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일 ‘신동아’ 편집실로 자신이 영화계 올 상반기 최고 히트작 ‘추격자’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추격자’는 언론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영화 속 주인공은 출장마사지 아가씨를 차례로 죽이는 사이코패스 ‘지영민(하정우 분)’과 온갖 고초 끝에 그를 잡아 경찰에 넘긴 업소 사장이자 포주인 ‘엄중호(김윤석 분)’ 둘뿐. 엄중호가 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끝내 살해된 윤락녀 미진(서영희 분)이 여자 주인공 격이지만 기자를 찾아온 사람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유영철은 지금 사형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고, 남은 사람은 영화 속에서 그를 잡은 포주뿐. 영화 제목이 ‘추격자’이므로 엄밀하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이를 찾아서 잡은 ‘엄중호’다. 신동아를 찾아온 남자는 자신을 전직 출장마사지업소 사장이자 유영철을 잡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극중 엄중호가 바로 자신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2004년 8월 유영철을 검거한 공로로 경찰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포상금 500만원의 내역이 든 통장사본을 내밀었다.
감사패엔 그의 이름 ‘정연재(38)’와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검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경찰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므로 감사패를 수여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이 사건 수사를 총지휘했던 ‘서울지방경찰청장 허준영’씨의 이름도 보이고 청장 직인도 찍혀 있다. 정씨는 자신을 “영화 주인공 중호처럼 전직 출장마사지업소 사장이었으며, 자신이 고용했던 아가씨 3명이 유영철에게 납치돼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 내용처럼 직접 납치범을 찾아 나섰고, 유영철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모두 밝히겠다”
기자가 “당신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정말 포주였단 말인가, 그렇게 써도 괜찮은가”라고 물으니 “써도 좋다. 당시엔 그랬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했다. 내 이름과 과거는 밝혀도 되지만 얼굴은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포주 출신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뜻밖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혀도 좋다는 말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살인마 유영철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검거 이후 경찰의 수사상황, 즉 그의 여죄를 밝히고 엽기적 살인행태를 밝혀내는 데 집중됐다. 검거까지의 상황은 경찰 입장에서 씌어진 게 대부분이다. 당시 경찰이 낸 보도 자료에는 ‘노모씨 등 업소 사장들의 제보로 경찰과 제보자 등이 함께 잡았다’라고만 적혀있을 뿐, 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이며 검거와 수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포주에다 건달이었던 제보자들이 언론 앞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었다. 유영철 사건이 한창 인구에 회자되던 시절, 기자들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제보자’가 제 발로 찾아오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정씨는 왜 4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자신의 자랑스럽지 못한 전직과 이름까지 밝히며 ‘신동아’에 인터뷰를 자처한 것일까. 그에게 직접 이유를 물었다.
“영화 ‘추격자’가 개봉된 후 부모님은 물론 주변 친지, 옛 동창에게서 ‘야! 저거 네 이야기 아니냐’며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니까 각색이 되긴 했지만 영락없이 제 얘기더군요. 제가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감사패와 포상금을 받고 주변에 자랑을 했거든요. 더욱이 포상금은 바로 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갔고요.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포주 엄중호의 승용차 재규어 XJ6가 내 차와 똑같습니다. 요즘 잘 구할 수도 없는 차인데 그 차가 영화에 나왔어요.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나라고 믿을 수밖에요.
근데 문제는 그 영화 덕분에 제 전직이 ‘포주’였다는 사실이 들통 난 겁니다. 영화 도입부분엔 악덕 포주로 묘사됐죠. 실제 저는 그만큼 나쁜 사람은 아닌데…. 정말 부모님과 친지, 동료들에게 얼굴을 못 들겠어요. 그런데 충무로 영화판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사 측이 유영철에게 저작권료 명목으로 5000만원을 줬다는 겁니다. 피가 거꾸로 솟더군요. 어떻게 그런 살인마에게…. 게다가 제 주변인들이 영화를 보면 딱 나인 줄 알도록 영화를 만들면서 어떻게 제게 상의 한번 안 하냐고요. 그래서 영화사를 찾아가 항의했죠. 그랬더니 영화사 측은 숫제 그 영화가 유영철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네들이 언론에 홍보하며 ‘유영철 영화 맞다’고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딴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열이 받아 언론사로 온 거죠. 이럴 바에야 다 밝히겠다고.”
