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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오초칠국의 난 - 조조의 죽음
게시물ID : history_163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4
조회수 : 297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14 14:03:45

오왕 유비를 비롯하여 일곱 제후국들이 반란 일으켰다니 소식은 한나라 조정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고조 유방 때도 제후들의 반란이 있었다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았고 게다가 같은 황실의 일원이 일으켰다는 것은 대단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제는 즉시 한의 개국공신인 강후 주발의 아들인 조후 주아부를 태위에 임명하고[1], 주아부로 하여금 36명의 장군을 이끌고 가서 오나라와 초나라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곡주후 역기로 하여금 조를 치게 하고, 장군 난포에게는 제나라를 치게 하였습니다. 또한 대장군 두영에게 형양에 주둔하여 제나라와 조나라 지역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두영은 떠나기 전 과거 오나라의 승상을 했던 원앙을 경제에게 추천하였고[2], 원앙은 경제의 부름을 받고 입조하였습니다. 그 때 경제는 조조와 함께 이번 반란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어사대부였던 조조는 원앙이 과거 오나라의 승상이었으며, 오왕에게 뇌물을 받고, 오왕을 비호한 과거 전적을 비추어 그가 이번 반란의 계획의 전모를 알고 있으리라 판단 하에 그를 처벌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좌관들이 <이미 반란이 일어났는데, 원앙을 처벌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는 말에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3][4].

 

 

경제는 원앙이 들어오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오나라의 승상이었다니 오나라의 신하 전녹백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군? 지금 오와 초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대가 보기에 어떨 것 같은가?」

 

 

 

경제의 말에 원앙이 대답하였습니다.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곧 격파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오왕은 산에서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며 천하의 호걸을 불러 모아 백발이 다 되어 난을 일으켰소. 일이 이와 같으니 그의 계획이 십분 완전하지 않다면 어찌 난을 일으켰겠는가? 어찌하여 그가 무엇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경제의 말에 다시 원앙이 대답하였습니다.

 

 

 

「오나라에 구리와 소금의 이익으로 말하자면 그 이익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찌 호걸을 얻어 불러 모았다 할 수 있겠습니가! 가령 진실로 오나라가 호걸을 얻었다고 하면 역시 곧 왕을 보좌하여 의를 행할 뿐이지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나라가 불러 모은 것은 모두 무뢰배들로서 도망다니며 사전이나 주조하는 간교한 무리일 뿐입니다. 따라서 서로 이끌어 모반할 것입니다.」

 

 

 

경제와 함께 원앙의 말을 듣고 있던 조조가 말하였습니다.

 

 

 

「원앙의 생각이 옳습니다.」

 

 

 

경제는 원앙의 대책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원앙은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기를 요청했고, 경제는 그의 말에 따라 조조를 포함한 신료들을 궁전 동편의 동상(일종의 대기실)으로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조조는 몹시 분노하였지만 황제의 명령을 거슬릴 수는 없었기에 속으로 삭히며 물러났습니다. 사람들이 물러나자 원앙은 경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와 초가 서로 주고받은 글에는 ‘고제(유방)는 그 자제를 왕으로 삼아 각각 영토를 나누어주었다. 지금 적신 조조는 제 마음대로 제후들을 처벌하여 그 땅을 삭탈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반란의 명분을 삼았으니 서쪽으로 나아가 함께 조조를 베어 죽이고 옛 땅을 회복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현재의 대책으로는 조조 한 사람을 처형하고 사신을 보내어 오와 초 등 일곱 나라를 사면하며 그 삭감당한 옛 땅을 회복시켜주면 곧 병사들이 가히 칼날에 피를 물들이는 일 없이 모두 해산하게 될 것입니다.」

 

 

원앙의 말에 경제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반란군의 명분은 원앙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신하인 조조를 죽이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결국 원앙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원앙을 태상(종묘의례 주관)에 배수하고 오왕 유비의 동생인 유광의 아들 유통을 덕후(德候)를 종정(황족에 관한 일 주관)에 임명하였습니다. 원앙은 이 오왕 유비를 달래기 위해 행장을 갖추어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 일 후 황제는 중위를 시켜 조조를 불렀습니다. 중위는 조조를 수레에 태워 동시[5]로 순행하였습니다. 조조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 것을 느끼고, 관복을 입고 참형 당했습니다[6]. 조조는 현 체제로는 한나라가 어려워질 것이라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은 너무 독단적이었고 각박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태도가 그에게 죽음을 안겨다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원앙은 경제의 명을 받들고 종정 유통과 함께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습니다. 이때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대는 양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왕 유비의 조카인 유통이 먼저 막사 안으로 들어가 오왕을 만난 후, 원앙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왕 유비는 원앙이 자신을 설득하려 온 것임을 이미 눈치채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동쪽 황제이다. 어찌 누구에게 절할 수 있으리요?」

