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세계에는 사람의 성씨만큼 많은 종류의 종교와 미신이 있다.
그 중에서 기독교계열(엄밀히는 기독교에서 파생된)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생성되었다.
사실 이 결과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억울할 만도 하다.
기독교는 유일신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비해 다른 종교는 다신교이거나 혹은 다원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타종교들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기 종교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아류종교를 이단이나 사이비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교의 경우 사이비를 정의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단판정은 공식적으로 거의 하지 않는다.
결국 기독교가 이단과 사이비가 제일 많다는 결과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불평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문제를 냉정하게 살펴보자.
이단과 사이비가 제일 많다는 것이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기독교 자체의 결함, 특히 누구나 독단적 교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더 큰 이유가 아닐런지...
성경은 함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실은 가장 많은 종류의 해설과 주석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다음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①성서의 해설서나 주석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성서의 가장 좋은 해설서는 바로 성서 자체이다.
②이 세상에 있는 어떤 글이건 문자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다.
- 출처 : 한쪽 뺨 맞고 성질내신 예수님 P216
①의 경우 성서 자체가 그다지 좋은 해설서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해설과 주석이 있게 된 것이므로 사실상 틀린 명제다.
그러나 일단 수용하기로 하자. 그렇다고 치자는 말이다.
②는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소위 기성종교라는 그룹에 스스로를 분류한 기독교(개신교) 교파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이단과 사이비들,
즉 가톨릭,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말일성도회), 제7일 안식일교, 안상홍교, JMS, 영생교, 만민교회, 다미선교회
등에 대해 타종교를 대할 때보다 더 극단적인 반감/적개심을 보이고 또 매도하고 있다.
자체정화를 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자면 일순 타당한 자세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살펴볼 때 이것은 “바담 풍”식의 억지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 사전"에는 사이비종교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이중, 삼중교리 및 교리의 무분별한 혼합
2. 교주의 신격화
3. 시한부 종말론(심판설) 주장
4. 반사회적, 반윤리적 성격
5.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
6. 운명/숙명론 강요/유도
교인들은 위의 사이비 종교의 특성을 정의한 것에 대해 토달지 마시라.
개신교나 가톨릭의 통일된 정의니까...
그럼 순서대로 살펴보자.
강조해둘 것은 이 글에서 기독교라 함은 개신교의 기성교파, 즉 장로, 감리, 성결, 침례, 순복음 등등 한기총 소속 교파라고 잠정 정의한 점이다.
1. 이, 삼중 교리로 치자면 기독교는 신약과 구약에서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하나님이라든지, 이방전도에 대한 문제,
율법의 해석과 적용문제, 생활에의 적용문제에 있어서 전혀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과 무교인에게 기독교는 일관성 있는 종교라고 선전/광고하고 있다.
사실 성서를 살펴보면 창조에서부터 타락, 대속, 부활, 종말, 심판, 영생과 영사(영원한 지옥)로 이어지는 일관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창조의 사실성, 타락과 원죄의 합리성, 대속의 수용성, 부활의 의미, 심판과 영생의 불공정성
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잠시 접어둔다고 해도 이. 삼중교리성은 일관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교리의 혼합문제로 넘어가자. 모세오경만 봐도 벌써 4가지 이상의 전승이 나타난다.
성경 전체적으로는 어떤가?
구약의 여러 전승에 예언자들의 행적, 짜라투스트라적 요소, 바빌론 유수에 의한 영향, 여러차례의 유대인 분산,
마카베서적 요소, 에세네와 그노시스적 해석, 헬라철학의 접목과 나아가 아예 헬라화되어 버린 것들,
바울의 혁명적 교리해석과 전파사역, 교부들의 억지 섞인 해석 등등등등등...
이들 요소들 중에서 한두가지만이라도 제거했을 때 과연 기독교가 존립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 삼중에 많은 요소가 혼합된 교리가 비논리성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적용에 있어서 합리적 방향성만 유지한다면
"박멸되어야할 기독교"라는 결론을 철회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상당한 자체정화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와 성경이 그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는 시각과 함께
“유대 개잡신”, “쓰레기 성경”으로의 비약(물론 안티기독교인들에게는 전혀 비약이 아니다)을 불식시키지 못한다.
