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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날...
게시물ID : freeboard_16276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인독팍
추천 : 2
조회수 : 1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3 00: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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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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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그날도 푸르렀으리라.
 
논의 벼는 이제 알곡을 실히 담느라
조금씩 고개가 무거워졌을 것이고
 
이 틈에 밭고랑의 고구마는 땅 속을 뿌듯히 채우고 있었으리라.
 
 
아침,
아그들 아버지는 막걸리 냄새 가득한 짐발이 자전거를 꺼내고,
아그들 어머니는 가마솥 한소끔 퍼진, 짐내음 푸짐한 밥 한그릇 퍼 상에 올렸으리라.
 
숭늉 한 그릇 마저 마신 아그들 아버지는,
짐발이 자전거를 타고 주조장으로 아침 출근을 떠나셨으리라.
 
된장국에 만 밥 한 술 뜬, 아그들 어머니는
고이 자는 아그들 얼굴을
두어번 쓰다듬었으리라.
 
점심,
밥 한 술, 찬 물에 떠 먹고 옮기는 발길
갑자기 무거워진 그 발걸음에도
아그들 어머니는 밭으로 향했으리라.
 
한 고랑, 두 고랑 호미로 풀을 뽑고,
실히 익은 고구마의 껍질을 튕겨 보며
하루의 해를 가늠할 때,
 
한창 바쁠 시간,
 
이놈이 아우성을 쳤으리라.
 
얇디 얇은 뱃가죽을 조고만 다리로 올려차며
'어머니, 어서 집으로 가십시다.'
아우성을 쳤으리라.
 
나올려고 기를 쓰는 막내 녀석 달래노라
큰아들 학교 파하고 온 줄도 몰랐으리라.
 
"가서, 할머니 모시고 오니라."
10살난 큰아들은, 책보따리 벗어 던져놓고
사월산 막대기 장군 놀이 벗어 던져놓고
개구리 잡자는 친구들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벽진, 그 외갓집으로 외할머니 찾으러 달려 갔으리라.
 
치마에 바람 일으키며 달려온 외할머니,
위로 다섯이나 애를 나은 딸네미지만,
한마디 하셨으리라.
"욕 봤다."
 
똥그랗게 뜬 눈으로, 막냇동생을 바라보던 큰아들은,
막걸리 냄새 가득한 짐발이 끌고 돌아오신 아버지 보며,
이렇게 소리쳤으리라.
"아부지, 엄마 애 났소~!!"
 
짐발이 세워 놓은 아버지는 먼저 세수를 하셨으리라.
갓 해산해 누워 있는 아내와
갓 태어나 누워 있는 막냇둥이를 번갈아 쳐다 보셨으리라.
 
열 다섯되고 열 셋된 딸들이 어머니 대신 차려올 밥상을 기다리며
어머니 한 번 쳐다보고, 손길 한 번 잡아 준 뒤에,
이제 막 나온 막내 아들놈을 두 손에 안아 보셨으리라.
 
"그놈 자식, 손가락 한마디만 허구나... 허허허"
 
"욕 봤네."
한 마디 하셨으리라.
 
다섯살 일곱살, 형이라거나 누나라거나 하는 것들은
신기한 듯 여린 동생 곁을 떠나지 못하며
손발을 만지작 거렸으리라.
 

아그들 아버지는 막걸리 냄새 가득한 짐발이를 끌고 아침을 나서고
아그들 어머니는 막둥이 젖 물리며,
어제 캐다 만 고구마를 걱정하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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