영화의 실제 모델인 까닭
▼ 영화 ‘추격자’가 선생님을 모델로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당시 경찰 발표에는 제보자가 노모씨라 돼 있는데.
제보자 정씨가 사건 당시부터 현재까지 타고 다니는 재규어 XJ6. 아래는 영화 속 ‘엄중호’가 타던 차. 차종이 똑같다. “노씨는 당시 제가 잘 알던 동생이죠. 그때 유영철을 잡은 사람은 저와 노씨를 포함해 업주 3명과 제가 아는 동생(건달) 2명, 이렇게 5명입니다. 경찰도 1명 있었죠. 감사패와 포상금을 같이 받았어요. 제가 제일 큰형뻘이었고, 저는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정보원 노릇을 오래 한데다 감옥을 자주 들락날락해서(폭력 혐의) 형사들 세계와 수사방법을 잘 압니다. 사실은 제가 다 리드를 했죠. 실제 실종된 아가씨를 찾으러 직접 재규어 차를 몰고 다닌 것도 저였고 △ 유영철이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을 때 아가씨를 바꿔가며 보낸 장면 △ 아가씨를 불러 이리저리 약속장소를 바꾸며 거리에서 만나는 행태 △ 제가 사라진 아가씨의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를 가지고 각 출장마사지업소 사장과 보도방 주인들을 수소문해 유영철이 범인임을 밝혀낸 장면 △ 사라진 아가씨의 차가 발견되는 장면 △ 유영철을 잡은 후 지구대에서 벌어진 일들 △ 극중 엄중호가 경찰에게 형사 행세를 하는 장면 △ 지구대에서 실랑이가 있을 당시 유영철과 우리를 기동수사대장이 와서 인수해가는 장면 △ 제가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유영철을 마구 팬 장면 △ 마구 패는 데도 경찰은 모른 체하며 그냥 놓아두는 장면 △ 희생자 중엔 실제 제가 좋아했던 여자친구도 끼어 있었고 △ 연쇄살인의 결정적 증거를 제가 밝혀내는 장면…. 오히려 경찰이 유영철을 증거불충분으로 그냥 풀어줬다, 업주가 유영철을 집까지 쫓아가 격투 끝에 잡았다, 검거 과정에 경찰이 전혀 배제됐다는 등 몇몇 장면과 설정만이 실제와 다릅니다.”
유영철이 출장마사지사를 납치할 때 사용한 가짜 경찰 신분증. 우선 정씨가 경찰이 말하는 제보자가 맞는지 확인작업부터 벌이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유영철을 직접 심문하고 조사했던 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장 강대원씨와 수사담당자이자 검거 현장에 있었던Y 형사에게 정씨가 제보자가 맞는지, 감사패와 포상금 지급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제보자 5명 중 한 사람이 맞고, 유영철을 검거한 공로로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감사패와 포상금을 전달한 게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Y 형사가 당시 작성한 진술서에도 정씨의 이름이 보인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에 확인한 결과, Y 형사가 제보자들에게 전달한 감사패는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수여한 공식 감사패가 아니라 기수대(기동수사대)가 감사 차원에서 만든 사적인 것이었다. Y 형사는 “그들이 잡은 유영철은 단순 납치범이었고, 그 후 그의 연쇄살인죄를 모두 밝혀낸 건 경찰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포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의 공적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포상금 500만원에 대해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확인을 거부했다.
영화 ‘추격자’의 제작사인 ‘비단길’ 관계자는 “정씨가 영화가 나온 후에 항의하러 왔었다. 그러나 ‘추격자’는 딱히 유영철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라 할 수 없다. 다른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들이 조금씩 섞여 있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합쳐진 완전 픽션이다. 정씨의 이야기와 일부 겹친 부분들이 있다는데 우린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차량과 일부 겹치는 내용은 우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유영철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 부분에 대해선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정씨든 유영철이든 저작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추격자’엔 유영철 사건과 다른 픽션부분도 적지 않게 들어가 있는 게 사실. 하지만 ‘비단길’ 측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유영철을 모티프로 한 영화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고, 또 ‘유영철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기사를 쓴 언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영화 ‘추격자’를 본 당시 사건 관련자(담당 기자들 포함)들은 ‘유영철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조차 유영철 사건을 회고하는 글에서 “실제 모습과(영화가) 너무 다르게 나와 실망스러웠다”는 표현을 했다.
