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혹시나 달려올 저그들의 기습에 대비해 동굴 입구 바깥쪽에 수류탄으로 부비트랩을 설치하면서 외쳤다. 지금 알았지만, 프로토스는 회화를 텔레파시로 하기에 어느정도 먼 거리에 있어도 내 머릿속으로 직접 대사를 전송할 수가 있고, 때문에 지금 나와 얘기하고 있는 프로토스는 동굴 저 안 쪽에 누워있는데도 내게 말을 걸 수가 있었다.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듣는 건지는 내 알바 아니고.
- 우리 프로토스가 너희 인류와 접촉하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덕분에 우리는 너희를 연구할 시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지..
"그래서?"
나는 뒤를 흘낏 흘낏 쳐다보며 잔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바닥에 누워있는 프로토스는 몸을 일으켜 돌벽에 등을 기대면서 번쩍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생긴 녀석들을 고위 기사라고 하던가?
- 너희들에겐 유령이나 악령이라는 우리 프로토스와 비슷한 힘을 쓰는 부대를 가지고 있다지. 덕분에 우리는 인간에게도 초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고, 저그 무리에 함께 맞서 싸우며 우리에게 가장 우호적인 인간들을 중심으로 초능력을 부여해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들의 결정에 맡겨서..
"그러니까, 내가 당신들처럼.."
콰쾅
순간 뒤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왔고, 동시에 저글링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부비트랩을 통과해 버린 것 같았다.
"캬르르르!"
"우아아아!"
콰샥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은 나는 내 전투복이 찢겨나가는 감각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순간 들린 이상한 파열음과 더불어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눈을 떠보니 내 앞에 있던 저글링은 삐쭉빼쭉한 무언가가 잔뜩 튀어나온 고깃덩이가 되어 있었다. 프로토스란 놈들이 초능력을 쓴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감탄사가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건가?"
내가 말을 잇자 프로토스는 뻗었던 손을 거두며 나지막히 얘기했다.
- 모르지. 그건 네 잠재능력에 달렸다.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재촉했고, 그 프로토스는 저글링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던 타오르는 듯 한 눈으로 다시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테란연방의 작은 자치구 - 그것도 슬럼가에서 태어난 나는, 연방이 종족전쟁을 거치면서 스무살이 되었고 자연스레 해병으로써 소집되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다른 할 일도 없었기에, 징집부대가 내가 살고있는 거리를 덮쳤을 때 도망쳤던 나의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순순히 그들을 따랐다. 덕분에 나는 약물과 강제세뇌를 비롯한 재사회화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아니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 정력감퇴제라던가 기타 이상한 약을 좀 투여받고 있으니.
해병은 대다수가 재사회화된 범죄자들. 무서웠다. 어정쩡한 양아치였던 나는, 전투복을 벗고 병영으로 돌아가면 기가 죽어 지낼 뿐이었다.
해병으로써 소집은 되었지만 전투는 적었다. 내가 배속된 곳은 전선에서 상당히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투라고는 가끔 우리측 보급고의 물자를 노리러 쳐들어오는 반군 게릴라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그러니까, 같은 테란과 싸우는 일 뿐. 먼 곳에서 나와 같은 인간들이 저그라던가 프로토스라던가 하는 외계인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그저 꿈만 같은 이야기로 들려왔다. 그들의 모습을 본 건 TV를 통해서 본 것이 전부였고.
그렇게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던 내게 어느날 긴급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행성에서 전투중인 부대에 지원병력으로써 투입된 것이다. 우리같은 말단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 거부하면 체포 뒤 약물투여 등 강제적인 세뇌조치가 있을 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탈 수송선은 종족전쟁 이후 개발된 의료선이라는 물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수송하면서 치료까지 해준다니, 참으로 괴악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치료선 내부시설은 무인이라나 뭐라나. 미덥지 못하지만 결국은 내 생명을 좌지우지할테니.. 감사해야지.
"일병 투데이 유 머시오 케이알. 출격준비 끝났나?"
"옛써."
내 이름은 투데이 유 머시오 케이알. 길지만 좋은 뜻을 가진 이름.. 이라고 들었다. '오늘 웃으면 내일도 좋은일이 온다' 라는 뜻이라는데,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란다. 영어도 뭣도 아닌 다른나라 말이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셧는데, 무식한 내가 알리 없다. 그냥 알려준 대로 기억하고 있을 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잡고 서 있는 장교의 앞을 지나서 전투복 착용소로 들어갔다. 후방 보급고 보호를 위한 작은 병영인 이곳의 시설은 내가 처음으로 훈련받던 곳 보다는 상당히 조악했지만, 전투복 착용만큼은 필수적이기에 그럭저럭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발 그림이 그려진 플랫폼의 부품 위에 올라서자 뚱한 눈으로 작동시스템 단말기 옆에 서 있던 군인은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기 시작하며 말했다.
"재수 X나게 없구만, 알. 최전선이라는데."
"내말이."
내 이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히 길어서, 병영 내 동기들은 모두 나를 알이라고 줄여 불렀다. 착용소에서 일 하고 있는 이 놈은 바트. 나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까딱거리며 긴장을 풀었다. 전투복 착용 전에 몸이 굳어있으면 착용하고 있는 내내 스트레칭도 못하고 아주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어떤 놈은 착용전에 목에 담 걸린거 못 풀었다고 징징대다가 결국 피격되서 죽다 살아났다.
그가 조작을 끝내자 사방에서 김이 뿜어져나오며 시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격한 기계음을 내며 팔다리가 맞춰졌고, 다음으로 몸통부분 부품이 맞춰졌다.
끼리릭
"아으.. 이 신경 맞출때는 진짜 싫다니까.. X발."
내가 투덜거리자 뒤에서 바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하면 전투복 입는 의미가 없으니까. 팔다리 손가락 움직이지도 못할 거, 쇳덩이만 걸치는 꼴이지."
마지막으로 어깨와 헬맷 부분이 맞춰졌고, 안면보호대가 내려가며 안에서 산소가 뿜어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답답하고 더러운 전투복 입으면서 유일하게 청량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착용이 완료된 뒤, 밑에서 날 병영 출구로 밀어주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실으며 볼 쪽에 빔으로 올라오는 상태표시창을 읽고 있는데 무전이 들어왔다.
*삑* <죽지 말라고, 알.>
"땡큐. 겁쟁이는 잘 안 죽는거 알잖아."
*삑* <겁나서 못 움직여 뒈지지 말고. 그런 상황 오면 자극제 팍팍 써. 안 죽는다더라.>
"새끼.. 지 몸 아니라고."
무기는 도중에 지급된다. 옆에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라이플 중 하나를 집어든 나는 한 걸음 앞에서 끝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빠져나오며 열려있는 출구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깥에 서 있던 해병이 팔을 흔들며 저쪽에 착륙해 있는 의료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자 빨리빨리!"
"이예아!"
나는 철컹철컹 쇳소리를 내며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료선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일곱명이 앉아있는 걸 보니 이 배엔 내가 마지막인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내 뒤로 탑승구가 닫혀들어왔다.
*삑* <다 타셧죠? 출발합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의료선 내부를 감상하고 있는데 무전이 들려오며 의료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행성이라고 들었으니 아마 워프가 가능한 대형선으로 격납된 뒤에 다시금 이송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