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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좀 많네요...
게시물ID : history_161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롬사용자
추천 : 5
조회수 : 121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07 22:18:16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894542

댓글 보니까 연의 역사 혼동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오해하고 계시는 분도 좀 계신듯

일단 몇가지만 수정해 보죠

먼저 원소에 대해 말해봅시다
원소라고 하면 귀공자 출신으로 가문의 힘을 등에 업고 일어났으나 지나치게 우유부단하게 처신하고 결국 후계구도도 제대로 못짠 상태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던 조조에게 박살남-뭐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일단 원소는 적자가 아니라 서자입니다
그 시대의 적서차별이 조선시대의 그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서자가 가문의 힘을 업었다는건 좀 어불성설입니다
원소가 가문의 후광을 업은 것은 혼자 힘으로 기주를 접수하고 난 뒤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원소가 우유부단하다는 평이 많은데 이건 연의 악영향이라고 봅니다
우유부단한 인물이 동탁의 면전에서 내지르고 나와서 제후군을 모아서 낙양으로 돌진하고 한복을 쫓아내고 하북의 알짜배기 땅인 기주를 가로채고
하북 최강자라는 공손찬과 맞짱뜨고
끈질기게 역경성을 공략해서 무너뜨리고 청주까지 꿀꺽했겠습니까?
원소가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는 부분은 천자를 모시지 않은 것, 모사들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한 것, 후계구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이 세가지만 해당되는 말인데
일단 헌제를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탁이 세운 황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든요(다른 이유도 있긴 한데 주된 이유는 이거)
그래서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했죠

모사들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한건 확실히 문젠데 이건 할 말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사들을 마음껏 휘어잡았던 조조가 좀 초월적인 존재일 뿐...
(유비는 제갈량 말고는 모사라고 할법한 인물들이 죄다 요절, 손권은 말년에 이궁의 변이...) 

후계자 문제도 약간 오해가 있는게
원담이 청주를 정복한 공이 있는건 사실인데 품행은 아주 개차반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의 행보도 개판이죠
근데 원상은 나름 괜찮은 인물이었거든요
그래서 원담을 내친건데 그래놓고 청주의 통치를 맡긴게 문제긴 하죠
그런데 그 잘난 조조도 멀쩡한 적자 놔두고 다른 아들들 총애하다가 후계구도 망칠 뻔 했고
손권같은 경우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시다
근데 그러고 고작 7년만에 원소가 사망해서 후계구도를 제대로 못 다져놓은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원소 이야기를 하는거니까 간단히 줄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상을 후계자로 인정하는 가운데 깽판을 치고 조조를 끌어들인 원담이 나쁜놈입니다

그리고 조조는 꼴리는대로 백성들을 여기저기 이주시켜서 원성을 사고 외교적으로도 좌충우돌하는 동안(뭐 원술만큼은 아니지만)
원소는 정치도 잘 해서 신망이 높았고 외교적으로도 은밀하게 손을 잘 써서 차근차근 세력을 잘 다졌습니다

관도대전의 패배요? 거기서 잃은 병력은 원소군 주력의 절반 정도고 
원소가 조조만큼만 오래 살았어도 조조는 끝장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IF란건 부질없지만요



다음은 조조를 이야기 해 봅시다.
분명 조조가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긴건 맞아요
그런데 그건 그 시대의 특성입니다
진수가 조조가 서주에서 대학살을 자행하던 부분을 서술할때도
오히려 그가 비판의 주안점을 둔 부분은 명사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점이죠
그냥 그 시대 자체가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긴거지 조조가 유달리 잔인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오히려 사서에 대놓고 잔인하다고 나와있는 손권 쪽이...)
조조가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훌륭한 정치가가 됐을 겁니다(이 시대의 규범에 충실한다면 말이죠)


유비를 말하자면 뒤통수 마스터라는 평들이 자자한데
일방적으로 신뢰를 져버려야 배신이지 서로 계산적인 관계에서 손 터는게 배신입니까?
유비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유장의 익주을 탈취한 일과 형양대치 이 두건 뿐입니다
근데 진수가 써놓은 걸 보면 "유장은 병신이니 유비한테 지 땅 뺏긴건 매우 당연하고 잘된 일임 ㅇㅇ" 이렇게 서술해놨거든요
그 시대 기준으로는 썩 욕먹을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배송지에게는 욕먹었으니 케바케인가...)
형양대치는 확실히 잘못한 일이긴 한데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약속이라고 해도 자기 세력의 절반을 떼준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고
애초에 신실한 동맹관계도 아니었으니 약속따위 알게 뭐랍니까
그리고 백성들한테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입니다
유비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것 때문이니
유비 입장에서는 백성들의 지지만 잃지 않으면 뭘 해도 그만입니다(훌륭한 마키아벨리즘의 예인....가?)
무엇보다 유비는 돗자리나 짜던 무지렁이에서(황족이라곤 하지만 헌제와 촌수는 안드로메다 수준)
스스로 일어나 백성들의 신망과 당대 명사들을 알아보고 유혹하여(유비의 행적을 보면 이 말이 딱... 오죽하면 삼갤에선 유엘프로 통하겠습니까)
한 기업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무시당하는 유비의 최대 장점은 바로 용인술인데
형주의 촌구석에서 칩거하던 제갈량을 세번이나 직접 찾아가 스카우트해온 게 유비고(그 제갈량은 중국 역사 최강의 재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당시에는 짬밥이 한참 모자라던 위연을 한중태수로 세우고 양의를 좌천시킨 것도 유비인데
위연의 무공은 유명하고, 양의는 제갈량 사후 극한의 찌질이짓을 하다가 죽습니다
유파는 유비를 정말이지 싫어해서 남중국을 돌면서(신야-영릉-교주-익주 ㅎㄷㄷ) 세번이나 도망쳤는데
유비는 바득바득 그를 모셔왔고 유파는 몇달만에 촉의 창고를 꽉 채워놓습니다
제갈량이 총애하던 마속을 헛똑똑이라고 디스했는데 그 마속은 촉의 북벌을 틀어놓고 죽임을 당하게 되죠
조조가 열심히 백성들을 괴롭힐 때(강제 이주라던지 서주대학살이라던지 관도대학살이라든지)
유비는 인의를 내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비는 절대 뽀록으로 일관하는 무능력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게임에서는 정말 쓰레기같은 능력을 보유한 한현이나 유도, 조범같은 인물들도(참고로 얘네 임명한 사람은 조조입니다)
나름 한 군의 태수였고(고구려가 낙랑'군'에게 아등바등하던 시절입니다) 전장에 나가 싸울 배짱도 있었고
자신의 명령을 듣고 목숨걸고 나와 싸울 부하도 있던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연의에서도 몇몇 XX(가령 원술) 말고는 모두가 '호걸'이라고 쓰고 있고요
사람들이 그 시대의 인물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 이외에도 장수, 사섭, 장로, 반준 등 과소평가되는 인물이 꽤나 많습니다(여포같은 개거품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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