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저의 생각인데 틀린 부분이 있는 것 같으면 말씀해 주세요
게시물ID : phil_16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0
조회수 : 650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8/01/13 05:48:34
옵션
  • 창작글
 
 
종(種)이란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가 비슷한 집단이죠.
 
 
근데 종은 결국 비슷한 아름다움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를 보고 성욕을 느끼죠.
하지만 인간은 바퀴벌레를 보고 추하다고 느낍니다.
종이 공유하는 아름다움이 다른 것이죠.
(어쩌면 아름다움을 욕구의 도구로도 볼 수 있죠. 우리가 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생존이 우리의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와 교미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이 공유하는 욕구도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생존의 욕구 같은 것은 무슨 종이든 공통으로 가지지만,
하나의 종 안에서만 특히 공유되는 욕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성욕인 것 같습니다. (성욕의 대상 종(種)이 달라집니다.)
 
 
 
일단
저는 종을 1. 욕구와 2. 권력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생각이 맞을까요? 틀리다면 틀린 부분을 말해주시고, 보완할 점이 있다면 추가해 주세요]
 
1. 욕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종이 공유하는 공통되는 욕구이며
2. 권력이라는 것은 그 종이 우리 세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힘을 말합니다.
크게 본다면 권력에 생물학적인 구조도 포함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기린의 목은 권력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나무를 먹을 수 있는 권력이죠.
종의 몸체는 그 어떤 부분의 구조든 간에 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설명해야 하는데
저는 권력을 욕구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논점이 아니므로 줄입니다.)
 
 
 
 
만약 욕구나 권력이 크게 변화하면 '그것은 같은 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맞을까요?]
 
1. 욕구는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권력이 변함
예를 들어서 SF나 판타지에서 주인공이 다른 동물로 변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인물의 권력이 변화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 인물의 욕구와 이성이 온전하다는 가정 하에서 보자면
주인공이 늑대로 변신을 하든 곰으로 변신을 하든
그것은 여전히 같은 종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왓치맨의 닥터 맨하튼 정도의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면,
즉 권력이 너무나 크게 변화한다면 그것은 다른 종으로 느껴집니다.
 
2. 권력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욕구가 변함
욕구를 볼까요.
신체강탈자의 침략 같은 영화에서 보면 인간의 몸에 외계인이 정신 기생을 해서
전혀 다른 욕구를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전혀 다른 종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요.
 
 
만약 욕구나 권력이 크게 변화하면 그것은 같은 종이라고 볼 수 없을까요?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2018-01-13 05:51:20추천 0
권력과 욕구의 관점으로만 봤는데
다른 개념으로 추가할 중요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하네요
댓글 0개 ▲
2018-01-13 06:22:27추천 2
위 게시글에서 권력을 능력으로 바꾸고 싶네요.

생명체 마다 타고난 기본능력은 다르겠지요. 올림픽 기록경기에서 처럼  인간의 신체능력은  거의 한정되어 있다고 봅니다.인간의 신체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데, 유전자조작이나 신체의 일부나 전부를 다른 인공세포나 기계로 대체하는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환의 정도에 따라, 신인류, 휴먼봇 등등 다른이름으로 불리우겠지요. 엄밀히말하면, 능력보다는 얼만큼 본질이 변환되었느냐고 능력은 그 부수적 견과라 봅니다.

그리고 생명유지의 기본형질은 욕구와 기피라고 봅니다. 생명유지나 번식에 좋은 것은 욕구하고, 나쁜 것은 기피해야 살아남으니까요. 생명체의 발달단계에 따라 이것이 단순하거나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에 이르러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있는데 바로 의식의 작용이라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의식을 가진 종만이 유일하게 본능에 더해 가치관이나 다른선호되는 의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외에 다른 종들은 의식수준이 미미하기에, 그 행동이 때로는 신기하기도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댓글 7개 ▲
2018-01-13 06:25:51추천 1
부수적 견과를 부수적 결과로 고칩니다.
2018-01-13 07:04:54추천 0
님 말대로 권력보다 능력이 더 알맞은 어휘 같네요
2018-01-13 07:12:52추천 0
권력에 대해서 좀 더 쓰자면 저는 권력을 '욕구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종에 대한 정의를 '욕구 + 능력'으로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 그 어떤 생물체의 욕구에도 전혀 영향력이 없는 힘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우주에서 생물체는 단지 지구에만 있고 그 외의 모든 우주에는 생물체가 없으며
이 공간에 신경쓰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가정할게요.
참고로 관측가능한 우주의 지름은 930억 광년 거리라고 합니다.
이 밖의 거리는 빛이 도달하지 못해서 관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제 가정에서 930억 광년 밖의 거리에도 여전히 넓고 넓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생명체가 930억 광년 밖에 있는 모든 우주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욕구하지 않는다면
(930억 광년 너머에는 공간이 없다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이런 가정도 제외합니다. 불안감도 욕구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체는 능력을 가진 것이지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권력을 욕구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권력의 사전적 의미는 좀 더 다릅니다.
그래도 이렇게 좀 더 의미를 바꿔본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별로 없는지 궁금하네요.
2018-01-13 11:49:46추천 2
일단 일반적으로 종을 분류하는 기준은 유전적인 형질기준(형태,구조, 생식,발생, 생화학적 특징 등)이라고 하네요.
어떤 개체에 욕구나 욕구관련 권력의 변이가 유의미성을 가지고 나타나면, 그것이 발현되는 현상이나 지속정도, 유전성, 기타 여러가지 특성에 따라 종분화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욕구와 욕구관련 권력을 종의 분류기준으로 보는 것은 재미있는 착상이며, 이러한 분류로 그 종의 안정(혹은 행복)지수등을 파악할 수 있겠네요.

