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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오초칠국의 난 - 반란의 불길
게시물ID : history_162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6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09 23:32:36

제후들에 대한 봉토 삭감의 칼날이 드디어 오나라에게까지 미치면서 오왕 유비는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합니다. 하지만 오나라의 국력이 제후들 중 가장 강력하다지만 혼자서 조정과 맞선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그는 주변 제후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합니다. 그가 제일 먼저 접촉한 것은 교서왕 유앙이었습니다. 교서왕 유앙은 용맹한 인물로써 제나라 지역의 제후국들이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중대부 응고를 보내어 교서왕에게 보냈습니다. 교서왕을 만난 응고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황상께서는 간신에게 추켜올림을 받으시고 사악한 신하에게 가려져 위선을 좋아하시며 참소하는 적신의 말을 들으시니 이 사악한 신하들은 마음대로 법령을 고치고 제후의 땅을 침탈하며, 요구하여 거두어들이는 바가 점점 많아지고, 선량한 사람을 주벌하는 것이 날이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겨를 핥다보면 쌀에 이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와 교서는 모두 이름난 제후국입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검사를 받게 되면 아마 안녕과 자유는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왕은 몸에 속병이 있어 입조하지 못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항상 의심을 받으시면서도 스스로 명백하게 증명하지 못함을 근심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깨를 움츠리고 두 발을 모으고 있건만 오히려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듣건대 대왕께서는 작위에 관한 일로(사사로이 작위를 판 일을 말합니다) 문책받아 땅을 깎일 것이라는 말이 제후들 사이에 들리고 있습니다. 이 죄는 땅을 삭감당할 정도에까지 이를 만한 것이 아닙니다.

 

미움을 같이하는 자는 서로 돕고, 기호가 같은 자는 서로 붙들어 머무르며, 뜻을 같이하는 자는 함께 이루며, 욕망이 같은 자는 서로 같이 달려가며, 이익을 같이하는 자는 서로 생사를 같이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오왕은 스스로 대왕과 근심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시세에 응하여 순리를 좇아 몸을 던져 천하에서 근심거리를 제거해주십시오. 생각하면 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응고의 말에 교서왕 유앙은 다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과인이 어찌 감히 그와 같이 할 수 있겠소? 지금 황상께서 비록 사람을 옥죈다 해도 진실로 죽음이 있을 뿐이지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유앙의 말에 응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사대부 조조는 천자를 미혹하고 제후를 침탈하며 충신을 덮어 가리고 현사의 앞길을 막고 있어 조정에는 증오와 원망이 가득하고, 제후들은 모두 배반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로서 인간세상의 일이 극한에 이른 것입니다. 혜성이 나타나고, 황충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만세에 한 번 있는 때로서 만백성이 근심하고 고생하는 때야 말로 성인이 일어나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왕은 안(조정)으로는 조조의 토벌을 명분으로 하고 밖으로는 대왕의 수레 뒤를 따르며 천하를 뛰어다니고자 하는 것입니다. 향하는 곳마다 항복할 것이며 가리키는 곳마다 함락시켜 천하에 감히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다행히 한마디 승낙만 하신다면 오왕은 초왕을 이끌고 함곡관을 공략하고 형양, 오창의 양곡을 지켜 한나라 군사를 막으며 행영을 차려두고 대왕을 기다릴 것입니다. 대왕께서 다행히 그곳에 임하여주신다면 곧 천하를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니, 두 대왕께서는 천하를 나누어 가지시는 것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응고의 이 말에 교서왕 유앙은 오왕과 함께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오왕 유비는 교서왕이 말만하고 실제로 움직이지 않을까 두려워서 직접 자신이 교서로 가서 유앙과 대면하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교서 내의 신하들은 유앙의 모반에 이를 하지 말라고 간언했지만[1], 유앙은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유앙은 직접 제와 치천, 교동, 제남, 제북 등에 사신을 보내어 이들을 반란 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들은 영토 삭감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윽고 효경제 3년 정월, 오나라의 회계군과 예장군을 삭감한다는 문서가 오나라에 도착하자 유비는 군사를 일으켜 정월 병오일에 2천석 이하이면서 한나라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교서, 교동, 치천, 제남, 초, 조 역시 유비와 같은 행동을 하고 서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제왕 유장려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애초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인지도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유비와 유앙이 반란을 꾸민다는 것을 알고 참가를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북왕 유지는 낭중령이 왕을 협박한 후 감금하여 병사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여튼 제와 제북이 빠졌지만 그 세력은 강대한 것이었습니다. 교서왕 유앙이 중심이 된 교동, 치천, 제남 연합군은 맹약을 어기고 배신한 제나라의 임치를 포위하여 공격하였고, 조왕 유수는 몰래 사자를 흉노로 보내어 그 군대와 연합하였습니다[2].