그렇다면 2004년 7월 당시 정씨와 유영철, 경찰 간에는 실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4년 7월26일 발표된 최종 수사 결과와 이후 경찰청에서 발간한 유영철 사건 백서에 나온 유영철의 범죄 사실은 2003년 9월부터 서울 강남, 종로 일대 고급 주택에 사는 부유층 노인 등 8명을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다음해인 2004년 3월부터 7월 중순까진 출장마사지사 등 여성 11명을 토막 살해했으며, 그 외에 서울 황학동에서 노점상 1명을 불태워 죽이고,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여성 1명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등 총 21명을 죽인 것이다. 그 외에 경찰을 사칭해 출장마사지사 등에게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 두 건 더 있다.
“납치신고 경찰이 무시”
영화처럼 당시 경찰 수사도 마지막 연쇄살인 피해자, 즉 11번째 사라진 출장마사지사로부터 시작됐다. 정씨는 사라진 출장 마사지사를 찾으러 나서, 11구 시체에 대한 현장검증에 참여할 때까지 사흘 밤낮 동안 지구대와 서울경찰청 기수대에서 유영철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정씨가 말하는 당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경찰이 발표한 자료와 상충되는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경찰이 밝힌 당시 유영철의 검거 경위를 보면, 경찰은 2004년 7월14일 밤 9시쯤 ‘출장마사지사 임모양(당시 29세)이 이틀 전인 7월12일 밤에 011▼ XXXX▼ 5843번 휴대전화를 쓰는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일을 나간 뒤 사라져 이틀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제보를 처음 접하고, 다음날인 15일 새벽 4시30분쯤 ‘5843’이 다시 뜨자 제보자들과 함께 15일 새벽 5시20분쯤 유영철을 검거했다고 쓰여 있다.
▼ 출장마사지사들이 사라졌다고 처음 경찰에 신고한 게 언제인가요. 경찰의 설명대로 7월14일 밤이 맞나요.
“아니지요. 그 보름쯤 전인 7월1일 먼저 납치 신고가 있었어요. 그날 저녁 때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업소에서 일을 나간 아가씨가 경찰 단속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어요.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끌려간다면서요. 관할 강남·서초경찰서에 확인해봤죠. 그런데 그런 사실이 없대요. 1,2시간 후에 그 아가씨에게 ‘지금 택시를 타고 가는데 납치를 당했다.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납치됐는데 어떻게 전화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놈이 지금 차 세워놓고 오줌 싸러 갔다’고 그러더군요. ‘그럼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청해라’고 했더니 ‘한패야, 같은 놈들이야’라고 해요. 그러다 ‘온다온다’ 하곤 전화가 끊겼어요. 이후로 아가씨는 연락이 되질 않았죠. 우리도 더 어떻게 찾을 수 없어 잊어버렸죠. 그때 경찰관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하고 그 휴대전화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적어도 3명의 목숨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납치는 아니라도 경찰관 사칭죄라도 적용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건이 밝혀진 후의 경찰 기록을 보면 이 아가씨는 그날 밤 11시쯤 경찰로 위장한 유영철에 의해 그의 오피스텔로 납치 당해 토막살해됐다고 적혀 있다. 유영철은 이 사건 뒤로 7월9일과 7월13일 두 명의 출장마사지사를 더 살해했다.
제보자 정씨가 서울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하지만 이는 인증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유영철 검거 작전
▼ 경찰 기록에는 경찰이 7월14일 밤 마지막 피해자인 임씨의 첩보를 미리 입수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다는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후에 그렇게 짜 맞춘 거죠. 임양은 그 이틀 전 밤에 일을 나갔는데 안 들어와서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죠. 이쪽 아가씨들이 그런 일이 자주 있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같은 방을 썼던 출장마사지사 김모양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오빠, 어제 임양이 내 차를 타고 갔는데 글쎄 차가 강서구 화곡동에서 문이 열린 채, 짐도 다 없어진 채 발견됐어. 아무래도 찜찜해. 임양 어떻게 된 것 같아’라는 내용이었죠.
