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군 덕분에 마냥 즐겁기만 했던 입학식 이후 생활에 가장 큰 고비로 나타난 것은 바로 1학기 중간고사였다. 우리는 '정석'이나 '개념원리'등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문제지가 중학교때 풀던 얇은 문제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기나 양(?)에서부터 우리를 압박했다. 중간고사 일주일 전, 케이군은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난 20번이고, 넌 21번 이다." "뭐?" "시험볼 때, 난 앞자리를 맡고 너는 뒷자리를 맡는다." "그래서?" "할수있다." "뭐를?" "종료 5분 전에 시작하자." "뭐를 하자는 거야?" "5분이 남으면, 넌 왼발로는 문제를 오른발로는 답을 전달해라." "어떻게?" "천천히 간격을 두고, 20번에 답이 4번이면, 왼발로 두 번 치고 한번 꾹 누른다. 오른발로는 천천히 네 번." "야, 걸리면 나만 혼나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수백만번이나 해왔던 일이다. 걱정마라." 난 어이없이 승낙하고 말았고, 중간고사를 보는 4일동안 발에 땀나도록 케이군의 발을 쳐댔다. 가끔 케이군이 잘 못 받은(?) 문제가 있으면 똑같이 왼발을 이용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케이군의 주관식은 뭐, 보나마나 0점 이었다. 긴 글을 써야하는 수행평가 답안에는 슬램덩크 만화책의 줄거리를 쓰고 있었고 수학 주관식 같은 경우에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캐릭터 등번호로 계산을 했다. (뭐, 물론 이건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케이군 답안지를 슬쩍 봤다가 확인한 거다.) 드디어 4일의 힘든 시간은 다 지나고 마지막 날의 마지막 시험, 미술시간! 난 다 끝났다는 기쁨도 있고, 학교가 끝나고 어디로 놀러갈까하는 생각에 들떠있다가 케이군에게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나에게는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었는데, 5분이 남았는지도 모르고 다리를 떨다가 앞에서 뭔가 열심히 적고 있는 케이군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차려 다시 알려줬다. 하지만 시간은 다 되었고 나는 10번 까지만 알려준채 내 시험지를 냈다. 케이군에게 큰잘못을 한 까닭에 한동안 아무말도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미술시험성적 발표시간, 케이군 95점. 나 90점. 난 궁금해서 케이군에게 물었다. "야, 너 어떻게 나보다 미술시험점수가 높아?" "난 11번부터 20번까지는 다 맞았거든. 넌 그중에 하나 틀렸지?" "응, 어떻게 알아?" "니가 마지막에 1번부터 10번까지 알려줬잖아." "그 짧은 시간에 다 풀 수는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11번부터 20번까지 먼저 푼거야? 난 니가 잘못 썼을까봐 조마조마해서 이때까지 말도 못했는데..." 그러자 케이군이 씩-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