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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lovestory_162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씨뽈랄라zz★
추천 : 14
조회수 : 6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5/02/07 20:38:08
이 이야기는 조금은 맘 아픈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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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는 권씨 성을 가진
남자 집사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아내와 이혼 후 혼자서
아들과 딸을 키우고 계시는데 중3 짜리 딸은 착하고
성실하지만 19살 짜리 아들 녀석이 매우 속을 썩였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성훈" 입니다.
성훈이는 원래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혼 하신 후 성훈이는
수 없이 방황하였습니다.
고1 때부터 시작된 잦은 가출과 방황...
그에게는 그저 같은 부류의 친구들 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만남의 대상이었을 뿐 자신을 걱정하고
맘 아파하는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사랑은 몰라주었습니다.
어느 날, 가출하여 이곳, 저곳을 떠돌던 성훈이와
친구들은 빈집에서 잠을 자다가
순찰을 돌던 경찰관들에게 가출 청소년
단속에 걸려 파출소로 잡혀왔습니다.
경찰분은 아이들을 훈계한 후 부모님들께
인계하기 위하여 모두 한 자리에
앉혀 놓은 상태 였습니다.
그런데 한 경찰관 분이 성훈이의 오른쪽 다리를 보니
다리 한쪽만 퉁퉁 부었고, 성훈이의 몸이
열이 많은 것이 어딘가 병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여 성훈이를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권집사님을 병원으로 오시게 하였습니다.
진단결과는 "뼈 암" 이었습니다.
권 집사님은 어려운 살림에 속만 썩이던
성훈이가 "암" 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다행히도 주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서 수술비와
입원비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리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암 세포는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리 뼈의 암세포가
폐로 번진 것이었습니다.
성훈이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약물치료를 받고
점점 좋아지는듯 보였습니다.
아빠의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성훈인 여전히
아빠를 외면하고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 아빠가 들어오는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러 성훈이는19세가 되었고,
그는 여전히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폐의 암은 좋아졌다가는 다시 악화 되고,
다시 좋아졌다가 악화 되기를 반복 했습니다.
그 사이 성훈이의 머리는 다 빠졌지만,
이 녀석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있는듯
아무런 걱정도 없이 여전히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들여서 놀고,
자신의 몸 상태에는
도무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것 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때 까지 성훈이의 얘기를
말로만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녀석이 단 한번도 "교회"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훈이는 아빠의 권유에 못이겨
아빠를 따라 친구와 함께
저희 교회에 왔습니다.
저는 한 눈에 그가 바로 권집사님의 말썽쟁이 아들
성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훈이를 청년회의 모임에 데리고 가 함께 이야기도 나누며
어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성훈이와 그의 친구는 나이차 때문인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던것 같았습니다.
제가 성훈이에게 다음주에 영화를 보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녀석은 알았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다음주가 되었을 때 성훈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과 집사님들 몇 분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얘기를 들어보니 성훈이의 병세가 다시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병문안을 가길래 저도 따라 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갔을 때 성훈이의 상태는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권 집사님은 다시 상태가 좋아지는것 같다구 했습니다.
저는 성훈이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성훈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다음으로 미루고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몇 일 후 저는 교회 분들과 다시 병문안을 갔었습니다.
그 때는 꼭 말을 걸어서
"성훈이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해야지" 라는 각오를 하고 갔지만
그 날은 성훈이의 폐에 자꾸만 물이 차서 물을 빼는
호스를 연결하고 있길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성훈이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저역시 청소년 시절에 방황을 경험 했기에
그의 대한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다시 몇 일이 지났습니다.
성훈이는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가고 있었습니다.
이 철 없는 녀석은 그제서야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아빠의 사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믿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아빠 맘을 아프게만 하던 녀석이
그 날은 아빠가 하자는 대로 온전히 따라서 하더랍니다.
성훈이는 점점 더 숨이 차 올랐습니다.
아빠는 성훈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수 없었습니다.
성훈이는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어떻게 해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어?"
권집사님은 그 때 이 아이가 자신의 품을 떠날것 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권집사님은 핸드폰으로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구원의 메세지를 가르쳤고 아들은 순수히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누워 있던 성훈이가
무척이나 목말라 하며 힘들어 했습니다.
아빠는 성훈이에게 물을 떠다 주었고 성훈이가
그것을 다 마시려고 하자 아빠가
말했습니다.
"성훈아...너 이 물 다 먹으면 또 숨차서 힘드니까 조금 참아,,,응..."
평소 같으면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자기 뜻대로 하고야 마는 성훈이가 그 날은 아빠의 말에
순수히 따라주었다고 합니다.
"알았어 아빠..."
그리고 잠시 후 성훈이의 숨이 거세게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권집사님은 아들을 부둥켜 안았습니다.
성훈이가 아빠에게 힘을 내어서 말했습니다.
"아빠... 기도해줘..."
권 집사님은 아들을 껴안고 온 사랑을 다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성훈이는 아빠의 눈물을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내 몰아 쉬고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빠는 성훈이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말썽쟁이 아들은 끝내 아빠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겨 놓고는 떠났습니다.
그 녀석의 나이 겨우 만 18세 입니다.
성훈이가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던 날 저는 교회에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녀석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친해지고 싶은데..."
그리고 교회에 도착했을 때,
목사님께서 성훈이의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성훈이를 위해 할 수 있는건
검정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매고 애도 하는것 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그 녀석의 영정 사진 앞에
한 송이 국화를 놓아두고는 잠시 머리숙여 기도할 때
성훈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성훈아...너하고 진짜로 친히지고 싶어는데...
형도 네 나이때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
너와 재미있는 영화도 같이 보고 니가 먹고 싶은거 사주고 싶었다... 성훈아
잘 가... 나중에 우리 천국에서 만나서 실컷 얘기하자..."
저는 성훈이를 보내면서 한가지 다짐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국화꽃 한송이...
제가 성훈이에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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