그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어요.(영화에서도 그랬다) 저는 그때 납치라고 직감했습니다. 임씨말고도 같은 방을 쓰던 장모씨가 지난 4월에 이상한 말만 하고 없어진데다 그 보름 전에 역삼동 아가씨 사건까지 있은지라 단순가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죠. 그래도 저는 그때까지 유영철이 연쇄살인마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가씨를 납치하고 감금해서 변태 짓 하는 놈인 줄만 알았지.
다음날인 14일 저녁에 서울시내 출장마사지업 하는 후배들을 르네상스호텔로 모두 소집했어요. 사실 제가 그쪽 바닥에선 큰형님 격이라 부르면 다 옵니다. 그리고 전화 건 손님들 휴대전화 번호를 일일이 비교했죠. 그랬더니 역삼동에서 납치됐던 아가씨를 부른 손님, 즉 경찰관을 사칭한 놈이랑 임양을 부른 손님 휴대전화 번호가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얘기했죠. 같은 번호 뜨면 바로 연락하라고요. 강남경찰서에 아는 형사에게 전화를 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부탁하고 신고를 했더니 다음날 아침에나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납치된 아가씨가 어떻게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아가씨가 죽었잖아요.”
▼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한 건 서울경찰청 소속 기수대였잖습니까.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런데 15일 새벽 2시쯤에 신촌 쪽 업소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5843’ 떴다고(영화에선 ‘4885’). 제가 지시한 내용을 깜빡하고 아가씨를 내보냈는데, 손님이 너무 크고 글래머라 싫다며 다시 돌려보냈다는 겁니다. 후배에게 그놈이 어떤 여자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담하고 예쁜 아가씨를 보내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유영철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자기는 시체를 토막 내기 편하게 키가 작은 여자만 골라서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업소주인에겐 그놈에게 ‘우리가 원하는 애를 준비할 테니 시간이 좀 걸려도 기다리라’고 그렇게 전하라고 했죠. 그러고 저는 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신촌 인근의 서강지구대로 모이라고. 그리고 그놈을 유인할 마사지 아가씨로 차 주인인 김씨와 또 다른 아가씨 1명을 데려갔죠. 기수대 Y 형사는 당시 집이 경기도 구리 쪽인 줄 아는데, 서강지구대로 가면서 전화를 했어요. 그때 Y 형사에게 전화한 사람이 바로 경찰이 제보자라고 한 노모씨입니다. 제 친한 후배기도 하고. 평소 Y 형사와 친했습니다.”
▼ 당시 수사 담당자였던 Y 형사의 진술서에 보면 자신이 미리 현장에 도착해 유영철의 검거를 지휘하고 지시했다고 돼 있는데요.
“아닙니다. 저도 그거 봤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지구대 김모 경장이 현장에 나가 수갑을 채우고 했는데, 어느새 노씨의 전화를 받고 온 Y 형사가 와서 수갑을 또 채우더군요. 거기(진술서) 보면 Y 형사가 자기가 검거 때 미리 도착해 있었고 지구대에 가서 자기이름 말하고 경찰관을 불러 붙잡으라고 제게 시켰다고 돼 있지만, 실은 그게 아니고 다급했던 제가 지구대에 직접 가서 ‘강남경찰서 강력반 정 경위인데 납치범을 잡는 데 지원해달라’고 했던 거죠. 영화처럼 경찰 사칭했어요. 그랬더니 김 경장이 바로 지원하더라고요. 다른 분은 바쁘다고 하는데 그 분만 잽싸게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어요.
