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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대표의 위엄.txt
게시물ID : sisa_1633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뻐킹나꼼수
추천 : 1/7
조회수 : 46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1/23 14:21:50


1.천안함 사건에 대한 비난의 초점을 북한이 아닌 우리나라에 맞춰옴.

“김대중 대통령이 저기 누워서 지금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지난 정부는 한쪽으로는 평화를 구축하고 한쪽으로는 안보를 튼튼히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전쟁의 먹구름이 우리 앞에 다가오니까 그 때가 얼마나 좋았으며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됐다(…)
그 평화가 그립다.(2010년 5월25일, 6.2지방선거 명동 선거유세)”
“저는(서울시장 후보) 이 관권 선거를 한쪽으로는 막아내고 국민과 함께 전쟁의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는 데 안전을 지켜내는 데 최선을 다 하는 그러한 데 노력을 하겠습니다.(2010년 5월2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정부가 지난 10년 민주정부가 구축한 평화를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부정할 뿐 아니라 전쟁불사라는 전쟁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이 정부는 민주주의를 짓밟고, 경제 무능에 평화까지 짓밟고 있다
“이 정부 2년 반 동안 이렇게 전쟁 먹구름이 우리 앞에 돌아오도록 전쟁 위협을 몰고 갈 수 있나(…)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 치욕의 패전을 자랑인양 당당하게 말하면서 선거를 관권선거로, 선거방해로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이용하고 있다.(2010년 5월29일, 6.2지방선거 광화문 선거유세)” 

2.북한 핵보유에 대해서 옹호함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감싸며 
▲“미국에게 對北체제보장과 경제 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하자 
▲“핵을 가지고 어느 나라를 전시적인 도발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3.북한이 만든 위조지폐에 대해 부정함

그녀는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문제를 제기하자, 2006년 2월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미국은 6자회담의 성사 이후 모처럼 마련된 평화정착의 기운에 증거 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僞幣(위폐) 제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韓美정보당국조차 
“북한이 지폐를 제조하는 곳에서 100달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4.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폐지를 요구함

▲“국보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2004년 9월6일)”며 2004년 10월 국보법 폐지안 공동 발의에 나섰고, 
▲2006년 3월24일 총리 지명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2005년 7월21일 일본 토쿄에서 열린 ‘6·15선언 발표 5주년 기념 남북해외합동강연회’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문화돼 상징성으로 남아 있다”며 
“올해 보안법 문제가 수면 위로 뜨면 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5.과거에 간첩혐의로 구속됨

한명숙씨는 과거 공안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많다. 韓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 朴聖焌(박성준)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당시 박성준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韓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金瓆洛(김질락)·申榮福(신영복) 주도의 ‘민족해방애국전선’과 李文奎(이문규)·李在學(이재학) 주도의 ‘조국해방전선’ 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非(비)합법, 폭력·非(비)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共産政權(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6.과거에 좌익방송을 듣고 선동을 하여 구속당함

韓씨는 1979년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처벌받았다. 
그는 당시 이우재·장상환·황한식·신인령·김세균과 만나 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 목소리 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판결문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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