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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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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선비
추천 : 0
조회수 : 59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4/12 16: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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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는 계속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직장을 다니게 되기 전에 썼던 글입니다.
* 소승불교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 쓴 것일 뿐,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선택한 단어는 아닙니다.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한 곳만을 응시해야 하는 지금은 중세시대, 여기 불운하게도 한 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 그리스도적인 교의(敎義) 앞에서 불가(佛家)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사실 용납될 수 없다기보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행(苦行)의 일부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길에서(그곳은 시야마저도 좁았던가?) 횃불 하나 없이 걷고 있는 것, 그저 드문드문 풀이 자라지 않은 곳이 진정 사람의 길이겠거니 믿고, 서툴게 사박사박 밟아가는 것. 그것은 승려에게 정신적인 고행은 아니었다(사실 승려는 정신적인 고행을 원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교의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환희의 일부. 그래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버릴 수 없는 사명. 반면, 지금의 고행은 자신이 부과하지 않은, 뜻하지 않은 육체적인 고행. 자신의 교의를 영위하기 위한 여건의 부재(不在). 실질적인 행위에 있어서의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가 다가온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야 어찌 됐든 간에 무시하고, 사람의 길을 따라 걷다 지치고, 쓰러져 죽어, 산짐승에게 갈기갈기 찢겨 먹혀도 그만이었으나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순교(도대체 누구를 위한?)도 아니었고, 신념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그대의 빛을 보지 못 했기에 벌써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승려는, 지쳐 쓰러진다는 것이 자신의 힘의 부족이라 느꼈고, 살기 위한 순수한 의미에서 풀을 뜯었다. 풀은 자신이 승려의 길을 택하기 이전에 씹었던 고기들에 비해서는 참으로 쓰게 느껴졌지만, 이 역시 자신의 의지의 비루함. 풀이 쓴 것이 아니다. 내가 쓰게 느끼는 것이다. 애초에 풀의 의미란, 풀에 있는 것이지 쓴맛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승려에게는 끊임없는 좌선(坐禪)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예술은 삶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반면, 삶은 예술에게 그 보답으로 처절함을 준다는 것. 하지만 이것보다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적어도 예술이라면, 각자 다른 예술일지라도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아니었던가? 한 예술이 다른 예술에게 가하는 핍박. 예술의 도정(道程)은 곧 고된 편력(遍歷)의 길.


 승려가 숲길을 헤매다 뜻하지 않게 당도한 곳은 수도원(修道院)이었다. 그 수도원에서 승려는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실 요량이었으나, 물 한 바가지와 함께 건넨 하나의 권유(이 권유는 교의였던가? 아니면 시대 자체였던가?). 


 "그대의 모습은 허름한 옷에, 눈이 퀭하고, 눈두덩이는 움푹 파인 것이 흡사 해골과도 같으니 이곳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은 어떻겠소? 우리도 아무 승려에게나 이러지는 않는다오."
 

 사실 승려에게도 위로의 피붙이와 아래로의 피붙이가 있었다. 하지만 승려에게 있어서 불가의 길을 간다는 것, 출가(出家)는 필수적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극단적인 결정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의 교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교의를 따르는 것이 꼭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한 편안하고도 정당(正當)한 결정이다. 우리가 따르는 교의에서도 네가 생각하는 피안(彼岸)을 찾을 수 있다. 꼭 출가를 해야만 하겠느냐?"
 

 "예."


 그 당시 승려의 짧고도 어쩌면 무례했던 대답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확고한 신념이었고, 피붙이에게는 시대를 모르는 어린애의 고집이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왜 그때의 기억이 나는지는 승려로서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아무에게나 이런 권유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셨소? 좋소. 하지만 이 수도원에는 꼭 이 소승(小僧)이 아니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이런 말을 하는 승려의 모습은 해골의 두 눈에 호박(琥珀)을 박아 넣은 듯한 모습이었다.
 

 승려에게 그러한 권유는 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달콤한 감각이었다(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치욕이었던가!). 승려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교의를 위한 정신적인 고행. 육체적인 고행을 생각지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아직 도(道)를 모르는데 죽는 것은 그저 시체요, 그것은 해탈(解脫)이 아닌 영원한 윤회의 고리.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승려는 수도원 밖 숲길에서 며칠이고 좌선을 하였다. 아! 이때 해탈하여 윤회를 끊을 수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아직 승려는 도를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잘못된 곳을 바라보는 중생(衆生)들 역시 아른거렸다.


 "나는 소승(小乘)이 아니라 대승(大乘)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초(楚)의 장왕(莊王)이여! 당신이 울지 않고 있었던 세월은, 한 번의 대성(大聲)을 위한 기다림이 맞았던 것이오? 그 세월 속의 당신에게는 정녕 하나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이오? 나에게도 들려줄 수 있겠소?"


 승려는 그의 짚신을 수도원 밖 숲길에,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자신만이 기억하는 장소에 잘 숨겨둔 채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승려에게 있어서 자신의 짚신은, 자신의 길을 갈 때에만 신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만이 승려가 할 수 있는 자신의 교의에 대한 예의였다. 수도원 안에서 해골 같은 몰골에 살이 붙기 까지만, 지금이 아닌 더 큰 나중을 위하여. 잠시 이곳에 들어가 견디는 것. 정말 잠시만 사찰(寺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배(拜)를 올리는 것. 이 견디는 마음을 모아 불타(佛陀)에게, 그리고 이것을 이 소승(小僧)의 비천한 보시(布施)로 여겨주기를!


 "아아! 어쩌면 이것이 내가 원하던 정신적인 고행이었는가?"


 승려가 수도원에 들어간 후, 밤마다 흘러나온 수도원의 불경. 그 불경은 자신의 길을 위한, 혹은 불타를 위한 불경은 아니었으리라. 스스로를 단죄하기 위한 불경. 숲길 속에서 외던 승려의 불경은 하늘로 향했지만, 수도원에서의 불경은 수도원에 내리는 어둠과 함께 땅으로 꺼졌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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