유영철 사이에 둔 경찰 간 다툼
유영철 사건 당시 사체 발굴 현장 검증에 나선 경찰. 유영철 오른쪽이 당시 수사총책이었던 강대원 전 기동수사대장이다. 어쨌든 유영철은 우리가 유인하러 보낸 두 번째 아가씨는 못생겼다고 또 싫다고 돌려보내고, 세 번째 아가씨는 장소를 계속 이리저리 바꿨어요. 우린 이미 멀리서 그의 얼굴을 본 상태였죠. 그 유명한 신촌 그랜드마트 뒷골목에서 유영철과 딱 마주쳐서 격투 끝에 잡았죠. 유영철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했어요. 후배들도 많이 맞고 저도 맞았어요. 전 가져갔던 야구방망이로 유영철의 허벅지를 몇 번 내려쳤어요. 그러니까 좀 조용하더군요. 그런데 붙잡히는 순간 입에 뭔가를 급하게 집어넣고 씹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했는데 완강하게 거부해 제가 인근 식당에서 숟가락을 가져와서 파냈죠. 입 안에서 피와 출장마사지 안내 전단 한 뭉치가 나왔어요. 그게 자백의 주요 증거가 됐습니다. Y 형사는 그때 우리가 유영철을 억지로 승용차에 태우고 난 뒤에 왔죠.”
이에 대해 Y 형사는 “4년 전 사건이라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격투를 한 사람은 다른 경찰이었지만 미리 연락을 받은 것은 맞다. 내가 쓴 진술서가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반박했다.
▼ 영화를 보면 지구대에서 경찰들 간에 유영철의 신병 인계를 두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직도 경찰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지구대에 간 뒤 바로 유영철을 숙직실에 몰아넣고 목을 우선 한 대 갈겼죠. 푹 주저앉더군요. 이후에 얼굴을 흠씬 두들겨 패줬죠. 나중에 기수대 사무실에서도 많이 팼어요. 유영철이 당시 언론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얼굴 전체를 마스크로 가려서 안 보였지만, 당시 눈과 코 입 등 얼굴 전체가 제게 맞아서 멍이 시퍼렇게 들었죠. 그래 놓고 제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아가씨들 다 어떻게 했어’라고요. 근데 그놈 입에서 뜻밖에도 ‘제가 안 죽였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와요. 깜짝 놀랐죠. 그래서 조금 더 팼더니 ‘강남과 서울 인근에서 죽은 부잣집 노인들은 자기가 다 죽였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아가씨들을 포함해서 모두 28명을 죽였대요. 술술 불기 시작했죠. 제가 엄청 무서웠나 봐요. 사시나무 떨듯 떨었으니까요. 그놈은 기수대에 가서도 내게 28명을 죽였다고 했는데, 나중에 경찰과 검찰 수사결과와 재판이 끝난 걸 봐도 21명만 죽인 걸로 돼 있더라고요.
근데 숙직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그걸 들은 지구대 직원들이 몰려들어왔고, 그때부터 난리가 났죠. 당시 모든 경찰의 수사력이 집중돼 있던 서울지역 부유층 연쇄살인범이 지구대에 잡혀온 거니까요. 지구대에서 바로 마포경찰서 윗선에 보고했어요. 조금 있으니까 Y 형사의 부름을 받은 서울경찰청 소속 기수대 형사들도 몰려왔고요. 제 기억으로 분명히 양쪽이 유영철을 두고 서로 밀고 당기고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마포서에서 누구인가 계급 높은 분이 의경들을 데리고 들어와 유영철과 저희를 마구 때렸습니다. 기수대 형사들도 일부 맞았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러더니 강대원 기수대장이 와서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고 지구대에 인수증을 써준 후 유영철과 우리를 싹 다 데리고 갔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건 영화에는 기수대장이 경찰 정복을 입고 왔는데 실제는 사복을 입고 오셨죠. 강 대장님이 그중 제일 계급이 높았어요.”
‘살인백서’
강대원 전 기수대장은 이에 대해 “도착하기 전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인수증을 써주고 유영철과 제보자들을 데리고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며 “당시 유영철을 붙잡은 지구대 김 경장과 기수대 Y 형사가 공평하게 모두 1계급 특진을 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Y 형사는 분명 제보자들에게 공식 감사패를 주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잡을 땐 연쇄살인범인지 모르고 납치범인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후에 연쇄살인 수사에 참여하지 않은 지구대 김 경장은 어떻게 특진을 한 것일까. 하지만 강 전 대장은 “검거경위야 어떻게 됐든 간에 연쇄살인 사건은 나와 Y 형사 등 기수대가 수사해서 밝힌 것만은 분명하다”고 몇 번씩 강조했다.