제가 관찰하기로는 인격체(인간 혹은 비인간인격체) 정도의 의식이 있을 때 , 묻어가자님의 분류가 유효하고, 의식이 발달하지 않은 대부분의 생명체는 욕구를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환경에 적응할 뿐이라고 봅니다. 즉 비인격체에게는 환경이 중요하고, 인격체에 이르러서 욕구와 욕구관련 권력이 의미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는 선천적욕구(본능)와 후천적욕구(가치관 등)가 있으며 실로 다양하기 짝이 없다라고 봅니다. 물론 욕구관련 권력역시 그의 자질, 의지, 환경등에 의해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욕구와 욕구관련 권력에 따라 종을 분류한다는 것은 분류기준의 모호성 문제와 분류에 의한 차별성등 많은 문제점에 봉착한다 봅니다.
2018-01-13 13:18:06추천 0
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종이라는 게 번식을 하면 자신과 똑같은 특성을 지닌 종이 태어나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종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네요. 제 의견을 조금 수정하자면 하나의 종은 '비슷한 욕구'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로 해야겠네요.
다만 종의 번식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냥 번식이 불가능한 마지막 종으로 생각한다면 다른 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SF장르에서는 인체 개조 등을 통해서 인간의 신체 구조가 많이 바뀌는데 그걸 같은 종으로 볼 수 있을지 궁금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어요. 저는 신체 구조가 많이 바뀌더라도 그것을 같은 종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어떤 SF적 국가에서 모든 인간 개체에게 강제적으로 신체 개조를 해서 결국 모든 인간이 신체 개조가 된 상태가 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인간 종으로 볼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저는 같은 인간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간과 비교해서 현저한 능력의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서요. 총몽의 갈리 수준의 신체 능력이라면 다른 종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음... 근데 말하신 대로 저의 기준은 너무나 주관적이라서 객관화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분류할 수가 없고 단지 사회적으로 같이 융화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종은 사회적으로 공생관계를 가지며 융화된다는 것을 전제하잖아요. 성을 통해 생식을 해야 한다면 암수는 반드시 서로 사회적인 교류를 해야 하니까요. 물론 동성 생식도 있지만요. (제 글이 지금 논점은 없는데 그냥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 중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동일 종임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사회적 교류가 불가능한 개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개체가 지닌 욕구관련 권력의 차이 때문인 것 같고요. 더 우월한 입장이거나 더 열등한 입장이 되겠네요. 카프카의 벌레 같은 경우는 열등한 입장이 된 것이고 닥터 맨하튼은 우월한 입장이 된 것이죠.

그리고 제가 '권력'이라고 단어를 지정하였는데
'욕구관련 권력'이라고 단어를 새로 만드신 게 더 정확해 보이네요.

의식의 작용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위에서 적지는 않은 것 같지만 원초적인 욕구도 욕구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서 적었습니다. 이는 욕구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님 의견은 님의 정의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원초적인 욕구... 예를 들어서 멍게의 경우는 성체가 되면 뇌를 스스로 소화시켜서 뇌가 사라지는데도 먹이를 먹고 배출합니다. 뇌가 없음에도 먹이를 먹는 것은 의식이 없더라도 몸에서 일어나는 반사적인 작용임에도 그 몸체가 그것을 하도록 욕구한다랄까요. 적고보니 욕구라는 단어랑은 의미가 잘 안 맞는 것 같네요. 그건 그냥 근육 수축 반응 같은 걸 미리 프로그래밍한 것과 비슷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과연 의식에 따라서 욕구는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네요.

제가 또 궁금한 것은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는 욕구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욕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겠지요.
이것은 환경선택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초기에 우연히 두 개의 생물체가 무작위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면,
하나의 생물체는 생존의 욕구가 없고, 하나의 생물체는 생존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생존의 욕구가 없는 개체는 죽고 환경 선택에 의해서 생존하고자 하는 종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번식에 대한 욕구도 있어야 그 종이 계속 전수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 결과가 지금의 인간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욕구는 완전히 우연적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제가 궁금해했었습니다.
근데 지금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욕구는 분명히 우주 내부적으로 보자면 우연히 만들어졌습니다. [밀러의 실험을 정설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주를 만든 어떤 존재가 우주를 설계할 때 이것을 의도했다면
우리의 욕구는 겉으로는 우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당위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우주를 만든 존재가 무슨 의도를 지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거의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결론으로 가고 마는군요.
2018-01-13 16:03:01추천 1
묻어가자 /
영원히 알수없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순간 (시대 : Age) 모른다가 더 정확합니다
카이스트에서 전자기공학을 강의하시는 분과 토론한 적이 잇었습니다
전기의 작동원리와 에너지 변환작용 등등에 대해선 탁월하게 이해하는 해박한 박사님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논했던
"전기는 어디서 왜 오는가 ?"
"우주에서 ....."
"우주 어디에서 왜? "
그 분은 "모른다" 라고 말했습니다

