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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다
게시물ID : gomin_16293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tpunch
추천 : 14
조회수 : 1178회
댓글수 : 78개
등록시간 : 2016/05/20 03:33:25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억울하게 명을 달리하신 피해자분께 실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실체없는 여혐이니 여성 상위시대니 하는 이야기에 분노를 감출 수 없어 몇 자 적어본다.

작년 이맘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다가 집 앞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인데 담배를 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내 집 앞에서, 담배연기조차 새어나가지 않을 곳에서 담배를 폈다.
그리고 두들겨맞았다. 주먹에 안경이 날아가고 목이 졸렸다.
가해자는 맞은편 집 대문 한 켠을 막아놓은 돌덩이를 들어 나를 내려치려고 했고,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가해자는 지집년이 자전거를 타고 담배를 피는 게 엿같다고 말했다. 그리곤 간질 발작이 도져서 병원에 실려갔다.


더욱 비참한 것은 내가 폭행을 당한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을 할 수 없단 거였다.
가해자가 병원에 가고 나는 혼자 지구대에 도착했다.
지구대에서 경찰관들은 사건 경위를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왜 때렸대?'
'담배펴서 때렸대'
'기집애가 담배펴서 그랬구만'

비참했다. 피해자인 내가 여자가 밖에서 담배를 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 정당화되었다.
지구대 경찰관들은 선처를 종용했다. 혼자 화를 내며 나를 패다가 쓰러진 가해자가 간질발작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열받게 했으니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은 경찰서로 이관되고 나는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며칠간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자세한 사건 경위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폭행을 당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 할 수 없었다.
담배를 피다가 맞았다는 사실을 밝히면 남들이 '그럴만했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무서웠다.
인터넷에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에도 '담배를 펴서 맞았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여성 흡연자를 보는 시선을 알기에 나는 스스로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같은 집에 살고 가해자는 나와 고작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있다.
매일 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그 사람이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다.
부모님은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신다. 걱정하실까봐, 그리고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아실까 이야기를 드리지 못했다.
말씀을 드리고 이사를 가면 나아질까? 그래도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 나를 폭행할지 모른단 불안감에 둘러쌓여 살아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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