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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미라주(1-3)
게시물ID : readers_16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0
조회수 : 2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07 16:38:38

 푹신한 침대. 따뜻한 이불, 방안에는 소녀가 그린 공주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어둠이 무서운 소녀는 탁상 위 작은 전등을 켜고 잤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잠을 곤히 자던 소녀는 인기척을 느꼈다. 전등을 끄러온 부모님이겠지. 소녀는 부모님이 한밤중에 몰래 와서 전등을 꺼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그게 싫었다. 자신이야 자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안고 자는 곰 인형은 얼마나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다. 곰 인형은 눈을 감는 법이 없었으니까.

잠에 취한 소녀는 눈을 감고 몸을 일으킨다. 어찌어찌 눈을 비빈다. 눈을 뜬다. 엄마아빠한테 소리를 지르려고 하지만, 엄마아빠는 그곳에 없었다.

도깨비.

소녀가 좀 더 침착했더라면, 도깨비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하다는걸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도깨비의 얼굴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소녀는 이불안으로 숨었다. 도깨비가 기다란 손톱으로 이불을 찢어버리고, 나를 삼켜버리면 어떡하지? 소녀의 머릿속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도깨비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이 젖혀졌다. 소녀는 정말이지, 기절할 것만 같았다.

“과자 먹을래?”

도깨비가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앞에 있는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소녀는 더 겁을 먹을 뿐이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과자를 집었다. 엄마는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은 받아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먹지 않으면 도깨비가 자신을 먹을 것 같았다. 도깨비의 과자를 한입 깨무는 순간, 소녀는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소녀는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 어느 꿈보다도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너무 무서웠던.

소녀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도깨비를 만났던 일이며, 자신이 꿨던 꿈에 대해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더한 악몽과 일들이 지나간 지금에도, 그것이 때때로 다시 꿈에 나타나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힌다는 것을 누군가가 안다면, 절대 믿어주려 하지 않겠지. 어쨌거나, 그녀는 그 이후, 한 번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그녀가 본 것을 아는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다.

그런데, 그녀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곳이 그가 있는 곳입니다.”

파로가 다 헤져가는 지도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대충 보니, 이 나라의 국경 밖에 있는 산 중턱이다.

“접근하기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이수가 말한다. “확실한 정보겠죠. 당연히.”

“물론.”

파로가 말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마을인가요?”

이수가 말한다. “적어도 이사람 혼자 살 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람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곳입니다.”

파로가 말한다. “본다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고, 그곳의 사람들도 모르지 않을 리가 없으니 문제될게 없습니다.”

파로를 보는 이수의 눈이 의혹으로 가득 찬다. 파로는 그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좋습니다.”

이수가 한참 뒤에야 눈을 돌린다. “그 이외의 것은요?”

“없습니다.”

파로가 말한다.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었나요?”

이수가 말한다.

“충분하지 않은가요?”

파로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한다.

“찾아 죽이라는, 일반적인 의뢰라면 충분하겠지만, 죽이지 말고 잡아오라고 하셨잖습니까.”

이수가 말한다.

“추측하는 바는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도, 저는 당신이 저보다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파로가 말한다.

“어떻게 모든 걸 확신하는 어조로 말하는지.”

이수가 말한다. “당신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지껏 모든 의뢰인을 이해하려고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파로가 말한다.

“저한테 의뢰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상황도 파악하지 못 할 만큼 멍청하지 않습니다.”

이수가 말한다.

“어쨌거나, 당신에게 의뢰를 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폐하십니다.”

파로는 이수의 표정을 보더니 말을 덧붙인다. “당신이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을 기대해도 되겠죠.”

“별로 바라지 않을 것 같지 않은데요.”

이수가 방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말한다. “그리고 제가 의문을 갖는 부분은 ‘의뢰인’의 정체라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파로가 말한다. “당신이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주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수는 파로 같은 사람이 싫다. 남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고. 분명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모든걸, 심지어 운까지 가진 사람.

“그럼 의뢰얘기로 다시 넘어가도록 하죠.”

한참동안 이수가 말이 없자, 파로가 말한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당신이 말한 장소로 가서, 그에게 접근해봐야겠죠.”

이수가 말한다.

