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오유 눈팅만 해오다가 문득 들어와보니 커피게시판이 생겼네요
언젠가 누군가에게 재잘대고 싶엇던 작은 카페의 일상들을 조금씩 써내려갈께요
1. 녹차라떼를 사랑한 고딩
그 아이를 처음 만난던 것은 지금처럼 추웠던 작년 겨울의 어느날이었던 것 같다.
축처진 어깨와 지친 발걸음은 이시대의 모든 고등학생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다만 한가지 다른 고딩들과 달랐던 것은 그 아이의 어깨에는 책가방이 아니라 커다란 기타가 짊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녹차라떼 아이스로 한잔 주세요. 조금 진하게요."
학생이라 커피는 안마시나보다 생각하고 녹차라떼를 타주었다.
(자랑인듯 자랑아닌 자랑같은 말을 덧붙이자면 우리 카페의 녹차라떼는 맛 있 다.)
그 아이는 아무말없이 한참을 혼자 앉아 기타를 의자에 기대에 세워두고는 녹차라떼를 쪽쪽 빨다가 갔다.
그날부터 거의 매일을 카페를 찾아 녹차라떼를 마시고 홀연히 사라졌다.
(출몰하는 시간이 일정한 것으로보아 하교 후 카페에 들러 한잔 걸쭉하게 들이키고 기타연습을 하러 가는 모양이다.)
매일을 같은 시간에 만나다보니 원래 알던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한테 남동생이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이에 형식적인 인사는 사라지고,
나는 "어 개념없는 고딩왔니" 친근한 인사를 건네고
그녀석은 내게 이천원밖에 없으니 녹차라떼 반만 달라는 흥정을 성공시키는 괸계까지 이르렀다.
하루는, 마감시간이 다 될 무렵까지 집에 안가고 카페에 앉아있길래
마치 저녁인사같은 말투로 "치킨 먹을래?" 라고 물었더니,
성장기의 건장한 고딩은 녹차라떼를 마실때보다 훨씬더 해맑은 얼굴로 콜을 외쳤고,
마감을 마친 카페의 은은한 조명아래서 우리 둘은, 닭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뜯으며
클래식기타를 전공하고 싶어하는 고딩의 불안한 미래와
문학이 좋아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가 취직못하고 카페를 차린 영세 자영업자의 슬픈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후로 녀석에게 우리 카페는,
녹차라떼를 시켰더니 치킨이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신기한 카페로 변해있었고
카페 출몰시간을 마감시간 직전으로 바꾸는 치밀한 계획까지 실행시켰다.
그렇게 1년이 흘러 다시 겨울이 된 지금,
녀석은 여전히 녹차라떼를 쪽쪽 빨아먹고, 후식으로 치킨을 먹고 집에간다.
이제 내년이면 열 아홉이 될 그대에게,
전쟁같은 입시를 치뤄야할 그대가 가야할 그 길에,
내가 만들었던 녹차라떼보다 더 달콤한 음악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