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훔쳐본다는건 재밌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가끔 담장에 몸을 숨기고 눈만 빼꼼히 내민 체 살다 너를 보고야 말았다 사람이 무성한 거리를 혼자서 오도카니 버티고 서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사는 듯 죽어가는 너 그 순간부터였으리라, 내 가슴 속에 돌을 얹은 것이. 무언가 한마디 위로를 내밀어보고 싶지만 메마른 황무지에 꽃한송이가 무슨 도움이리 결국 너는 수많은 날을 견뎌 스스로 빗물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너에게만 혹독한 가시를 세운 이 길 위를 울며 걸어야 하는구나 그리하여 오지않을지도 모를 그날을 위해 희망으로 삶을 견뎌야 하는구나 가슴이 아프구나 내 어찌 너를 보고 말았을까 손 한번 내밀어주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고 가슴에 칼을 갈거라 낡고 비루한 칼 엷게 갈아 손 벨듯이 예리해지거라 그리하여 이 힘든 겨울을 나고 싻을 틔어라 그럼 나 기꺼이 그 밭을 일구어주는 사람이 되리니 그때까지 그대는 죄가 없어도 죄인처럼 버티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