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굉장히 여려요. 작은 말도 깊게 받아들이고 상처받고 부탁 거절 못하고.. 비유하자면 남들이 조별과제 이것저것 핑계대고 다 빠져도 혼자 묵묵히 하고 조원 이름 넣어서 같이 발표할 것 같은 호구? 남이 보기엔 피곤한 성격이죠.
전 그 친구가 적어도 남 거절 못해서 피해보는건 싫었어요. 쩔쩔매는 것도 별 같잖은 놈들한테 상처받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늘 그 친구에게 너무 깊게 생각하는걸 고치라고 조언을 했어요. 약속신청하는 마음에 안드는 이성에겐 단칼에 거절하라, 길거리에서 번호 주기 싫으면 철판깔고 주지마라. 어차피 돌려말하면 절대 못알아먹는다 하고요. 그야 그 친구가 먼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으니까요.
근데 사람 성격이 변하는게 쉽지 않죠. 그 친구는 변하지 못했어요. 노력했는지 모르겠어요. 남에겐 한없이 친절하게 대하면서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남에게 미움받기 싫어해서 상처받기 싫어해서 지가 더 피곤하게 사는 그 성격이 너무 답답했어요. 교수에게 한마디 들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다른 친구에게 쓴소리 한번 들었다고 하루종일 우울해하는 그 애가요.
마치 이리저리 빼서 쓰러지기 직전의 젠가같았어요.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도 와장창 무너졌어요. 요즘 말로 유리멘탈이죠.
오죽하면 굉장히 끈덕지게 들러붙는 이성에게 거절을 못하는 친구를 대신해 제가 나서서 얘한테 제발 연락하지 말라 그랬겠어요.
어쩐지 제가 더 짜증나기 시작했어요.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을 고를 때 어느 새 그 친구같은 성격을 떠올리게 됐어요. 그 친구가 남에게 거절못하는게 너무나도 싫어서 오히려 제가 더 표독스럽게 변했어요. 그 친구와 정 반대 성격의 친구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걔도 그러더라고요. 자신도 이 성격을 바꾸고싶다고. 근데 바꿔지는게 쉬운줄 아냐고.
네 누가 모르겠어요. 그럼 이제 걔는 그렇게 살라고 냅둬야하는걸까요. 그 친구가 스트레스 받고있는데. 어느때부터 걔가 그런 호구짓을 할 때마다 제가 다 스트레스 받기 시작했어요. 제 속이 답답하고 어지러워서요. 그 애가 카톡으로 이것저것 자신이 받은 불합리한 일을 말하는데 도대체 자신이 먼저 이 악물고 거절하지 못하면서... 어쩌라는건지 모르겠어요. 변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그런 너조차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가라 해야 하는 걸까요?
화가 나고 짜증이 나요. 분명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미운건 아니예요 싫은건 절대 아니에요. 다만 걔의 행동을 보면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처음엔 이해해줬는데 계속 그 친구의 호구짓이 반복되니 제가 지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