 

 

그리고 이 반란의 주도자나 다름없는 유비는 봉국의 모든 병사들을 소집하며 오나라 전체에 이러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과인은 나이가 62세인데 몸소 장수가 되었다. 과인의 자식은 14세인데 역시 병사가 되어 선봉에 섰다. 무릇 나이가 위로는 과인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아래로는 과인의 자식과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서라.」

 

 

 

그리고 그는 20만 대군을 동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민월과 동월에 사자를 보냈습니다[3]. 이들은 오왕 유비에 호응하여 병사를 일으켜 그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효경제 3년 정월에 오나라의 군대는 회수를 건너 초나라 군사와 합치고 전국의 제후들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서신을 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왕 유비는 교서왕, 교동왕, 치천왕 제남왕 조왕, 회남왕[4], 형산왕[5], 여강왕[6], 고 장사왕의 왕자께 삼가 여쭙겠습니다. 과인에게 가르침이 있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한나라 조정에 적신이 있어 천하에 아무런 공로도 없으면서 제후의 영토를 침탈하고 관리를 시켜 탄핵과 구속과 심문과 처벌을 일삼으며 제후들을 능욕하기를 능사로 하고 있습니다. 봉토를 받은 군주에 대한 예로써 유씨 형제를 예우하지 않고, 선제의 공신의 자손을 끊고 간교한 무리들을 추천 임용하여 천하를 어지럽히며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합니다. 폐하께서는 병이 많으셔서 뜻이 상도를 잃어 능히 잘 살펴보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 병사를 일으켜 그들을 주살하고자 하니 삼가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저희 나라가 비록 협소하지만 땅이 사방 3000리는 되고 사람이 비록 적기는 하지만 가히 정예 병사 50만 명은 추스릴 수 있습니다. 과인이 평소 남월과 사귀기를 30여 년, 그 왕과 지방 수령들은 모두 군사를 나누어 과인을 따르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니 또 30여 만명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과인이 비록 덕이 없지만 원컨대 이 한 몸 바쳐 여러 왕들을 따르고자 합니다. 남월과 장사의 접경 지역은 장사왕의 왕자께서 장사 이북을 평정하시고 서쪽으로는 촉, 한중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남월에게 통보해주십시오. 초왕과 회남의 삼왕(회남왕, 형산왕, 여강왕)께서는 과인과 더불을 서쪽으로 향하시고 제남왕과 조왕은 하간, 하내를 평정하시고 임진관으로 들어가시든지 낙양에서 과인과 합류해주십시오. 연왕, 조왕은 본래 호왕(흉노)과 야속이 있었습니다. 연왕께서는 북쪽에서 대, 운중을 평정하시고 흉노의 군대를 통솔하여 소관으로 들어가십시오.

 

