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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원 아저씨
게시물ID : readers_162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스트림치킨
추천 : 0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25 01:48:00
 
 
2008년 즈음이던가. 여름이었나 겨울이었나 가무룩한 기억속의 허름한 지하 단칸방 철학원.
사는게 지루해 이 궁상맞은 사주팔자 어찌 생겼나 보자며 친구둘과 찾았지.
허름한 단칸방의 철학원 아저씨는 나보다 더 지루해 보이는 표정으로 우릴 맞았지.
표정이 얼마나 덧없던지 나는 그 아저씨가 측은해보이기 까지해.
참 이상하지. 내가 봤던 모든 철학원 아저씨들은 다들 표정에 성의가 없어.
사는게 덧없어서 그러는 걸까. 인생을 다 알아버린 사람의 고뇌인걸까.
철학원 아저씨는 무성의한 낯으로 우릴 살피고 단칸방 철책상앞에 앉아.
그는 내게 물과 불 흙에 대해 말하더라. 내게 물이 많다나 뭐라나.
알 수 없는 그들의 문장으로 내 삶에 대해 설명해.
속으로 참 비웃었지.
한문 가득한 그 책들을 수북히 쌓아두고 누군가의 인생을 고작 물과 불에 빗대어 표현하는 동양의 별자리운세 같아서.
그까짓게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책에 파묻혀 살만큼 열정적이었나 싶어서.
자기네 인생을 이 지하 단칸방에 쳐 넣을만큼 대단한 철학가 인가 싶어서.
고작 자기 코앞길도 못보는 지하 단칸방 철학원 아저씨는 우스웠지.
내 운세를 봐주는 철학원 아저씨의 20분 말재주 노동은 오천원.
어린 기지배들의 푼돈 오천원을 손에 쥐는 그 순간에도 철학원 아저씨는 표정에 성의가 없어.
난 속으로 그를 계속 비웃어. 
과연 철학가 아저씨는 당신 삶이 어린 기지배들의 코묻은 푼돈으로 연명하게 될거란 걸 알고 있었을까.
난 별거 없는 나의 운세에 괜스레 오천원이 아까워져.
속으로는 아저씨를 사기꾼이라 욕했는지도 몰라.
난 어느새 아저씨를 닮아 성의없는 표정으로 지하 단칸방을 나서 밖으로 나왔지.
또다시 지루한 일상속으로 들어가. 노는게 지겨울만큼 어린 나는 그때 몰랐지.
6년이나 지난 지금도 내가 그 철학원 아저씨의 말을 되새기고 있다는 걸.
 
"글을 써야 해. 결혼해서도 글 써. 안그러면 못참고 뛰쳐나올거야.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계속 해."
 
일에 파묻혀 사는게 지겨워진 이제서야 깨달아.
철학원 아저씨가 옳았다는 걸.
나는 글을 써야 해.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해.
잠을 줄여서 글을 쓰는 오늘이 오게 될 줄 알았을까.
지하 단칸방 철학원 아저씨는 천진난만한 그날의 나를 보며 비웃었겠지.
느이들 인생도 자신과 똑같은 무성의한 인생이 될거라는 걸 알고서는 양껏 비웃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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