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정희와 관련된 글들이 시게에 참 많네요. 역사적 평가가 이만큼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은 사람이죠.
긴 역사를 보면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유는 다르지만 그나마 공통점을 꼽아보자면 살아생전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가 완전히 틀렸음이 후대에 드러난 (혹은 후대가 만들어낸 ) 경우인 것 같아요.
진시황은 혼란스런 중원을 최초로 통일한 희대의 공적을 쌓고도 이유야 어쨌든 후대에 유씨에게 정권을 뺏기게 되었고 그 유씨들은 진시황의 '폭정'때문이라고 명분을 삼았죠. 최근 많이 보고되고 있지만 사실 진시황이 후에 유씨들이 사서에 묘사한 만큼 폭정을 하진 않았다고 하죠. 다만 전국시대 '상앙'이 기초한 법치주의가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람들에게 잘 흡수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진시황에 대한 평가는 따라서 후세에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건륭제. 강-건 성세라고 하여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일컬어 중국 근세의 황금기라고 부를 때도 있었죠. 하지만 사실 건륭제를 기점으로 중국은 패권을 서양에 빼앗기게 되는 시기이기도 해요. 삼번을 폐하고 사실상의 청의 건국을 이루고 기틀을 마련한 삼부자이지만 후세에 역시 비판을 듣기도 하는 이유는 시대의 흐름 (민권의 성장, 자본주의의 태동) 을 읽지 못하고 봉건 독재를 고수했기 때문이죠.
모택동. 저는 중국친구가 참 많은데, 대부분 페킹대나 칭화대 출신이라 모택동에 상당히 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모택동은 중국의 대일 전쟁 승리의 사령관이었고 현대중국 정신의 창시자이긴 하죠. 청대에서 비롯된 모든 부패세력과 단절하고 새로운 중국을 창조한 업적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그로 인해 초하향 평준화 되긴 했지만) 후에 덩샤오핑 - 장쭤민 - 후진타오가 노력하여 지금은 초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밑그림을 그려준 사람이기도 하고.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된 중국이란 관점에서) 하지만 말년에 저지른 '문화대혁명'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을것 같네요.
자 이제 박정희를 볼까요.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제조업과 중공업에 막대한 차관을 투입하고 근대적인 가치관을 국민들에게 주입시켜 노동력을 끌어냄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매력을 국민들에게 맛보게 해준 경제 사령관이었죠. 그 시점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 불림과 동시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끌어냈습니다. 물론 그 때 시작된 대기업 위주의 성장은 큰 오류였음이 나중에 드러나게 되긴 하지만, 그의 경제 성장에 대한 공로는 쉽게 지워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진시황과 건륭제는 오래되어서 그렇다치고, 모택동과 박정희의 경우는 비슷한 점이 있죠. 젊은이들에게 욕을 먹고 노학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되는. 왜 그럴까요? 바로 시대를 역행했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모택동이란 사람은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려 했죠. 문화대혁명을 통해. 중국이란 커다란 사회를 리셋하려 했단 말이에요. 완전한 맑스적 세계로. 하지만 주변 국가가 자본주의로 잘 살고 있으며 더 발전하려 하는걸 지켜보며 국민들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거죠. 박정희는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려 했습니다. 이건 누구도 부정 못하죠. 자본을 손에 쥔만큼 주인의식이 성장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이었죠. 거꾸로 시대를 역행하려 했기 때문에 옛 시대적 가치에 향수가 있는 노학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환영 받는 것이고.
전 이런 관점에서 박정희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택동이 '국부'와 같은 존재로 중국인들의 마음에 살아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그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중국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어쨌든 가야 할 길로 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거든요. 박정희가 경제에 있어서 공이 있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그가 시대를 역행하려고 했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 그 사람의 후손이 다시 정치로 돌아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시대적 가치를 역행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경제, 경제 하는데 박정희 아닌 사람이 경제 잡는다고 공산주의로 가진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