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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치우느라 5시간 삽질, 주민들 “저런 양반은 처음”..ㅋㅋㅋ
게시물ID : humordata_7844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untkim
추천 : 4/5
조회수 : 168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05/09 09:30:13

눈 치우느라 5시간 삽질 주민들 “저런 양반은 처음” 야당 출입기자들이 지켜 본 ‘인간 손학규’ 자유인이면서 명분 따지고 치밀하지 못하지만 우직 막걸리 즐기는 애주가 취해도 기자들 질문에 안 넘어가 ▲ photo 연합뉴스 4·27 재보선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였다. 사지(死地)였던 경기 성남 분당을(乙) 보궐선거에서 살아 돌아옴으로써 그의 위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경쟁자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노무현의 고향’인 경남 김해을(乙)을 한나라당에 내줌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손 대표 측으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결과인 셈이다. 작년 10월 당 대표로 정치 무대에 복귀한 이후 손 대표가 가장 자주 한 말은 “내 한 몸을 던지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수사(修辭)였을 수 있지만 손 대표에게는 현실이 됐다. 널찍한 당 대표실에 머무른 것은 잠시였고 전국을 떠돌았다. 예산안 강행 처리 등 현안에 대해 강경파들은 “의원직 걸고 장외투쟁으로 가자”고 했지만 손 대표는 “당신들은 국회를 지키고 내가 들판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풍찬노숙을 하는가 하면 강원도 산골과 영·호남의 농촌으로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손 대표는 여러 모습을 가감 없이 노출했다. 옆에서 지켜본 손 대표는 우직하고 소탈했다. 젊은 시절 기독교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그의 태도에는 약자(弱者)에 대한 미안함과 배려가 배어 있다. 동시에 그 안에는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하며 명분에 집착하는 면모도 섞여 있다. 조선일보 정치부 야당팀 소속 최재혁·박국희 기자가 취재파일에 기록해 뒀던 ‘인간 손학규’의 모습을 전한다. 지난 2월 강원도에는 때아닌 폭설이 내렸다. 눈이 허리까지 쌓인 강릉의 한 골목길에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나타났다. 당시 손 대표는 한나라당의 작년 말 예산안 강행 처리에 항의, 전국을 순회하는 ‘100일 민심(民心)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민주당 출입 기자들도 전세 버스를 타고 손 대표를 강릉까지 따라갔다. 현장에서 간단한 인터뷰가 있었고 손 대표가 눈 치우는 모습도 촬영한 뒤 취재진은 버스로 돌아왔다. 일부는 기사를 써서 송고하고 일부는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5시간이 지나도록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안 했다. 당직자들에게 “왜 안 가느냐”고 했더니 “대표님이 아직 눈 치우고 계십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들이 “설마” 하며 가 봤더니 폭설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안 되던 골목 골목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손 대표는 골목 안쪽에서 삽으로 눈을 리어카에 담는 중이었고, 손 대표의 비서실장인 양승조 의원은 보조를 맞추느라 얼굴이 벌게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눈을 치우던 군인들도 “저런 양반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눈이 가득 담긴 리어카를 끌면서 손 대표는 “예전에 수배 피하러 강원도에 와서 숨어 있었다. 그때 리어카를 자주 끌어서 기술이 있다”고 했다. 당시 민주당 당직자들은 당 대표의 ‘공백’이 길어지자 “전국을 돌면서 쓸데없이 힘 빼는 것보다 여의도에서 고공전(高空戰)을 치르는 게 언론에 기사라도 한 줄 더 나고 훨씬 효과적”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100일 하겠다고 했으니 다 채워야 한다”는 고집이었다. 냉철하게 보면 손 대표가 틀렸고 당직자들이 맞았다. 당시 손 대표의 민심 대장정은 초기를 빼면 거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손 대표의 지지율도 6~9%대를 벗어나질 못했다. 손 대표의 측근들은 “왜 이렇게 지지율이 안 오르지”라고 초조해했다. 물론 손 대표는 이런 우직함을 갖고서 분당을 선거에 임했고, 보수적인 분당을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4·27 보궐선거 전날 밤 12시까지 손 대표는 주상 복합 건물로 둘러싸인 분당의 카페촌을 돌면서 취객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올 초 강원도를 방문해 타운홀 미팅을 했을 때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손 대표는 한 산골 노인정에서 그 마을 노인들과 둘러앉았다. “구제역 보상금을 더 올려야 한다.” “소를 다 묻어버렸으니 다른 생계 대책이 필요하다.” “노인정 난방비가 부족하니 시(市)에서 지원하도록 도와달라.” 노인들의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2시간이 넘어가자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었다. 손 대표는 마지막 한 명 노인의 말까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줬다. 그날 타운홀 미팅은 밤 12시가 지나서 끝이 났다. 당직자들은 “노인들이 힘들어 하는데 중간에 좀 끝내시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산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손 대표는 그날따라 타운홀 미팅을 2시간 만에 끝낸 뒤 마을회관 옆 식당에서 기자들에게 닭백숙과 막걸리를 샀다. 마을 주민들도 초청했으나 현장에 나온 선관위 직원들이 불법이라고 해서 식당 문 앞에서 되돌아갔다. 막 숟가락을 들려고 하던 손 대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미안하다는 인사는 하고 와야겠다”며 일어서더니 다시 마을회관으로 갔다. 그는 30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민주당 이낙연 사무총장이 했던 ‘손학규 인물평’이 있다. 