한 나는 그녀가 들어가는 반을 유심히 보았으나... 그렇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다. 5개의 반 중 1번 째 반을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본 후 나는 조용히 의지를 불태웠다. '반드시 저 반에 들어가고 말리라.' 내 공부습관이 잡히게 된 건 이맘때 쯤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치는 반 배치고사에서 매 번 올라가게 되더라도 총 3개월이 걸렸기에 나는 목숨을 걸고 공부했다. 초등학생이 목숨 걸고 공부한다는 표현도 웃기지만 그 때의 난 그만큼 절실했다. 한 칸, 두 칸, 세 칸, 연이은 3번의 배치 고사에서 3연승?을 기록한 나는 드디어 입성했다, 첫 번째 반에. 당시 그런 예는 드물었기에 그 아이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드디어 그녀와 만났다는 생각 뿐.
 이윽고 첫 번째 반에 들어가게 된 나는 그녀와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예쁜 외모에도 예상 외로 털털한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당시 꽤 뚱뚱한 편이었는데 그런 나의 외모에도 차별없이 나를 대해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에 그녀에게 빠져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첫 번째 반에서 공부를 한 지 2년 남짓 지난 시점, 평소 부끄럼을 많이 타던 나는 여자에게 그러한 성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고 그녀와 나는 허물없이 장난을 칠 수 있는 사이는 되었지만그 동안 별다른 진전 없이 공부에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무렵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한 특별반이 신설된다는 얘기가 들렸고, 학업에 뜻이 있었던 그녀와 나는 당연히 그 반에 지원했다. 특별반에 들어간 이후로는 더 많은 시간을 그녀와 보내게 됐다. 그 사이, 그녀는 많이 성장해 풋풋한 모습도 얼핏 남아있었지만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좀 더 진해져 그녀의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은 사춘기 소년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이성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나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후에는 서로 원하던 학교에 합격해 그녀는 외고에, 나는 자사고에 입학했고 고등학교 시절은 아무런 연락없이 지냈다. 물론 그 동안에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 만남은 대학에 합격하고 난 직후, 20살 때였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에만 목을 매서 그런지 나는 내가 원했던 모 지방 의대에 합격하게 되었고 그녀 또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명문사립대학에 합격한 직후였다. 번호를 수소문해 용기내서 연락한 나를 그녀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서로의 합격을 축하하며 얼굴을 한 번 보기로 했었다. 그렇게 3년 만에 만난 그녀는 몰라보게 예뻐져있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낀 그녀는 흰 피부가 더욱 돋보였고 살을 조금 뺀 탓인지 희미한 쌍커풀은 더욱 또렷해져 있었다. 새내기의 서투른 꾸밈 솜씨가 느껴지지만 그녀의 미모는 이를 돋보이게 하기 충분했다.말주변이 없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글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게 슬프다. 그 동안에는 나도 살을 굉장히 많이 뺐었고 그 탓인지 그녀를 만나며 기대아닌 기대를 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 것도 잠시, 옛 추억과 그리운 얼굴들을 술잔에 담아 마시던 중 으레 20대 남녀가 그렇듯 연애 얘기가 나왔다. 웬 걸...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영어학원에서 만난 5살 연상의.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말 외에는 당시 내 심경을 더 옳게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애써 덤덤한 척을 하며 그녀의 연인에 대해 질문했지만 머리가 멍해져 이후에 얘기한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 자리를 잃어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간절한 인연은 이뤄지지 않는구나.'
 세 번째의 만남은 무려 5년 후였다. 내가 본과 4학년 (6년 과정이라 이는 6년차이다.) 때 나는 이별을 했다. 예과 2학년 (2년차) 시절 외로움에 몸부림 치던 모태 솔로 본인은 어떻게든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었다. 그 무렵 우연한 계기로 연락이 닿은 간호학과 후배(그런데 삼수를 해서 나보다 1살 연상이었다.)와 만나서 밥을 먹고, 다음에 만나 영화를 보고, 다음에 만나 고백을 하여 모솔 세월 21년차의 나도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에게 정말 미안하게도 당시에는 철없는 마음에 연애를 시작했었다. 그럼에도 1년, 2년, 3년, 4년... 많은 다툼과 짧은 이별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연애를 계속하게 됐고 이윽고 내가 본과 4학년이 될 때까지 연애는 지속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녀의 짜증과 이를 받아주다 주다 지친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게 된다. 이전에도 많은 짧은 이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의대생들은 본과 3, 4학년차엔 실습을 나가게 되는데 당시 나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습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의 증례를 가지고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정신과는 이 증례 발표가 매우 괴랄해 그 용량만 워드로 30장에 육박하며 그 안엔 환자의 일생의 거의 모든것을 담아야 한다. 당시 나는 정신과 증례 발표를 생전 처음 해보는 데다가 맡은 환자가 우울증이라 환자에게 가 말을 걸면 정말 네, 아니오 의 긍정, 부정조차 한 마디도 않는 환자여서 이 분을 대상으로 워드 30장을 채우는데 정말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다. 나흘 밤을 꼬박 샜었다. 그렇게 못 자도 사람 안 죽더라. 10분, 20분씩 쪽잠을 자며 증례를 준비하던 도중 어머니의 번호로 비보가 날아왔다. "OO아, 너의 친 할머니, 돌아가셨다." 눈물도 안 나왔다. 이미 증례 발표로 인해 스트레스는 극으로 달해있는 와중 더구나 정신과에 관심이 있던 터라 교수님께 잘 보이기 위해선 이 기회가 절대적이었다. 도저히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친 할머니의 입관식 마저 지켜볼 수 없었다. 극심한 피로와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던 도중, 악재는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했던가. 전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문제로 고등학교때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다녀 절친이었던 녀석과 오해로 다투고 절교를 하게 됐다. 이것 저것 겹친 악재로 도저히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단 1분도 못 자고 초췌한 꼴로 출근하는 일이 잦았다. 도저히 안 되겠어 동네 정신과에 수면제를 처방받으러 갔다. 하지만 역시 정신과 전문의는 다른 것인가, 나를 보고 우울해 보인다며 이것 저것 묻더니 초기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항우울제도 수면제와 같이 먹어보자 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엔 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약을 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가라앉은 기분이 도통 뜨질 않았다. 그러길 며칠, 점점 술에 대한 의존도 심해져 종래에는 매일 소주 3병 이상 먹기에 이렀다. 죄책감과 이별로 인한 슬픔에 몸부림치며 술로 매일을 보내던 중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스에 달린 칼날은 상당히 날카롭다. 처음엔 손목, 그 다음엔 다리, 술을 먹고 차례차례 그었다. 우울증이 참 개ㅈ같은게 정말 사람 하나를 병신만든다. 사람 마다도 달라서 온갖 고난은 다 겪고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열심히 살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무런 요인 없이도 미친듯이 우울해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손목을 그을 때까진 오히려 괜찮았는데 다리를 긋고 나니 이게 서자마자 압력이 올라가 피가 시냇물 흐르듯 흘렀다. 꽤 큰 기숙사 방 바닥의 반을 흐르는 내 피로 적시고 나서야 내 친구놈들은 날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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