철학을 접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잇습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것은 " 내가 모른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철학을 비롯한 많은 인문학이 "왜" 라는 궁극의 질문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2018-01-13 16:22:45추천 0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았고
거의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ㅎㅎ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2018-01-13 16:00:32추천 4
종이란 개념 자체가 인위적인 개념이지만, 따져보자면 사회학적인 개념이기 보다는 생물학적인 개념이니,
권력(또는 능력)과 욕구를 기준으로 종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다소 부적절 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들'을 구분하려고 했고,
그 결과 인'종'이라는 생물학적으로는 큰 의미 없는 사회적 종 개념이 등장한거죠..
그리고 차이를 강조하는 그러한 개념은 차별적인 의식을 낳았습니다.
종구분을 해야할 사회적인 이유, 또는 배제해야할 당위적 이유를 차치한다면,
욕구와 능력을 기준으로 종 구분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욕구와 권력(또는 능력)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미추가 단순히 종단위로 공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진화의 갈래에서 가까울수록 미의식이 비슷하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면 미의식이 공유된다고 해서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또는 미의식이 다르다면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없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를테면, 개와 늑대는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지만, 개는 늑대와 달리 비교적 작은 체격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품종이 많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교배를 시켜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개에게 있어서도 인간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가 인간과 같은 미의식, 같은 욕구를 갖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만약 개들이 인간과 공생하기 위해 같은 미의식을 갖도록 진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을 인간에 가까운 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또는 반대로 furry 같은 이례적인 성적 취향을 두고 인간 종을 벗어나구 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인간이 개에게 느끼는 귀여움과 개가 이성끼리 품는 욕구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furry라는 기호가 실제 동물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그 사이엔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furry취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개에 더 가까운 종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종이란 인위적인 개념입니다.
물론 번식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로 구분되는 비교적 명확한 종 개념이 있고,
진화의 과정이 욕구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종 개념이 욕구나 능력과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즉 욕구의 분화가 생물학적인 종의 분화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욕구의 차이를 근거로 종을 구분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댓글 1개 ▲
2018-01-13 16:21:42추천 0
좋은 논리 감사합니다
Phil
2018-01-13 16:36:43추천 1
작성자님이 제안하신 정의에 대해서는 fishcutlet님의 반례들과 비슷한 예시들을 고려하여 수정하시는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욕구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이 일종의 범주오류가 아닐지라는 의문도 들고요.

그러나 비슷한 주장을하는 철학자들도 없진 않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 니체의 "힘/권력에의 의지"라는 것도 있죠, 저도 얼핏 들어보기만 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댓글 1개 ▲
Phil
2018-01-13 16:58:02추천 1
"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욕구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이 일종의 범주오류가 아닐지라는 의문도 들고요."
이 의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자연현상들을 정리해 볼 때
물리학적 현상이 화학적 현상보다 더 근본적/포괄적이고,
화학적 현상이 생물학적 현상보다 더 근본적/포괄적이고,
생물학적 현상이 심리학적 현상보다 더 근본적/포괄적입니다.

따라서 자연현상을이 더 근본적인 원리로 환원되는 방향은
화학에서 물리학적 원리, 생물학에서 화학적 원리,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거고요.

그 반대 방향으로 환원시키거나 정의하려면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거죠.
2018-01-13 19:47:40추천 1
권력이란 단어 때문에 글의 논지가 좀 흐려진거 같습니다
댓글 0개 ▲
2018-01-13 20:12:13추천 1
언어에 매몰되면 항상 문제가 생기죠.
정의도 불분명하고, 개념을 실재와 혼동하는 일도 생기고요.

책상 =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책 따위를 얹어놓고 주로 앉아서 상체의 일부를 의탁할 수 있는 네모난 물체

라고 정의했을 때 세 다리를 가진 책상이나 둥그런 책상도 책상에 들어가나 어쩌나 하는, 어찌 보면 참 초딩스런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
가장 어렵고 복잡하고 현학적인 논의에서도 나온다는 게 정말 황당하고 재밌고 실망스럽고 웃기기도 하죠.
이 문제 하나 갖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갈라져 나오고 서로 부대끼면서 말싸움을 했는지 말이죠. ㅎㅎㅎ
이게 바로 철학의 매력이죠. ^^
댓글 0개 ▲
2018-01-14 10:16:45추천 1
행복의 기원 책추천합니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하다가 찾다보니
제가 생각하던것이 진화심리학이라는 신설학문하고 비슷하더ㅏ고요
댓글 0개 ▲
2018-01-14 17:02:02추천 0
감사합니다~~!
댓글 0개 ▲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