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연재] 미라주(1-1)
게시물ID : readers_164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1
조회수 : 2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03 10:47:05

1. 시작

험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은 여느 마을과 다르다.

열 댓 채의 작은 오두막은 질서 없이 늘어져있다. 나무는 드문드문 나있고, 마땅히 그어진 도로는 없다. 사람들은 마차니, 말이니, 소니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가게도 없고, 돈의 개념도 없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물물교환을 하는게 전부다. 몇 세기에 걸친 고립은 시간을 멈추어 놓았다.

마을에는 큰 강이 있지만,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우물을 더 선호한다. 사실, 수십년간, 강 주위에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면 혹시라도 갈까 수백 번을 일러둔다. 강에는 가까이가면 안 된다. 그곳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강의 물은 이상하리만큼 뿌옇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지만, 어떤 물고기도 살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단 한 번도 무언가가 강 위에 뜨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강에 몸을 담갔던 사람들이 살아 나오는 것 또한 보지 못했다. 강물을 마신 사람들은 모두 미쳐버렸다.

이곳에 정착한 다음부터, 사람들은 이 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기 위해 고심해왔다. 하지만 여지껏, 명확한 해답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강을 떠도는 망령때문에 그래. 이것 이외에,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늘 그렇듯, 모든 화살은 유에게로 돌아간다.

유는 삿갓을 썼다. 도포를 입었다. 사람들이 발조차 담그지 못하는 강을 나무로 된 나룻배 하나로 유유자적 떠다닌다. 이 마을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십년을 거슬러 올라가나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몇 세기를 마을과 같이 살았지만,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그에게 말을 하면 귀신이 씌인다는 이야기가 돌고, 사람들은 그를 피한다. 그를 무서워한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언제나처럼 강 속의 희뿌연 무언가를 낚아 올린다. 누군가로부터 잊혀진 기억들. 수백년을 건져내도 그가 원하는 것은 그곳에 없다. 배에 앉아 보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강변을 둘러싼 나무들은 조금씩 물이 든다. 버드나무는 긴 가지를 늘어뜨려 그늘을 만든다. 비틀거리는 남자는 그를 노려보더니 고함을 지르다 넘어진다. 용캐도 강에 빠지지 않고 비척이며 일어난다. 동굴에서는 온몸을 천으로 감싼 수상쩍은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유는 아무 생각도 없다.

유는 눈을 돌린다. 다른 풍경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이다.



해가 기울 무렵이 되면, 유는 배를 세운다. 그가 하루 종일 건져 올린 것들을 담은 자루를 가지고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은 강을 두고 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마을에서 한눈에 보일만큼 가깝지만, 이 둘을 이어주는 돌다리에는 이끼만 무성하다. 이런 곳에 도깨비가 있으니 마을에 귀신이나 꼬이지. 사람들 눈에 비치는 도깨비는 그의 시선과 다르다.

아닌가?

유가 나무문을 닫는다.

동굴 안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많이 동떨어져있다. 벽이며 바닥이며 천장은 빈틈없이 나무 판자가 붙어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작은 창문도 있다. 벽을 빽빽하게 메운 찬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하다. 작고 둥근 불빛들이 날아다니며 동굴을 밝힌다. 카운터, 작은 테이블에는 크게 특별한 점이 없다. 매는 이곳에서 이상한 물건들을 사고판다. 그가 파는 물건에는 유가 건져낸 것들도 포함된다.

사람들이 잊은 생각이나 기억들은 물로 흘려보내진다.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보내지다, 결국은 이 마을에 흐르는 강으로 모이게 된다. 아주 오래전, 이를 알아낸 도깨비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남아있는 것은 없다.

지금 이 주위에 도깨비는 매 하나뿐이다.

매는 유의 자루를 들고 동굴 뒤 켠에 있는 어딘가로 향한다. 강에서 방금 건진 것들은 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들이 만들어낸 장치에다가 넣고 가공해야한다. 가공된 것 중 팔 수 있을만한 것은 용기에 담아 진열한다. 유는 이것을 제공해주는 값으로, 생을 연장한다. 누군가의 기억에 생전 유의 기억을 넣어주는 것. 그래서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를 기억하게 하는 것. 유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가 빈 자루를 유에게 던져준다.

“아까 누군가 이곳에서 나가는 걸 봤어.”

유가 이야기한다. 이 동굴까지 찾아오려면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출발해도 며칠이 꼬박 걸린다. 지도조차 없어서 산길에 길을 잃기 십상이다. 당연히, 이곳을 찾는 손님은 엄청나게 드물다.

“간만에 네 고향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됐지.”

