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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세월호 구조당시 4층 학생들 보고도 무시한 해경
게시물ID : bestofbest_1624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ㅠoㅠ
추천 : 448
조회수 : 116870회
댓글수 : 57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5/24 13:37:36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5/24 10:39:29
*출처: 서프라이즈(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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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아래 글에 대한 추가 포스팅입니다
http://inizios.blog.me/220000183263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초동대처의 심각한 과실들)
 
 
세월호 구조당시 4층 학생들 보고도 무시한 해경
(WWW.SURPRISE.OR.KR / 이니지오 / 2014-05-24)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123정이 9시 45분 경 세월호 조타실 앞에 배를 대고 조타실 인원들을 탈출시키는 장면인데 왼 쪽의 노란 박스는 4층 다인실 창문의 맨 왼 쪽 두개 창문으로 당시 저 다인실에는 단원고 2학년 7반과 8반의 남학생 50여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경 123정은 9시 45분에서 9시 49분까지 약 5분간 조타실 인원들만을 구한 채 배를 뒤로 빼고 세월호에서 멀어집니다. 이후 해경 고무보트로 실어오는 좌현 탈출 승객들만 경비정에 태웠을 뿐, 123정의 구조된 승객들을 다른 수송선으로 옮겨 태우는데 15분여를 낭비했습니다.(10시 5분부터 선수 3층 객실 창문 구조 시작)
  

앞서 말한 4층 선수 부분의 다인실 실내 모습입니다. 앞서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던 창문은 80인 수용이 가능한 4층 다인실의 위 사진 노란색 박스로 표시된 창문의 위치입니다.
당시 4층 다인실에는 단원고 2학년 남학생 7반 26명과 8반 24명이 갇혀 있었는데 구조 당시 배의 기울기 때문에 대부분 왼쪽 끝편에 몰려 있었습니다. 일부는 창 밖으로 조타실과 3층 객실 구조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4월 25일 학부모의 요청으로 팩트TV를 통해 공개된 위 80인실의 오전 9시 40분 직전 상황입니다. 위에서 노란 박스로 표시한 부분이 위 핸드폰 첫번째 사진의 빨간 박스에 해당하는 창문입니다. 파란 박스로 표시된 학생들은 창문 밖으로 해경 경비정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도 보입니다. 배의 기울기로 인해 학생들 대부분이 선내 왼쪽 벽쪽에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시 50분, 이미 123정은 조타실 인원을 모두 태우고 세월호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4층 다인실 맨 왼쪽 창문이 아직 물에 닿기도 전입니다. 이 때부터 123정은 약 15분간 세월호로부터 간격을 유지한 채 모터보트만이 홀로 구조활동을 계속합니다.
9시 51분, 123정은 세월호 선수 방향으로 약 50미터 가량 멀리 후진합니다. 이 때쯤 4층 다인실 왼쪽 첫번째 창문이 바닷물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입니다.
9시 54분 123정이 세월호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여전히 세월호 인근에서 구조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해경 헬기 B-512호가 구명벌을 떨어뜨려 좌현으로 탈출한 마지막 승객들을 구조하던 순간입니다. 이후 9시 56~58분경 123정은 다른 수송선으로 구조한 생존자들을 옮겨 태웁니다.(빨간 색 원은 잠시 후 10시 6분 경 유리창을 깨 구조하는 3층 다인실 창문)
10시 6분 경부터 다시 세월호 가까이 접근해 3층 선수 다인실 창문을 깨던 해경 123정이 10시 7분 경 촬영한 영상을 보면, 우측 하단에 파란색 박스로 표시된 곳이 4층 다인실 창문의 맨 왼쪽에서 두번째 창문입니다.(실내 왼쪽 끝에서 2m 높이) 이미 맨 왼쪽 첫번째 창문은 바닷속으로 잠긴 상황이며 두번째 창문은 앞서 설명한 4층 다인실에서 학생들이 창틀에 걸터 앉아있기도 했고 저 바로 안 쪽에 수십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갇혀 있던 곳입니다.
10시 6분 세월호 3층 다인실 유리창에 접근해 저 작은 빨간색 해머로 유리창을 깨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까요? 10시 6분 55초에 망치질을 시작해 10시 7분 36초에 유리창 대부분을 깨는데 성공합니다. 대략 유리창 하나 깨는 40초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 작은 망치 하나에 40초라는 시간이 배 안에 고립된 승객들에겐 그 어떤 것 보다 절실했을 것입니다만 해경은 약 45분간 단 한개의 유리창만을 깼을 뿐입니다.
잠시 후 3층 창문 깨는 모습을 구경하던 항해사가 4층 다인실 창문쪽을 바라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를 발견했는지 4층 다인실 창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르킵니다.
잠시 후 세월호에 밧줄을 묶던 해경 한 명을 불러 4층 다인실 창문을 함께 바라보며 뭔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뭔가가 보이는듯 해경과 항해사는 허리를 숙여 4층 창문 안을 더 유심히 살펴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항해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를 피해 배 뒷 쪽으로 가버리고
항해사로 부터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바라보던 해경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하던 일을 시작합니다.
결국 그로부터 3분 뒤인 10시 10분(위 사진), 4층 다인실 왼쪽 두번째 창문도 물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저 창문이 선내 왼쪽 벽에서 약 2m 내외의 높이로, 단원고 학생들은 저 창문 안쪽 밑 선내 왼쪽 벽에 수십명이 몰려 패닉에 빠져있었거나 선내로 밀려들어온 물에 발버둥 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로부터 10분만에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어져 바닥부분만 드러내며 완전 침몰합니다.
해경 123정이 09시 35분에 도착하여 한 구조 작업이라고는(고무보트 제외)
  • 9시 45분 ~ 9시 50분 약 5~6분간 조타실에 배를 대 조타실 인원을 태운 것
  • 10시 6분 ~ 10시 11분 약 5~6분간 3층 선수 부분에 배를 대고 창문을 깨 6명의 승객을 구조
한 것이 전부입니다. 즉 9시 35분에 도착해 완전 침몰하던 10시 20분까지, 당시 현장에 도착한 유일한 경비정이었던 해경 123정은 그마저도 약 45분간의 구조 가능시간 중 10~12분 정도만 적극적인 구조작업을 했을 뿐입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유리창 하나당 40초가 아니라 1분이라는 가정을 한다 해도 선수부분 3층 다인실 유리창, 4층 다인실 유리창, 그리고 조금 일찍 좌현 4층 객실 유리창 등등 선내 승객들이 창문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탈출구를 마련해 줄 수 있었음에도 해경 123정은 구조작업을 하지 않던 약 30여분의 시간과 300여명의 아까운 목숨을 맞바꾸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현장 도착 9시 35분부터 조타실 구조를 시작한 9시 45분까지 해경 123정은 모터보트 구조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10분간 123정이 구조할 수 있었던 인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3층 선수 다인실 - 창문 한개 (6명) 초록색 원
4층 선수 다인실 - 창문 한개 (50명) 파란색 원
4층 선수쪽 좌현 6개 객실 - 창문 6개 (67명 - 복도 안쪽 좌현 객실 포함) 빨강, 노랑 창문
실제 약 8~10분 정도 시간을 들여 8개의 창문을 깼다면 120여명 이상 추가 구조가 가능했습니다.
그랬다면 9시 45분이 되고, 그래도 좌현 4층 창문이 모두 물에 잠기는 9시 50분까지 5분이나 추가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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