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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알브레히트(1922, 좌), 카를 알브레히트(1920, 우)
알디의 흔한 매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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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형제는 어머니에게 상점을 넘겨받은 뒤 5년 만에 31개의 매장을 오픈, 연간 매출액 6백만 마르크를 달성했고, 7년 뒤 1960년 매장 수는 10배인 300개로 늘어났고, 매출액은 17배인 1억여 마르크가 됐다. 1961년 알브레히트 형제는 자신들의 건설한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 체인의 이름을 알디Aldi로 바꾼 뒤 정확히 2등분 해 형 카를이 남부지역(Aldi South)을, 동생 테오가 북부지역(Aldi North)을 나눠 가졌다. 형제는 ‘최고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판다’는 철칙은 공유하고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담배 판매’를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둘로 나뉘게 됐다고 전해진다. 물론 매장 및 토지의 소유형태, 냉장, 냉동식품의 공급 등을 놓고 견해차가 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알디는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의 형태로 지금까지도 형제 가족의 재산이나 다름없으며, 운용전략은 행정이사회를 통해, 상품의 매입 역시 두 개의 매입 회사를 통해 일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알디는 유혈이 낭자한 형제의 난(亂)이 아닌 매우 평화롭고 단순하지만, 합리적인 방식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체브랜드상품(PB)의 제조사를 철저하게 비밀로 하자 독일의 한 기자가 끈질기게 조사한 결과 네슬레나 유니레버 같은 글로벌 대형업체인 것으로 밝혀지자 그로인해 ‘값은 싸나 품질이 별로’라는 자체브랜드상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일화에,
독일 정부가 매달 발행하는 <제품 평가(www.test.de)> 보고서를 통해 알디의 자체브랜드상품 품질이 글로벌 유명브랜드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 등이 곁들여지면서 알디는 '값도 싼데 품질도 확실한' 독일을 대표하는 국민 마트가 되었다.
특가가 등장했으니 줄을 서시오
1948년 알브레히트 형제가 넘겨받은 조그만 식료품 상점은 독일은 물론 유럽과 호주, 북아메리카에 이르는 18개국 9,000여 개의 매장을 통해 77조의 매출을 올리는 독일을 대표하는 공룡기업이 되었다.
덕분에 2010년 동생 테오가, 2014년 형 카를이 사망하기 전까지 독일의 최고 부자의 자리는 늘 알브레히트 형제의 것이었다(2009년 독일 매니저 매거진 발표에 따르면 카를이 215억 달러로 부자 순위 1위, 테오가 188억 달러로 부자 순위 2위를 차지했고 포브스의 2009년 억만 장사 순위에서는 각각 6위와 9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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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검소, 은둔
2009년 당시의 알브레히트 형제의 재산은 40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7조 7백억 원으로 부자 오브 더 부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당시 1위였던 빌 게이츠의 400억 달러보다 무려 3억 달러가 더 많다.
부자 형제의 위용 (2009년, Forbes.com)
알브레히트 형제는 독일 최고의 갑부임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디 매장이 화려함 대신 최저가로 승부했듯이 알디의 주인인 형제의 삶도 그러했다. 알브레히트 형제 가족의 결혼식, 장례식 등의 행사들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가족들만의 조용한 행사로 치러진다. 1955년과 1957년, 형제는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했던 에센에 각각 평범한 주택을 구입해 50년 이상을 살았다.
집안 복도에서 현관까지 5~6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주택이라 알려져 있다. 1997년, 알브레히트 형제는 2회에 걸쳐 약 7만 마르크(당시 한화 4200만 원)를 들여 가족 장지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알브레히트 형제가 장지를 전혀 관리하지 않아 잡초로 무성해지자 참다못한 관리인이 형제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얼마 후 알디의 트럭이 장지에 도착해 묘목을 잔뜩 내려놓고 갔다. 알브레히트 형제는 장지가 개판이 되든 말든 자신들의 장지를 꾸밀 묘목의 세일 기간을, 그것도 자신들의 알디 세일 기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형제는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테오는 이웃이자 대형 출판사 WAZ의 사장인 귄터 그로트캄프가 연 파티에 자신이 음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뒤 알디에서 판매되는 값싼 샴페인을 제공했다. 손님들은 테오의 구두쇠틱함에 놀랐을 테고, 아마도 테오는 당연한 듯 태연했을 것이다.
1971년 허름한 양복을 입고 혼자 운전해 집에 가고 있던 테오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박 빚에 시달리는 변호사를 포함한 2인조 납치범의 소행이었는데, 납치범은 테오의 모습을 보고 억만장자라고 믿어지지 않아 신분증 사진을 대조해 확인한 뒤 납치했다.
납치된 테오는 오히려 직접 인질들과 협상해 자신의 몸값을 깎았으며, 납치 17일 만에 풀려난 뒤 범인을 잡았으나 지불한 몸값(400만 달러)의 절반밖에 찾지 못해 현상금(60만 마르크)을 내걸었고, 법정에서 자신의 몸 값에 대한 세금감면을 요구해 슈퍼 구두쇠의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물론 세금 공제 신청을 독일 법원에서는 거부했다.)
1971년 납치사건 직후의 테오 알브레히트
1971년 테오의 납치사건은 가뜩이나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알브레히트 형제가 더욱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하고 은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형제의 공식 사진도 1971년에 공개된 것이 유일하며,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공식 발언 역시 1953년 “저렴한 가격이야말로 우리의 광고다”라는 카를의 발언이 유일할 정도다.
형제는 지역 단체와 주민들에게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데 조건은 ‘우리의 지원을 일체 발설하지 않는다’다. 치료비를 후원은 치료비를 후원받은 이가 죽은 뒤에나 세상에 알려진다. 2010년 독일 최고 갑부인 테오의 장례식도, 2014년 카를의 장례식도 모두 치른 뒤에나 가족의 발표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었다.
2010년 테오가 사망하기 몇 달 전 한 독일 언론에서는 ‘카를 알브레히트가 90세 생일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는데, 언론에서조차 생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세상과 자신들을 차단해 온 형제 은둔자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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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시대
월 마트, 테스코, 코스트코, 까르푸.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유통기업계의 '판타스틱 포'다.
업계 최강자인 월 마트는 2012년 기준¹ 4,690억 달러로 1,012억 달러 매출을 올려 2위를 차지한 테스코를 가볍게 제치고 왕좌를 유지했다.(롯데쇼핑의 경우 48위)
이에 비해 알디는 730억 달러의 매출로 월 마트 매출의 16%밖에 되지 않으나(전체 순위 8위) 주목해야 할 지표는 바로 성장률과 해외매출비중이다.
성장율은 월 마트(5%)보다 알디가 2.5% 앞서 있으며(7.5%), 해외매출비중에서는 월마트(29.1%)를 압도하고 있다.(알디 59.2%) 알디는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한다’는 철칙과 독일인이 지멘스와 BMW에 이어 가장 존경하는 기업으로 꼽는다는 기업의 이미지(조사기관 Gfk), 거기에 검소한 은둔자 알브레히트 형제의 존재감이 더해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 이제 이쯤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알디가 만들어낸 최저가의 함정과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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