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 군사 전략가인 제갈량은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중달(위나라 대장군 사마의)을 달아나게 했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충무(忠武)'하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데 사실 제갈량도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다. 또한 이순신 제독이 전사한 나이도 54세로 제갈량과 같고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도 두 사람이 닮았다.
충무공 이순신과 충무후 제갈량은 모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에게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충무후 제갈량은 그의 죽음과 함께 나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했다. 이순신 제독에게 패했던 일본이 훗날 그의 전략, 전술을 본받아 '도고'에 의해 러시아 함대를 물리치고 세계사에 일본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을 보면 충무공 이순신은 제갈량을 뛰어넘는 위대한 전략가요 장수가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후 최악의 상황인 명량해전에서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남아 있나이다.”라는 장계를 올리고 12척으로 133척의 왜군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이순신 제독이 쌓아올린 23전23승무패의 승전보는 제갈량에게 있었던 막강한 재상의 지위나 거국적인 병력동원은 꿈도 꾸지 못할 최악의 조건과 불운 속에서 이뤄냈다는데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오죽하면 일제 강점기 진해에서 해군 소령으로 근무했던 일본 해군전략가 가오다 이사오가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풍부한 무기, 함선을 주었다면 일본은 하루아침에 점령당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겠는가?
지난 4월28일은 충무공 탄신 462주년이다. 충무공탄신일을 의례적인 행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싸워 올린 23전23승의 승전보와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불패의 신화를 국군 장병들과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