매가 대답한다.

“내가 관심을 갖기에는 떠나온 지가 지나치게 오래된 것 같은데.”

유가 자루를 챙기며 대답한다.

“두시가 그곳의 왕이 되었다 하더군.”

매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꺼낸다. 하지만 유는 그렇지 못하다.

“어떻게?”

유가 묻는다.

“두시가 내 시야에서 벗어난 지가 언젠데.”

매가 대답한다. 유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다.

그가 등을 돌리고 귀를 막고 있던 사이. 그 공백을 유는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가 어찌 행동할 것 같나?”

유가 말한다.

“난 그를 헤아릴 수 없네.”

매가 대답한다. 유는 매의 생각을 알 수 없다.



몇 년전,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처음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것 아닌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임을 알고 난 후에는 경악했다. 사람들이 납득하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왕은 노환으로 죽을만큼 나이든 사람이 아니었다. 지병이 있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 나라 밖의 사람들이나, 왕 주위에 있던 귀족들조차도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왕의 장례는 성안에서 이례적일만큼 조용히 치러졌고, 이 때문에 성을 드나들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 후에 발표된 유언장은, 다시 나라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왕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나라의 유일한 왕자였고, 잘은 몰랐지만 왕위를 잇지 못할 만큼 큰 흠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언장에서는 두시라는 외지인을 왕으로 지목했다. 이 나라의 사람 중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라가 세워지고,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충격에 휩싸인 몇몇 귀족들은 두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다른 나라의 왕가 또한 예상치 못한 일에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이에 반발할거라 생각했던 왕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두시가 왕이 된 후, 성을 지키던 군인들은 하잘것없는 이유로 사람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세금에, 사람들은 먹을 것을 사는 것도 버거웠다. 두시를 반대했던 귀족들은 대부분의 재산을 몰수당하고 밀려났다. 왕과 주변 귀족들이 배를 채우는 동안 그들과 먼 사람들은 말라 비틀어져갔다.

이게 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두시가 왕이 되어서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곧 사라진 왕자가 다시 돌아올 거다. 그가 두시를 몰아낼 것이다. 사람들의 환상 속, 왕자는 성군이고, 영웅이다.

그래봐야 도망간 왕자일 뿐이지.

내우는 의자에 앉아있지만, 마땅히 하고 있는 일은 없다. 그의 책상 위에는 황색 종이가 책상에 어지러이 놓여있다. 그는 펜을 집는 듯하더니, 종이를 치워버린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지만, 오 분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다. 그가 입은 옷은 색이 바래간다. 작은 집은 그가 차마 둘러볼 수가 없다.

의자에서 일어나 문밖을 나선다.

정돈되어 늘어진 건물들, 고개를 돌리면 커다란 광장이 보이고, 바닥에 깔린 회색빛 돌들 위로 화려한 마차들이 지나간다. 마차가 지나는 길 끝에는 두시의 성이 작게 보인다. 그 옆에 있는 큰 탑은 기분 나쁘게 마을을 내려다본다. 마을에 내려앉은 안개는 사시사철 걷힐 줄을 모른다. 내우는 큰 길에서 벗어나 골목을 걷는다. 그가 지나는 건물들은 점점 더 허름해지고, 길은 어두워진다. 작고 낡은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해가 밝은 시간이지만, 어두운 술집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비밀을 이야기하듯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다 언성이 높아지면 입을 틀어막기를 반복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차라리 석고상에 가까워보인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겠지만, 얼굴이 익숙하지 않다.

그가 살던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내우가 바에 앉는다. 술잔이 그의 앞에 놓인다. 그는 그것을 쥔 채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무시한다.

“지난번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내우가 잔을 닦던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건낸다.

“그저께 폭풍이 불었었지.”

주인이 잔을 내려놓는다. 얼굴에 시름이 가득하다. “며칠 성에서 감시자가 내려왔던 모양이야. 꼬투리를 잡아서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가던데.”

내우의 눈이 그의 시선을 따른다. 망가진 의자, 귀퉁이가 부서진 테이블, 벽지는 너덜거린다. 술집에 앉은 수많은 사람 중, 저것을 보고 감흥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군인들을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해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다.

“다음번에는 아예 가게 문을 닫게 할지도 모르겠네요.”

내우가 말한다.

“그전에 빨리 이 나라를 벗어나야지.”

주인이 건조하게 말한다. 말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가게를 둘러보고는 닫아버린다.

주인이 무마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 왕자는 언제 오려나.”

내우는 말없이 창을 내다본다. 안개가 끼었지만, 성은 윤곽을 오롯이 드러낸다.

뚜렷하지 않아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