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3600억 들인 백제문화단지의 고증
게시물ID : humordata_16385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nsin
추천 : 2
조회수 : 864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11/24 14:39:34
 

 
이것이 현재 유일하게남아있는 백제 건축유물
 
아래부턴 당나라시대 장안의 건출물들
 





 
 
아래는 백제역사 단지입니다
 
 
 
 
  
 전문가 소견
 
우선 생각해 볼 것은 백제문화단지의 목탑이나 건물의 형태와 비율이 백제의 유물인 청동소탑편이나 [[호류지]] 등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양식임에도 건물별로 다른 점이 있다거나, 호류지 등이 백제 양식과 동일하다는 근거는 없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풍판과 같은 부재를 박공 지붕에 쓰거나 공포와 부연이 발달한 시기의 두터운 비율을 가진 지붕은 역시 백제의 건물이라기에는 신뢰성이 떨어져 보인다. 심지어는 복원안이나 모형보다도 기둥들이나 각 부분들의 높이가 낮아 둔탁해보이기까지 한다. 기둥 위의 포작을 보면 국내 유일의 하앙식 고건축물인 [[화암사]]의 것과 유사해 보이는데, 시기상 백제보다 훨씬 뒤에 건립되었고 하앙이 퇴화되는 시기의 건축물과 유사해 보이는 것도 타당성이 떨어져 보인다. 물론 국내 유일한 현존 하앙식 건물이라는 점에서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은 짐작할만하지만...
또한 현대 한국의 [[목수]]들은 조선시대의 건축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 건물을 짓는데 작업의 용의성을 위해 조선시대의 기법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만 하다. 현대에 지어진 삼충사 등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하앙 조차 사용되지 않는 기법이다.
 
[[단청]]과 장식도 문제인데 우선 단청 색상이 너무 광택이 선명해 화학안료 같고, 고구려 벽화 등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초록 계열의 색을 너무 많이 사용하였으며 벽을 분홍빛으로 칠한 것이 조선시대의 느낌이란 평이 많다. 상록하단의 경향이 삼국시대에 없었다고 단정 할 수도 없지만, 아무래도 신뢰성은 떨어진다. 당시 대륙과 열도는 단청보다 단순한 주칠위주 였는대 한반도만 후기식 단청을 했단게..
세부적인 문양쪽으로 가면 더더욱 의심스러우며, 단청업자와의 마찰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http://blog.daum.net/bineuza/3012298|#]] 장식면에서는 무늬가 찍힌 전돌이나 추녀 마구리 장식 등을 쓴 것은 고무적이지지만, 서까래 끝을 막은 기와/금동 장식, 풍경 등이 신라에서 출토된 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 왕궁과 절 건축에 쓰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
기와만큼은 회칠을 노출시키지 않고 깔끔하게 재현한 것은 좋지만, 망새를 쓰는 조선시대의 기와 배치를 사용해 결국 치미의 위치가 제대로 맞지 않고 바깥으로 튀어 나와 버렸다.  지붕선또한 조선식이라 도저히 백제의 건축이란 느낌을 받기 힘들다
하앙식또한 당시것이 아닌 고려 후기에 지어진 사찰을 모델로 만들어진것이라 논란이 많다

http://i.jjang0u.com/data3/chalkadak/160/201409/27/141179002286443.jpg
유물이 아예 없는것도 아니고 백제 혹은 신라시기의 유물이 있음에도 반영하지 않았다
 
 
요약
 
당나라와 남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 건축을 유물에서 보여지는 하앙식이 아닌 하앙식이 쇠퇴해서 거의 남아나지 않던 조선식 하앙식으로 만듬지붕 모양세 단청 마저도 조선식으로만듬  
 
 
 
당나라식으로 복원하면 일본풍이라고 욕먹까봐 담당자들이 후안을 대비해 안전빵으로 고증 유물 다 무시하고 조선식+당나라식의 퓨전으로 정체 불명의 건물을 만들어 버림.
 
 
 
"아래"는 고증에 맞게 일본에서 복원한 저 당시 동양 건축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