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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보고싶은 매일 밤
게시물ID : gomin_1623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b29oZ
추천 : 6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02 04:16:31
할아버지 왼손 약지에는 아직도 결혼반지가 끼워져있다. 어렸을 때 부터 반지가 끼워진 할아버지의 손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손주들 모일때마다 모두들 여기서 자고가라며 집에 못 가게 하시고, 여기저기 일벌리고 다녀서 할머니 눈에는 할아버지가 철없는 영감으로 보일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밖에 모르는 로맨틱가이다. 

 할아버지는 외출하고 돌아오실 때면 여보~ 아니면 춘자~ 하고 할머니를 부르셨다.. 그 모습이 정말 좋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티격태격하셨다. 빵을 왜 식탁에 놓지않고 서랍에 넣어놨냐, 저기 차들을 싣고 가는 큰 트럭에는 차가 열대더라 아니다 열한대더라, 왜 이 봉투에 넣으면 될 걸 저 봉투에 넣었냐 . 듣고 있으면 아웅다웅하는 그 소리가 나한테는 그렇게 행복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할머니 나으시면.. 할머니댁 갈 때마다 두 분 동영상을 찍어야지 했었다. 

 할아버지의 스쿠터 뒷좌석은 할머니 자리였다. 우리도 가끔 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할머니 자리였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스쿠터 뒷좌석은 할머니 자리다. 할머니의 자리는 그렇게 비어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할머니는 아프지도 않고 슬픔도, 눈물도 없는 곳에 평안하게 있으니 다들 울지말라고 우리와 다른 지인들을 위로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이내 우실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아플 때도 이 성경책은 품에서 놓지않고 읽었어야..이제 한 달만 있으면 다 읽겄다고 했는디.. 하시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성경책을 잡고 또 눈물을 흘리셨다.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관을 마지막으로 잡으며 할아버지는 또 춘자야 하고 할머니 이름을 부르셨다. 56년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부를 때 마다 눈으로, 목소리로 대답하던 할아버지의 춘자, 엄마의 엄마, 우리의 할머니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작은 모습으로 삼촌 품에 안기어 모셔졌다.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떠났다. 더 이상 우리 곁에는 없다. 아직 추웠던 바람과 함께 벚꽃처럼 흩날려져 고운 철쭉으로 피었다. 할머니댁 신발장 뒤에 있으면 할머니 목소리가 들릴 것 같고, 거실을 바라보면 할머니가 아직 앉아 뜨개질을 하고 계실 것 같지만 아무리 찾아도 할머니는 없다. 
 그래도 할머니가 다듬어놓은 냉이는 우리집 냉장고에 아직도 있고, 지난 대보름에 할머니가 엄청나게 해 놓으신 고사리, 고구마순무침, 죽순 무침 등 맛있는 반찬들은 한참을 냉동고에 넣어져있다가 다시 식탁위로 나왔다. 할머니가 손길이 담긴 음식을 아직은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할머니가 없는 거실에 가족들이 꽉 채워 앉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공간을 우리는 아직 아무렇지 않게 돌아볼 수 없다. 나와 동생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우리의 소란 속에 서려있는 그 슬픔을 아직 감출 수가 없다. 
  장난기 많고 웃음 많던 할아버지는 아직 예전처럼 웃지 못하신다. 티비도 재미없고, 아무것도 재미있는 게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문득문득 하시는 할머니 얘기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4월은 너무 힘들었다. 바쁘다가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고, 참다가 터진 눈물 때문에 버스를 못 타고 한참을 울면서 걷는 때도 있었다. 이제 더는 아프시지 않을 할머니를 생각해야하는데 벌써부터 사무치는 그리움에, 할아버지의 허전한 모습에, 따뜻한 절정의 오후에 높게 뜬 태양 아래 있어도 깜깜한 기분이다.
  
 그래도 서로를 위로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깜깜한 대낮에도 앞을 향해 갈 수 있다. 가족들 모두가 항상 손을 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그리고 다른 가족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내 존재가, 내 힘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서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웃음을 되찾아올 수 있으면 당분간은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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