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제외한 세계 어느나라의 교회가 한국 개신교회처럼 친미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거나 보인 적이 있는가!
그런데 한국 개신교가 친미적 성향을 보이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
첫째, 개신교 선교의 과정이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파되었다. 일본에 의해서 심한 억압과 착취와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때에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선교를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많은 동정을 베풀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그 선교사들처럼 선하고 착하고 한국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우스운 현상이다. 사실은 미국 선교사들 대다수가 친일 경향을 보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이 원시적인 민족을 개화시키고 살 길을 알려줄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선교사들이 쓴 책이나 기록에 그런 내용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을 너무나 미개하게 보아서 술과 담배를 금하게 했다. 즉, 이 미개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마지막 한 닢의 동전이 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농한기 때에는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보고서는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울 자격이 없는 민족이라 생각해서 교회에서 술과 담배를 금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일요일에 조선 총독부에서 열리는 와인파티에 참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역시 선교사들이 그 원인의 중심에 있다. 즉, 한국에 온 선교사들 대부분이 당시에 미국의 주류 신학인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의 하층민들 중심으로 세력을 일정부분 가지고 있던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한국 개신교의 신학은 앞뒤가 꽉꽉 막힌 극보수 신학이 되었고 사회적 참여나 평등이나 해방과 같은 기독교 본연의 임무는 소홀히 하거나 완전히 반대하는 그런 반사회적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을 미신숭배다 우상이다 하면서 없애려고 하고 배척했으며 그로 인해서 실제로 상당수가 사라져 버렸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기독교 개신교는 주로 북쪽에서 성행했다는 점이다. 즉, 북한에서 세력을 확장한 기독교 개신교는 북한이 해방되면서 공산화함에 따라서 공산주의의 이념에 따라서 먼저 기독교 신자라고 탄압을 받았고 나중에는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북쪽에서 주로 지주나 자본가였던 기독교 신자들은 이 때 공산주의에 아주 진저리가 나도록 당했기에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어서 한국 전쟁때 남으로 피난을 온다. 그리고 남으로 내려온 북의 기독교인들이 남한에서 교회를 세워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저렇게 커지기 전까지 우리나라 개신교의 대표격 역할을 하던 영락교회는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였다.
인구 분포로 보더라도 해방 전까지 기독교인의 비율은 북한이 5%를 넘었고 남한은 1-2% 정도를 오르내렸다.
그리고 북한의 기독교도들은 전쟁 때 남으로 올 수만 있으면 다 피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연고로 남한의 기독교 개신교는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아주 지독한 친미 반공주의자였기에 오늘날 그 전통이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친척 중에 원산에서 내려온 분이 한 분 계셨는데(지금 작고하셨다) 내가 그 분과 종종 말다툼을 했다. 80년대에 이미 나는 미국의 핵무기가 철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분은 나의 그 말에 화를 내시면서 나무라셨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핵무기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만약의 사태때에 소련의 핵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므로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아무런 죄 없이 미국 대신 핵공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철수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는데 그 분 말씀이 우린 미국을 위해서 그 정도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북쪽에서 남으로 피난오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과 그 친미적 성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들이 교회의 주축이 되었고 교회를 키워 나갔다. 그러다보니 친미적 성향과 보수적 경향은 어쩔 수 없는 한국 개신교의 뿌리가 되었고 그 근본이 되어버렸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많은 기독교 신자들과 신학자들이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감히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에 독재에 항거했고 그 결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민주화의 불길을 지피게 했지만 그들은 교회 내에서 언제나 소수였고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언제나 분노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독교의 면모를 다지려 했지만 그것은 곧 빨갱이 신학이라는 낙인으로 배타적인 개신교가 타종교에 보이는 적개심이나 배타성보다 더 강력한 적개심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서 민중신학은 거의 소멸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친미사대와 골수 반공으로 뭉친 기독교 개신교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이슈에서 언제나 미국 편을 들고 언제나 가진자의 편에 서고 언제나 불의의 편에 서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
저들이 저렇게 황당한 짓을 한 번 저지를 때마다 이 땅에서 잠재적 기독교인이 수 십만 내지 백만 명씩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20년 후의 한국 개신교의 모습은 안 봐도 비디오다.
역사의 죄인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고 의식이 있고 사고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해서 하나의 군소 종교단체로 전락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개신교 변하지 않으면 20년 후에는 60세 이상 노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국 개신교는 한나라당이 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한국 개신교가 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 모씨(이름은 두환이)가 회개해서 노략질한 것을 모조리 국가에 헌납하는 일이 발생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국가와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자기 스스로도 자멸의 길을 향하여 달리는 브레이크 파열된 벤츠 600 같은 한국의 개신교, 참 서글프다.
한기총이여 한기총이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울부짖던 예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바로 그 예수가 당신네들을 향하여 울부짖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