우리들은 모두 장안으로 진격하여 천자를 바로잡아 황실과 조정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바라옵건데 왕들께서는 이것에 힘써주십시오. 초원왕의 왕자분들과 회남의 삼왕들께서는 머리 감고 발 씻는 것조차 잊어먹기를 10여 년, 원한은 골수에 사무쳐 한번 이 원한을 풀고자 한 지가 오래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과인이 여러 왕들께서 능히 망한 것을 존재하게 하며 끊어진 것을 이어지게 하며 약한 자를 구제하고 횡포한 자를 벌 주셔서 우리 유씨를 편안하게 하실 수 있다면, 이는 사직이 바라는 바입니다. 저희 나라가 비록 가난하지만 과인이 입고 먹는 비용을 절약하며 돈을 저축하고 무기를 갖추며 식량을 모으는 일을 밤낮으로 하기를 30여 년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번 일을 위한 것입니다. 원컨대 여러 왕들께서는 힘써 이를 이용해주십시오. 능히 대장을 베어 죽이거나 사로잡는 사람에게는 금 5000근을 하사하고 만호의 땅을 봉할 것입니다. 그것이 일반 장수일 경우에는 금 3000근과 5000호의 땅을 봉하겠습니다. 부장, 즉 비장인 경우에는 금 2000근과 땅 2000호를 봉하겠으며, 2000석의 관리인 경우에는 금 1000근과 1000호의 땅에 봉하겠습니다. 1000석의 관리인 경우에는 금 500근과 500호의 땅에 봉하고 모두 열후로 삼겠습니다. 군대나 혹은 성읍을 이끌고 항복해오는 자로서 군졸이 만 명, 읍이 만 호인 경우에는 대장을 얻은 경우와 같이 대우할 것입니다. 군사가 5000명이고 읍이 5000호인 경우에는 일반 장수를 얻은 경우와 같이 대우할 것입니다. 군사가 1000명이고 읍이 1000호인 경우에는 2000석의 관리를 얻은 경우와 같이 대우할 것이며, 그 아래 하급 관리들이 투항해오면 모두 등급에 따라 작위와 상금을 줄 것입니다. 그 밖에 봉작과 상사는 모두 현행 한나라 군법의 두 배로 하겠습니다. 원래 작위와 식읍이 있는 자는 그냥 그대로 두지 않고 새로이 더 보태어줄 것입니다.

 

 

원컨대 여러 왕들께서는 명백하게 사대부들에게 하령하십시오. 감히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과인의 돈은 천하의 어디에나 있으니, 반드시 오나라에서 가져올 필요는 없으며 여러 왕들께서 밤낮으로 그것을 써도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람이 있으면 과인에게 알려주십시오. 과인이 장차 가서 그에게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삼가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서신에 호응하여 군사를 움직인 제후는 처음에 마음을 먹었던 오초 등 칠국 밖에는 없었습니다. 형산이나 여강, 회남은 아예 처음부터 한나라에 협력을 하는 등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몇몇 제후들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제 오왕 유비가 일으킨 이 전쟁은 황제와 제후간의 싸움에서 흉노와 동월까지 끼어들려고 하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한 성립 이후로 최대의 위협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1] 한 사람의 황제를 섬기는 것은 지극히 편한 일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오나라와 함께 서쪽을 향하시어, 설령 일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두 군주께서 갈라져 다툴 것이니 근심거리는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후들의 영토는 한나라 직할 군의 10분의 2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반란을 일으켜 태후 마마께 심려를 끼치는 것은 좋은 계획이 못됩니다. - 사기 오왕비열전

 

[2] 이 무렵 조왕 수가 몰래 사신을 흉노로 보내 내통하였다. 그래서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흉노는 조나라와 짜고 변경으로 침입할 계획이었으나, 한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해서 이를 깨트렸기 때문에 흉노도 계획을 중지하게 되었다. - 사기 흉노열전

 

[3] 효경제 3년에 이르러, 오왕 유비가 반란을 일으켜 민월을 자기 편에 따르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민월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동구(동월)만이 오왕 유비를 따랐다. - 사기 동월열전

 

[4] 효경제 3년에 오초 등 일곱 나라가 반란을 일으켰다. 오왕의 사자가 회남에 도착해서 군사를 일으켜 그들과 호응하려고 하였다.

 

회남의 승상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꼭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와 호응하려고 하신다면, 신이 그 장수가 되기를 원합니다.”

 

왕은 이에 군사를 승상에게 맡겼다. 회남의 승상은 군사를 이끌고 성을 굳게 지킬 뿐, 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한나라를 도왔다. 한나라 역시 곡성후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회남을 구하게 하니, 회남은 이런 까닭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 사기 회남형산열전

 

[5] 오나라의 사자가 여강에 도착하였으나, 여강왕은 이에 응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자를 월에 파견하여 왕래하게 하였다. - 사기 회남형산열전

 

[6] 오나라의 사자가 형산에 도착하자, 형산왕도 성을 굳게 지키며 한나라에 대해서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 사기 회남형산열전

 

 

 

※ 출처 : 사기 오왕비열전, 사기 회남형산열전, 사기 흉노열전, 사기 동월열전, 중국의 역사 진한사,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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