이 점에서 가톨릭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괄목할 만한 반성과 개선을 보였다.
2. 비율로 보아서 일부이기는 하지만 기수상으로는 상당한 수의 목회자들이 내심 조용기 목사 같은 성공이나
JMS 같은 절대권력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니 일부비율이 아닌 대다수가 그러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가?
제대로 된 신학교(??) 출신이라면 분명히 삼위일체의 문제점을 알 것이다.
나아가 삼위일체의 문자적 의미를 부정하고 예수의 신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목사가 부지기수일 것이라 판단된다.
이 자리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교인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고 혹세무민하는 것을 탓하지는 않겠다.
다만 예수의 신성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신격화된 사이비 목사(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목사들)들은
예수가 신이 아니면서도 신으로 버젼업된 과정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차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양심적인 목회자(그리고 후보자)라면 예수의 신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더 강조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예비 사이비로 매도당할 위험이 더 크기에...
삼위일체라는 것은 그리스/로마 철학이나 중동 주변 종교들이 가진 3개체 개념을 차용한 것일 뿐이다.
삼위일체의 일부로서 성부와 성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니케아 공의회의 강령은
신앙을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통일시키고자 하는 강박감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유일신을 강조하려니 예수는 조또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반대로 하면 유일신 기조가 깨져 버리니
이런 뭐같은 딜레머를 나이스하게 해결하고자 한 것이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나이스하지 않았다.
삼위일체를 부정했다가 화형 당한 이는 도대체 몇이며, 교회의 분열(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후 생긴 반목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얼마인가?
이러한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예수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교주는 신격화되었다.
종교개혁이라는 불길을 지핀 부싯돌들 중의 하나인 오캄의 윌리엄 수사가 주장한대로
신앙과 이성을 분리했었으면 이러한 억지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논리적 완성을 추구하다가 더 웃기는 비논리를 만든 것이다.
삼위일체 문제에만 한정하면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이 더 합당하다 할 것이다.
삼위일체를 가지고 이단판정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이단임을 인식하지 못한 소치일 뿐이다.
기독교에게 있어서 “교주의 신격화”는 이단과 사이비 판정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예수는 신이 아니니까... 4복음서의 엉터리에다 억지 섞인 구약인용을 맞다라고 인정해 준다고 해도
예수는 “신의 아들”이지 신은 아니다.
3. 종말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종교가 가져서는 안 되는 교리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종말은 심판, 구원 및 상벌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심판의 부당성은 누누이 지적했다시피 죄의 성격부터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고, 신의 권력남용일 뿐이다.
또한 나중에 받을 상위나 영원한 지옥이라는 것도 믿음의 유무 같은 아주 저급한 기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거룩하신 창조주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무엇보다도 피조물을 상벌하는 창조주는 주인된 신의 성격과 자격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능자의 자격은 포기한 셈이다.
그러므로 시한부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종말론 자체는 불합리한 교리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단판정에 있어서 시한부만 거론한다.
예수와 제자들이 반복적으로 종말을 언급했기 때문에 기독교 스스로 종말론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그때는 아무도 모르며, 도둑같이 온다”는 경구(마태24:36)와
혼인잔치의 비유(마태22장)로써 무시한적 종말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기독교(가톨릭 포함) 역사상 종말론이 대두된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종말은 오지 않았고...
여기에 대해서 교인이나 스켑틱한 안티기독교인들이 불평/항의를 하면 좋은 핑계거리를 성경에서 인용한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 베드로후서3:8-9
성경... 참 편리하고 좋은 책이다.
어떤 항의에도 핑계거리를 얼마든지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위 인용글을 살펴보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종말은 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곧바로 다음절에서 주님의 날은 도둑 같이 온다고 또 씨부린다.
도무지 논리하고는 담쌓은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그럼 하나님이 사람의 손을 이용해서 성경을 썼다는 것인데...
이렇게 비논리적인 글을 쓰게 하신 분을 두고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웃겨서...