작년 11월 손 대표는 주요 당직자 인선을 모두 마친 뒤 출입 기자들과 첫 만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 총장이 한 말이다. “한 달 가까이 손 대표를 모시니 두 가지 측면이 있더라. 하나는 ‘자유인 기질’이다. 기자들도 익히 알다시피 중대 결단을 내리는 순간 예상 밖의 엉뚱한 일을 가끔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자유인 기질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있었다. 또 하나는 손 대표가 의외로 치밀하지 못한 구석이 있고 가끔 실수도 한다.” 이 사무총장은 자신이 사무총장을 맡게 된 것도 ‘엉뚱한 일’로 꼽았다. 그 당시 언론에서는 사무총장 후보군으로 김부겸·정장선 의원을 거론했다. 두 사람 다 ‘손학규 사람’이었다. 이 사무총장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손 대표가 나를 보자고 하더니 사무총장직을 권하더라. 그러면서 한 말이 걸작이었다. ‘공정하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손 대표의 즉흥성과 관련된 다른 일화도 있다. 손 대표가 대표로 복귀하기 전인 2009년 9월이었다. 경기도 수원 장안 재선거를 한 달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고 당시 정세균 대표는 손 대표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민주당에서는 손 대표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손 대표는 느닷없이 홈페이지에 불출마 선언의 글을 올렸다. 그는 “지명도 높은 ‘거물’로 당장의 전투를 이기고자 하는 것은 다가올 더 큰 전쟁을 이기는 길이 아니다. 민주당은 처절한 각오로 자기 단련을 해야지 보약으로 당장 기력을 회복하려 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 전날 선거 준비 회의를 가졌던 손 대표의 측근들은 그날 아침에야 손 대표로부터 불출마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측근들은 “정말 해도 너무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손 대표 대신 출마한 이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이찬열 의원이었다. 손 대표 측근인 이 의원은 손 대표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승리를 거뒀다. 경기지사를 지낸 손 대표로선 경기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입증한 셈이었다. ▲ 손학규 대표와 부인 이윤영씨 photo 조선일보 DB 손 대표는 애주가다. 당 대표가 된 이후 전국을 돌면서 나 홀로 장외투쟁을 하느라 술을 자제해 왔지만 웬만한 주량으로 손 대표를 대적하긴 어렵다. “술하고 싸우려고 하면 안 된다. 살살 달래가면서 마셔야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주로 막걸리를 마시지만 항상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으로 술자리를 시작한다. 끝 무렵에는 커다란 양푼을 주인에게 청해서 거기에다 남은 막걸리를 다 부어 돌려 마신다. ‘화합주’라는 것이다. 막걸리는 반드시 주전자에 부어 마셔야 한다는 것도 손 대표의 원칙이다. 흥이 오르면 탁자를 치며 창(唱)을 부르기도 한다. 그가 부르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들은 기자도 적지 않다. 쉽지 않은 취재원이기도 하다. 취기가 올라도 민감한 질문에는 엉뚱한 얘기를 장황하게 하거나 화제를 돌린다. 분당을 출마를 고심할 무렵, 한 식사 자리에서 출마 여부를 물었더니 “아이는 잘 크냐”며 말문을 막아버렸다. 손 대표는 대표적인 애처가이기도 하다. 시간이 나면 그는 부인 이윤영씨와 드라이브를 즐긴다. 올 설날에도 그는 부인과 단둘이 서해안으로 떠났다. 손 대표는 이화여대 약학과를 다니던 이씨를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7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군대 가고 감옥 갔다 오느라 정상적으로 같이 생활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번 분당을 선거에서도 손 대표는 4월 27일 아침 투표를 한 뒤 한동안 연락 두절 상태였는데 부인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부인 이윤영씨도 손 대표만큼 소박하다는 평이다. 모 언론사 기자가 전해준 얘기다. 손 대표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기자들을 공관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기자가 옆에 있는 수더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에게 뭘 시켰더니 그 아주머니가 “예” 하고 갖다줬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아주머니’는 다름 아닌 손 대표의 부인이었다. 심부름을 시킨 기자는 황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손 대표가 민주화 운동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동안 약국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책임졌고 몸에 밴 소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손 대표는 4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했다. 이제 들판에서 국회로, 그의 무대는 달라졌다. 대선을 향한 그의 행보에도 가속이 붙을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 손 대표가 어떤 이념적 노선을 택할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장외투쟁에서 선명한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손학규 표’ 비전과 정책을 내놔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손 대표 주변에서 “이제부더 치밀해져야 한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민주당에선 “손 대표도 혼자 고독한 결정을 내리는 즉흥적인 스타일을 고쳐야 한다. 참모들의 역할을 분담하고 권한을 위임해야 하며 의사 결정을 거중 조정할 사람을 키워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54100004&ctcd=C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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