유영철은 지구대에서 기수대로 옮겨지면서 정씨에게 “내가 다 불면 니들이 다 감당이나 할 수 있겠느냐”며 거드름을 피웠다고 한다. 정씨가 아직 경찰관인 줄 안 것이다. 유영철과 동갑인 정씨가 “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린다”고 하자 유영철은 “모두 28명을 죽인 게 맞다”고 거듭 밝혔다. 기수대로 옮겨진 유영철은 정씨가 형사가 아닌 것을 알자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영철은 기수대에 도착하자 제일 높은 사람이 오면 말하겠다고 했어요. 강 대장님이 직접 심문에 참여해 자백을 이끌어내고 노인 살해사건 현장검증을 갔는데 실제 범인만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해서 범인이란 확신을 주더니, 마지막엔 다시 번복하고 그런 식이었죠. 예를 들면 범행 내용을 쭉 설명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더라고요’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까무러치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현장검증에서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이 TV를 보고 재연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후 기수대 내부에서조차 연쇄살인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간부가 생겨났죠. 살인범이 확실하다는 강 대장님을 비웃었어요. 그런데 그 비웃던 간부가 잘못해서 중간에 유영철이 탈출했어요. 화장실에서 그 간부를 밀치고 빠져나간 겁니다. 저는 그때 유영철이 예전에 절도로 붙잡혔을 때 도주 경력이 있는 만큼 ‘각별히 조심하라’고 직원들에게 충고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별’을 많이 달아봐서 척 보면 알죠.”
▼ 유영철이 기수대에서 탈주한 동안 엄마와 여동생을 만났다는 게 사실입니까.
“예. 저는 (유영철에게) 그렇게 들었어요. 엄마와 여동생이 자기가 사는 오피스텔에 가서 함께 살인에 쓰인 온갖 연장을 다 가져다 버리고 목욕탕 청소도 깨끗이 했답니다. 다른 것도 증거가 될 만한 건 버릴 것 버리고 했다는 거죠.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걸 알고서 증거를 훼손할 수 있을까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유영철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때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 살인백서를 만들어놓은 게 있는데 그것도 내다 버렸대요. 거기엔 자기가 지금껏 어떻게 죽였고 피해자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기록돼 있다는 거예요.”
▼ 살인백서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시죠.
“유영철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하면, 처음에 노인들을 죽일 때에는 아무 이유도 순서도 없이 죽였지만 핏자국이 찍힌 버팔로 운동화 자국과 CCTV에 나온 자신의 뒷모습이 발견되고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 같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인할 결심을 했다는 거죠. 100명을 죽이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노트에 살인 계획을 적고 그대로 실행한 뒤 그에 대한 소감을 써 넣었답니다. 길게는 2개월, 짧게는 수일간 업소 아가씨를 손님으로 만나서 한 번에 수백만원씩 줘가며 환심을 산 후에 그 아가씨가 가족이 없거나 없어져도 찾을 사람이 없다고 확인되면 그때 죽였다는 거죠. 거기엔 살해방법, 해부법도 쓰여 있고, 장기(臟器) 등을 먹는 방법이나 시체를 유기하는 시간대, 장소를 자세히 기록해놓았답니다. 유영철이는 ‘이게 세상에 밝혀지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너희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비웃었습니다.”
“그 밑에 네 애인 묻혀 있어”
▼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후 재판과정에서 유영철이 사람의 간을 먹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요. 기사화도 됐고. 사실입니까.
“제가 유영철에게 ‘넌 어떻게 그렇게 맞은 상처가 빨리 아무냐’고 농담조로 물었더니 그놈이 피식 웃으며 ‘사람 간을 먹어서 그렇다’고 말해요. 그래서 제가 ‘미친놈’ 그랬더니 생간을 먹으면 몸이 진짜 가벼워진대요. 심지어 심장도 믹서로 갈아서 먹어봤는데 근육 같은 게 씹혀서 못 먹었답니다. 인간이 아니라 완전히 짐승이에요.”
