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화목하지 않은건 아니에요. 화목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요. 식구는 저 합해서 넷이고.. 일단 가정형편이 나쁜건 아니에요..
저는 아빠랑 친해요. 특이하죠. 아빠는 감성이 많아서 뮤지컬이나 예술계열에 흥미도 많으시고, 문학도 좋아하시고, 천문학도 좋아하세요. 그래서 오히려 저랑 더 통해요. 엄마는 정반대에요. 어찌보면 좀 인생을 재미없게 산다고 생각될 정도지만 회사일에 엄청난 열정도 있고 강의도 다니시고 하세요.
엄마는 사회생활을 워낙 오래하신 분이고 조울증이 조금 있으셔서 아빠한테 이유없이 짜증을 내거나 무뚝뚝해요. 그것 때문에 옛날부터 아빠는 엄마한테 서운해 했고 엄마는 친가나 사회에서 데일 대로 데이고 거기서 아빠한테 서러운 일이 많아서 솔직히 두 분이 싸울 때 둘 다 이해가 되서 어느쪽 편도 들어줄 수가 없었어요.
문제는 저에요. 저는 눈치가 좀 빨라요. 남 기분 살피고 분위기 맞추고 장단 맞춰주고 이게 제 일이에요.
근데 이것도 제가 지금 20대가 넘어서 점점 지치더라구요.. 오빠없이 셋이 외식 나가는 날엔 정말 체할 것 같아요.
눈치를 살피기 싫어도 자동으로 그게 되네요. 나도 힘들고 지치는데 또 그대로 못냅둬요..
오유에 결혼게시판이 생기고 섹스리스라는걸 처음 알았는데 그때 저희 부모님은 아주 옛날부터 그 상태였던걸 깨달았어요
같이 사는게 신기할 정도죠.. 그냥 오빠랑 저 때문에 사는거지.. 집도 그냥 주무시러 오시는거 같아요.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황혼이혼이요........... 그게 두 분을 위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두 분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취미조차도.. 생활도..
그러다가 아버지가 최근에 동창회를 많이 나가셨어요. 별 생각 없었죠. 원래 그 나이때는 동창회도 나가고, 동창회 친구분들이랑 등산도 가시고 당구도 치고 맛난거 드시러 가시고 그것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다른 분을 만나시는 것 같아요. 제 오해였으면 좋겠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냐면 제가 학교에서 일찍 왔던 날 아버지가 오시고 잠시후에 나가셔야 된다고 마루에 앉아 계셨는데 전화를 받으시고 "지금 집이니 나중에 걸게"라고 하셨습니다.
원래 밖이니 집가면 다시 건다고 하지 않나요..? 저희 아버지는 집에서 전화를 (다시 건다고) 끊으신적이 없습니다. 이게 첫번째 였어요.
그리고 최근 외출이 잦아 지셨어요. 3주 내내 돌아오시면 바로 나가셨거든요. 어머니랑 오빠는 원래 늦게 와서 집에서 저녁식사는 항상 저랑 아버지만 드시거든요.. 3주 내내 저 혼자 밥을 먹은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친구분 카톡을 보여주시다가 대화방 목록을 봤는데 개인톡으로 여자분 성함이 있었습니다.
그냥.... 제 망상이겠죠 오해겠죠..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계속 생각이 나고 만약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고 아버지가 그걸 인정해버린다면 저는 정말...........
정말.. 너무 힘들거 같아요........
어쩔 수 없는거라고 생각해보고 오히려 합리적인거라고 생각해봐도 너무 힘드네요....
엄마랑 오빠는 아무것도 모를텐데 만약.. 만약 정말이면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해요. 아빠가 행복하다면 무얼 선택해도 조용히 받아들이고 싶어요.
근데 그만큼 절 좌절시킬것 같아요....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닌거 같아서... 내가 사랑하던 아빠가 이제는 아니게 될까봐 무서워요. 그리고 엄마도.. 엄마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도 사랑해요.
차라리 제 오해였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죽어서 아무 생각도 못했으면 좋겠어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더 답답하고 우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