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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의 숨은 학살자, 미국과 전범 헨리 키신저
게시물ID : humorbest_1636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법천지
추천 : 62
조회수 : 1857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4/13 00:41:47
원본글 작성시간 : 2006/09/01 00:53:18
 아마도 30대가 넘은 사람들은 어릴적 전두환 아자씨가 집권말기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에 가서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내용은 기억나지않지만 저는 그게 월남전 얘기인줄 알았다가 커서야 그게 캄보디아에서의 참극인줄 알았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떤 시대여서 정권유지차원에서 어린 학생들은 전부 그 영화를 관람하게 했고, 이후에도 주연 배우들을 우리나라로 초대해서 무슨 대담 특집방송을 보냈던 게 기억이 나는군요.

킬링필드!
 우리 기억에 박힌 킬링필드의 이야기 전부는 '폴 포트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캄보디아 사람 200만명을 학살해버린 참사'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이 학살자 폴 폴트를 처단하기 위해 캄보디아, 미국, 유엔이 국제재판 협상한던 와중에 쿠테타로 집권한 훈센 총리는 정문태 기자를 만나서 우리에게는 다소 생경한 주장을 합니다.
"킬링필드, 미국 책임이다. 사람 죽여놓고 그냥 못넘어간다. 69~73년 사이 벌어졌던 킬링필드도 재판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훈센을 으르고 달래서 '75~79년' 기간동안 학살에 대해서만 문제삼기로 재판 범위를 한정합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69~73년 사이의 학살은 미국이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75~79년 사이에 폴 포트의 크메르루즈가 최대 200만명을 학살하기 이전 69~73년 사이 미국은 60~80만명을 폭격으로 죽은 역사를 캄보디아인들은 지우지 못하였지만 미국의 힘과 훈센 스스로의 비정통성때문에 누더기 재판을 받아들였습니다.

 폴 포트는 75년 혁명에 성공하자 미국이 만든 괴뢰정부 론놀(Lon Nol)에 부역했던 국민 10만여명을 숙청했고, 질병 기아로 사망한 자가 80만명을 웃돌게 됩니다. (이 역시 미국과 유엔이 국제단체 구호사업을 막아버린 탓이 커서 미국과 유엔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폴 포트의 민주캄푸치아 정부가 킬링필드를 저지른 건 맞지만, 69~73년 미국 폭격으로 손쉽게 학살당하던 걸 목격한 공산 반군들은 미국을 편드는 자국민에 대해 과연 고운 감정을 가질 리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부분 잘못을 폴 포트 전체 잘못으로 몰아가려 시도했던 미국은 과연 정당할까요

 폴 포트 집권 기간중 사망자수는 그 집계가 정확하지 않지만, 그중 대체적으로 인정받는 핀란드 정부 보고서로는 사형, 질병, 기아 사망자 합산 80~1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전 69~73년 미국 융단폭격으로 죽은 사망자수는 60만명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1차 미국 학살과 2차 민주캄푸치아의 학살 합해 10년동안 150~160만명이 살해된 것이 전체 킬링필드의 전모이다. 그리고 세계에는 1차 미국 학살 기간동안의 양민 피해는 쏙 빼고 2차 학살 사건만 알려진 게 우리가 아는 전부이다. 즉, 60~70년 사이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월남, 라오스, 캄보디아 세 나라를 동시에 학살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육군이 투입되었다는 이유로 월남전만 세계에 알려졌다.  이 정도면 소규모 세계대전이라고 불러도 마땅하지않을까요?

그런데, 이 사건은 한반도 상황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69년 3월 18일 최초로 '아침식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폭격을 시작하였는데, 한달도 안된 4월 15일 북한이 미군 EC-21 정찰기를 격추시켜버리자 열받은 닉슨 대통령은 엉뚱한 캄보디아를 '점심식사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폭격을 하게된겁니다. 북한한테 뺨맞고 캄보디아가서 화풀이 한 셈이지요. 그 화풀이에 화난 공산반군은 나중에 학살로 화풀이 한 셈이구요. 그렇게 엉뚱한 캄보디아에 화풀이 한 분풀이 폭탄양은 2차대전 일본에 퍼부은 16만톤, 2차대전 통틀어 퍼부은 양보다 많이 퍼부었다는 한국전 50만톤보다 조금 많은 54만톤을 퍼부어버립니다. 종류는 네이팜탄, 고엽제, 집속탄 등등(모두 57년 제네바협약 위반)

이를 쏟아부은 B-52수송기는 남베트남사령부 지시로 출격하여 때로는 상부 보고도 없이 사령부 자체 출격도 나갑니다. 캄보디아 폴 포트가 2차 학살의 책임이 있다면, 1차 학살의 책임은 닉스 대통령과 그를 배후 조종하던 헨리 키신저가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합니다만, 일각에서 전범처리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만 키신저는 지금도 세계적인 지도자로서의 입지가 굳건하죠. 

"베트콩이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캄보디아를 폭격해서 베트공과 연대를 끊어야 한다"며 비밀 폭격을 주도했던 키신저는 73년 미의회가 불법공습을 문제삼자 "캄보디아를 공격한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간 베트콩을 공격했을 뿐"이라며 거짓말을 합니다. 

캄보디아 폭격 명령을 거부해 군법정에 섰던 도널드 도슨 대위는 이런 말을 합니다.

"캄보디아 폭격 임무를 받았지만,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결혼식장을 폭격했다"

폴 포트도 죽었고 닉슨도 죽었지만, 국제 법정은 정의를 세우겠다며 당시 부총리였던  엥 사리, 총리였던 키우 삼판, 누온찌에 국회의장, 타 목 총사령관을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최소한 키신저 정도는 끼워넣어야 구색이라도 맞지 않을까요? 선전포고도 없이 중릭국 캄보디아를 폭격한 죄와 멀쩡한 시아누크 왕국을 전복하고 미국괴뢰정부 론놀을 세운 죄, 경고 한번 없이 폭격한 죄, 제네바협약을 위반해가며 불법 폭탄을 사용한 죄, 미의회에 이를 비밀에 부친 죄, 군통수권도 없이 폭격을 지시한 권력남용죄, 또 아직도 이를 부정하고 있는 죄, 모두 키신저가 저지른 짓입니다. 이게 여전히 강연 한번에 거금을 줘야 하는 세계의 석학의 모습니다.

60만명, 우리나라 군인수만큼의 양민이 죽은 사건, 침략과 경제 봉쇄로 이라크 어린이 100만명이 죽어 나가고, 4000명을 폭격해 죽인 아프카니스탄의 일 모두 이는 여전히 미국 입장에서는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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