강대원 전 기수대장은 엄마와 여동생의 증거 훼손에 대해 “사실이지만 가족이라 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벌을 못했다. 살인백서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유영철이 간을 먹은 것에 대해선 충격적인 증언을 들려줬다.
“이젠 써도 안 되겠습니까. 당시엔 워낙 민감해서…. 유영철은 당시 진술을 하면서 2004년 6월 중순 살해한 아가씨의 간을 처음 먹었답니다. 유영철에겐 예전부터 간질 증세가 있었는데 혹 간을 먹으면 괜찮아질까 하고 먹었는데 후에 실제 몸이 많이 좋아지자 그 다음부터는 간을 빼 먹으려고 사람을 죽였답니다. 심지어 냉장고에 보관까지 해놓고 먹었다고 합니다.” 실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에서 마지막 피해자 사체 4구에서 간이 발견되지 않았다.
▼ 유영철은 아가씨를 만나면 바로 죽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다른 말씀을 하시네요.
“대부분은 만난 후 바로 살해했는데 아가씨 주변에 자신을 추적하거나 의심할 인물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걸 다 알아낸 다음 죽였어요. 유영철이 후에 내 이름을 듣고는 내 신상을 줄줄 꿰더라고요. 내 여자친구에게서 다 들었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피해자 임모양과 제 여자친구였던 장모씨(2004년 4월 살해), 그리고 임씨에게 마지막 날 차를 빌려주고 후에 유영철 검거 때도 참여한 김모씨 이렇게 3명이 같은 방에 살았잖아요. 저는 장씨가 사라졌을 때 그냥 내가 싫어서 떠났나 했죠. 근데 한 10일 동안 부산이라며 전화가 4통이나 왔어요. ‘오빠랑 비슷한 사람 만났는데 너무 좋다. 결혼하겠다’고 했어요. 알고 보니 유영철이 장씨를 협박해서 저에게 전화하게 만든 거였죠. 장씨가 내 얘길 다 해줬나 봐요. 마지막 희생자 임양도 유영철을 서너 차례 만난 후에 죽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임씨, 장씨와 같은 방에 살던 김씨가 기수대에서 유영철과 마주쳤는데 ‘네가 김OO이지. 너 논현동에서 강아지랑 살지. 다음엔 네 차례였어, 이년아’ 그러더군요.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결국 자기의 존재를 알 만한 아가씨들은 차례로 다 죽이려 했던 거죠. 나중에 봉원사 근처에서 사체발굴을 할 때였는데, 유영철이 평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야, 너 조심해 그 밑에 네 애인 묻혀 있어’ 그러는 겁니다. 파보니 진짜더군요. ‘왜 얘만 떨어져 따로 묻었느냐’고 물으니 ‘걔가 죽을 때 마지막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지는 나이도 어리고 해서 외롭지 않게 사람들 많이 오가는 곳 밑에 묻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다’고 하더군요. 정말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습니다. 이후로 우린 기수대 근처도 못 갔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놈을 잡지 못했다면 얼마나 많은 아가씨가 죽어나갔을지….”
▼ 영화에서 보면 ‘지영민’이 “니가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말해봐”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혹 실제 유영철이 그런 말을 아가씨에게 한 적이 있답니까.
“아가씨들 죽이기 전에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대라, 들어보고 이치에 맞으면 살려준다’고 했대요. 그놈 말로는 살아야 될 필요가 있는 아가씨가 하나도 없더래요. ‘다 쓰레기’라고 그러더군요.”
공범의 전화, ‘너 누구야’
▼ 유영철이 이혼한 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여성을 죽였다는 설이 있는데요.
“제가 본 유영철은 옛 부인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어요. 자기 아들 자랑도 했고요. 당시 사진에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유영철이 쓴 마스크 코 부분에 ‘아빠’라고 쓰여 있었어요.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 동거했다가 떠난 여자가 이쪽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 혹 그때 유영철을 직접 접촉했던 민간인이 또 있나요.
“예. 김씨요. 유영철이 다음 차례로 죽이려 했다는 그 아가씨. 마지막 희생자 임씨에게 차를 빌려준 방 메이트요. 그 사람은 어쩌다 자장면을 그놈이랑 같이 먹게 됐는데, 이후에 자장면은 입에도 안 댄답니다.”