예수와 제자들이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말한 부분을 인용하겠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23:36)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제자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누가9: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마가13:30, 누가21:32)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로마서13:11)
여러분께서도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야고보서5: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베드로전서4:7)
자녀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적그리스도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요한1서2:18)
제자들이 했던 말은 일단 제쳐놓고 보자.
예수가 공언한 종말임박론과 베드로(베드로가 쓴 것인지도 불분명하다)의 서술 중 어느 것에 더 권위를 둬야 하는가?
예수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기 전에 종말이 와야 하는가?
아니면 제자에 서술에 따라 연기되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예수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 실없는 인간이 될 것인가?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치고 제대로 된 종교 없다.
4. 사이비 종교는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성격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글이 길어지니 시시콜콜하게 예를 들지 않고 생략하겠다.
그럼 기독교는 순결한가?
하기사 일제시대나 정권 바뀔때마다 주류 기독교가 보인 자세를 보면 아주아주 사회친화적이다.
윤리적으로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성경말씀에 입각한 행동만 해오셨다.
굳이 중세시대를 언급하지 않고 현대 한국 기독교만 봐도 그렇다.
한국판 하렘, 여신도가 일 없다(사양한다는 북한사투리, 거부의사)는 데도 듬뿍 베풀어준 물총은사,
제사장에게 부여된 권한을 적극 활용해서 룸과 요정에서 불쌍한 여자들에게 뜻깊은 헌금을 전달한 것
(도대체 목사가 접대비를 한번에 500만원 넘게 지출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해가 안감),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안면과 휴식을 약~깐 방해하면서 전도한 일...
그 밖에도 무수히 윤리적이고 말씀에 입각한 행동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장자에게 권위를 물려주는 당회장 세습은 율법에 충실한 기독교 윤리의 극치라 할 것이다.
5.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이란 정의에서 기성종교의 범위가 애매하다.
하지만 기독교로 한정하면 말보회가 대표적인 케이스 되겠다.
말보회의 주장에 대해 쩔쩔매는 기성교회 교인들의 꼬락서니라니...
다른 이단이나 사이비들도 기성교회를 씹어댄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단과 사이비들의 적개심의 대상이 되는 기성종교를 개신기독교에 한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경찰과 교도관에게 “나를 가두고, 억압하는 등 나를 핍박했으니 너는 나쁜 넘이다”라고 말하는 강도의 억지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므로 기성종교는 이 땅에 선착한 종교, 즉 불교, 가톨릭 등을 지칭해야 한다.
이런 의미로 기성종교를 정의하고 기성종교 대한 적개심을 따졌을 때 개신기독교를 따라잡을 종교는 하나도 없다.
6. 운명론, 숙명론을 강조하고 신자들을 유도하는 기독교계열 사이비와 이단들은 사실 성경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 기독교는?
성경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일관된 기조는 학교에서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종말에 대한 기다림이다.
종말의 때에 이르러 이미 죽은 자까지 구원받기 위해서는 살아 생전 하나님과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예수의 죽음은 부활과 재림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고, 재림은 심판과 종말과 영원한 구원의 조건이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역사들이 예수탄생의 예비하심이라고 우기는 것은 기독교인들이다.
극단적인 종말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기독교 성직자와 교인들은
“나중에 받을 상위”를 위해 열심히 믿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바치도록 가르치고 또 따르고 있다.
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더 웃기는 건 구원받을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명책” 운운하는 종자들이다.
다만 안 믿으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에 열심히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 및 이사야서의 일부분은 예정/운명설의 극치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서 예정/운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들이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배우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도무지 기독교만큼 예정과 운명을 강조하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기독교(개신교)는 어떤 종교를 이단으로 판정하는 순간 누워침뱉기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
기독교에 있어서 이단이라는 것은 자기들 밥줄을 위협하는 집단을 의미할 뿐이다.
가톨릭이 개신교를 잠시 관계가 소원해진 형제라고 일컫는 그런 여유를 개신교가 가지는 날은
바로 개신교가 지리멸렬하고 비주류들만 남았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