“말로 그를 설득한다거나 하는 식의 계획은 아닐 거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파로가 말한다.

“제가 하는 일은 남을 쏘는 일이지, 미아보호소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사람 찾아 데려오는 일이 아닙니다.”

이수가 말한다.

“그에게 직접 접근하는 것은 안 됩니다. 가능하면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세요.”

파로가 말한다.

“이것정도는 이유를 말해줄 법 한데요.”

이수가 말한다. 파로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연다.

“당신에게 의뢰를 맡기기 전에 시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파로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당연히 미끼를 물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아마 당신이 접근한다면, 당연히 그들은 저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할 겁니다.”

“‘그들’?”

파로는 그것에 대한 답은 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가보셔야 할 것 같군요.”

파로가 다시 시계를 쳐다본다. 이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는 길에 멈춰선다.

“다른 전문가들이 아닌, 이런 분야의 일과는 별 관계가 없는 저에게 이 일을 의뢰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으시겠죠. 당연히.”

이수가 묻는다.

“짐작하는 바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수가 뒤를 돌아보니, 파로는 커튼이 쳐진 아치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제 안전망이죠, 말하자면. 방을 나가면 제 하인이 몇 가지를 전해 줄 겁니다.”

이수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쳐다본다. 그림 한 장으로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우는 여지껏 여러 가지 운동을 익혀왔었다. 부친이 살아있을 때에는 같이 사냥을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취미는 바깥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 안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괴로워 밖에 나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아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어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고작이지만 다른 것을 한다 한들, 그를 건져내 줄수 없다.

성으로 가려면 꼭 이 길을 지나야 하기에, 하루에도 여러 대의 마차가 거리를 지난다.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수많은 가게들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가 세어 나온다. 이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나라 전체가 거의 평탄하고,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탓에, 저 멀리에 있는 귀족의 저택 귀퉁이도 보인다. 내우는 일부러 저택들이 보이지 않을만한 곳으로 움직인다.

그가 사는 곳은 분명 나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무척이나 작은 탓에 차라리 커다란 마을이라는 명칭이 어울릴 지경이다. 나라 끝에서 반대편으로 가는 데에는 마차를 타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외곽에 있는 귀족들이 중앙에 있는 성에 당도 하는 데에는 고작해야 한 두시간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라가 작다보니 귀퉁이에서 난 소문이 나라 전체로 퍼지기에는 일주일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쉬쉬하니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 두시가 전국에 군인들을 배치한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거리에는 지긋지긋한 안개가 걷히지를 않고, 지나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순찰을 도는 군인들의 입에서 의도치 않게 성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 지긋지긋하다. 그들이 내우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모를 리가 없다.

해가 지고, 많은 가게들의 문이 닫히는 것이 보인다. 백년도 더된 건물들에 그림자가 짙어진다. 수년째 걷는 길이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몇 세기 전, 이 나라는 주변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였다. 잇따른 전쟁에서 승리하며 어마어마한 토지와 부를 쌓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재물에 파묻힌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부터 다른 나라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왕이 대 여섯번 바뀌는 동안은 모아둔 것으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그렇게 영원을 갈수는 없었다. 결국 왕은 무리하게 전쟁을 벌였다.

그들이 알아차리기에도 전에, 다른 나라들은 너무나도 변해있었다.

전쟁 이후, 이 곳은 땅의 대부분을 뺏겼다. 부강함은 한순간에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의 왕들은 이것의 뒷처리를 하기에도 벅차 나라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습이 겨우겨우 마무리 되어가자 나타난게 두시다. 두시가 한 일은 수십 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우가 묻어놓은 이야기는 들춰내기에 너무 많다.

수레가 지나간다. 큰 굴곡을 지나더니 그림을 가리던 천이 반쯤 벗겨진다. 내우는 잠깐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붉던 하늘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한다.

겨우 다시 발길을 돌린다. 내우가 서있는 곳은 이미 그의 거리와 멀다.

다시 광장을 지나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 쑥덕거리는 것을 지나친다. 내우는 가장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버린다. 그들을 지난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크게 항변하는 사람의 말소리는 내우에게 닿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아무 일에도 휘말리지 않기만 하면 된다. 내우가 이곳까지 밀려나는 동안 수백번을 되풀이한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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