▼ 그분이 기수대에 왜 왔죠?
“기수대에 도착한 유영철이 계속 살해 부분에 대해 오리발을 내미니까 마냥 체포한 채 둘 수 없어서 어쨌든 다른 죄목을 만들어야 했는데요. 2004년 2월에 유영철이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으로 제 업소 기사와 아가씨에게서 39만원을 뜯어간 적이 있어요. 일단 공무원 자격 사칭과 강도 혐의로 그놈을 경찰에 묶어두면 되겠다고 꾀를 냈죠. 그래서 바로 그때 피해를 본 제 승용차 기사와 김씨를 부른 거죠. 물론 김씨가 그때 피해를 본 아가씬 아니지만 다급해서 그때 피해를 본 것처럼 위장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유영철이 체포될 때 가지고 있던 물건을 보니까 지갑과 여성용 아가타 시계, 휴대전화, 뭐 이런 게 있었는데 그놈은 그걸 모두 길에서 주웠다고 거짓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형사들과 지갑을 살펴보니까 이상한 금목걸이 같은 게 묶여 있어요. 김씨가 기수대에 왔길래 ‘이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더니 ‘이거 임OO 거야. 내가 사준 금발찌야.’ 처음엔 전 김씨가 연극을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래요. 시계도 임씨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수사가 급물살을 탔죠. 유영철이 꼼짝없이 걸린 거죠. 그래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유영철을 강 대장님이 신경전 끝에 박살낸 일화는 잘 알려진 거구요.”
▼ 휴대전화는 누구 겁니까.
“다른 여성의 것이었어요. ‘5843’ 말고요. 유영철의 진짜 자기명의 휴대전화는 뒷자리가 ‘1818’로 따로 있었죠. 그놈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e-메일 ID도 1818이고 뭐 번호 써야 할 게 있으면 모두 1818이에요. 심지어 아가씨 몸 대부분을 17~18토막 냈어요(경찰백서). 그런데 그때 그 휴대전화로 벨이 울린 거예요. 일단 전화를 받았죠. 그런데 상대편에서 웬 남자가 ‘영철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전 엉겁결에 ‘그래’ 그랬죠. 그랬더니 ‘야, 우리 또 한 건 해야지’ 그래요. 제가 가만히 있었더니 그쪽에서 ‘너 누구야’ 그러더니 전화가 딱 끊겼죠. 그때 확신했죠. ‘공범이 있구나’ 하고.”
엇갈리는 수사진과 제보자 증언
▼ 경찰은 당시 최종적으로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는데요. 공범이 있다는 증거가 또 있습니까?
“우리가 최초로 신고했던 강남구 역삼동 아가씨 말입니다. 유영철이 경찰관 행세하며 단속한다며 납치해 죽인 아가씨 말이에요. 그때 그 아가씨가 전화를 했을 때 택시기사도 한패라고 그랬잖아요. 저는 그놈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증거는 또 있어요. 제 업소 기사가 2004년 2월에 경찰관을 사칭한 놈에게 아가씨를 데려다줬다가 단속에 걸려 돈을 뜯겼다고 했잖아요. 그때 제 기사가 모텔 밑에서 차를 대기하고 유영철을 기다리던 사람을 봤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유영철이 이 어마어마한 범행을 혼자 저질렀다고 보지 않습니다.”
강대원 전 대장은 “당시 공범이 있는지 백방으로 수사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정씨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신빙성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이에 대해 “우리는 5명이다. 김씨도 다 들었다. 어떻게 내 말이 거짓말일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기자는 유영철 사건 당시 제보자 5명을 모두 만나보려 했지만 정씨를 제외한 4명 중 3명은 이러저러한 죄를 짓고 감옥에 있었다. 김씨는 정씨의 진술에 대해 “틀린 부분이 없다”고 동의했다.
강 전 대장은 “유영철 사건에는 내 인생과 형사생활 30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내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 영화와 책이 곧 나온다. 가제목은 ‘형사 25시’다. 거기에 담긴 게 진짜 유영철 사건의 진실”이라고 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어쨌든 유영철 사건은 영화‘추격자’때문에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