 

 

그러면서 유비는 원앙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비는 원앙을 장군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원앙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비는 도위 한 사람에게 군사 500명을 주어 그를 군영 안에서 못나가게 하고 감시토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원앙이 예전에 오나라의 재상을 하고 있었을 때, 알게 된 종사가 그 때 원앙을 감시하고 있던 교위사마를 하고 있었고 원앙은 그의 도움으로 오나라를 탈출하였습니다[5].

 

 

이렇게 양측 간의 최후 교섭마저 유비가 야심을 드러내며 실패하면서, 양측은 전면적인 대결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조가 죽는다고 하여 이 반란이 멈춰질 것이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이렇듯 조정 내에서도 조조가 죽는 듯 복잡한 사정이 있었고, 게다가 당시 황제였던 경제가 전쟁이라는 것을 처음 겪어본 탓에 조조를 죽이는 무리수까지 써가며 사실상 될 리가 없는 교섭 카드도 내밀고 결국 실패하는 등 심한 병크를 겪었습니다. 반란 제후들 중 유비는 전쟁을 경험해 본 노련한 사람이었고, 반란군의 기세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후들에 비해 조정도 유리한 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중심으로 조정도 서서히 초반의 어지러운 사정을 점차 가라앉히고 서서히 반란 진압에 돌입하기 시작합니다.

 

 

 

[1] 효문제는 죽기 전에 당시 태자였던 경제에게 「국가에 만약 급난한 일이 있거든, 주아부는 참으로 군대를 거느리는 중임을 맡알 만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문제 사후, 경제는 주아부를 상경 다음가는 직위인 거기장군에 임명하였습니다. - 사기 강후주발세가

 

[2] 두영은 조조의 제후 봉토 삭감 정책에 반대하여 조조와 사이가 멀어진 상태였습니다. - 사기 원앙조조열전

 

[3] 원앙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며 자신이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두영에게 오나라 반란의 진상과 대책을 황제께 직접 올리고 싶다고 전하였습니다. - 사기 원앙 조조 열전

 

[4] 원앙과 조조는 원래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조가 어사대부가 되어 원앙이 이전에 오왕 유비의 재물을 받은 죄를 조사하여 처벌하려다가 황제의 조칙으로 평민을 만드는 것으로 죄를 용서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 사기 원앙조조열전

 

[5] 동시는 한나라 때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었습니다.

 

[6] 조조가 어사대부에 올라 제후들의 봉토를 삭감하자고 주창하며, 이러한 뜻을 담은 개정법령 30장을 내었을 때 조조의 아버지는 고향인 영천에서 장안까지 올라와 조조를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하께서 즉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네가 정치를 마음대로 하여 제후들의 봉토를 삭감하고, 다른 사람의 골육 사이를 멀어지게 하여 사람들이 모두 너를 원망하는 자가 많다 하니,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느냐?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천자는 존귀해질 수 없고, 종묘는 편안해질 수 없습니다.

 

 

조조의 말에 조조의 아버지는 낙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씨는 편안해졌지만 조씨는 위태로워졌다. 나는 죽어버리겠다.

 

 

그리고 조조의 아버지는 약을 마시고 자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조의 아버지가 죽은 지 10여 일만에 오초칠국의 반란이 일어났고, 그들은 조조의 죽임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 사기 원앙조조열전

 

[7] 원앙이 오나라의 재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자신을 수행하던 종사들 중 한 사람이 원앙의 시녀와 몰래 정을 통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앙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발설은 하지 않고 예전처럼 그를 대해주었습니다. 나중에 그 종사가 원앙도 자신이 원앙의 시녀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고 달아나자, 원앙은 그를 쫓아가 데려와서 자신의 시녀를 그 종사에게 주고 예전처럼 대해주었습니다. - 사기 조조원앙열전

 

 

 

※ 출처 : 사기 효경본기, 사기 강후주발세가, 사기 오왕비열전, 사기 원앙조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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