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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첫사랑, 1979 -2-
게시물ID : readers_165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레스트검프
추천 : 1
조회수 : 24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09 18:19:15
1979

-2-

내가 열 일곱 살이었을 때, 나에게는 세 가지 세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곧, 네 번째 세계를 만났다.

 나는 집이 싫었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혼했고, 나는 항상 형에게두들겨 맞으며 자랐다. 아홉 살 쯤에 난, 삶이 비참한 것이라고단정지어버렸다. 난 평생 아버지를 미워했다. 너무나 미웠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전형적인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학교는 꽤 엄격했다. 깡패 같은 교사한테 뺨을 흠씬 두들겨 맞고 나면 교사들이 싫었고 학교가 싫었고 또한 세상이 싫어지곤 했다. 나는 그곳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다. 집과 학교, 이 두 세계는 나에게 어떤 위안도 주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음악에 빠져있었다. 수지를 만났을 당시에는펑크와 하드코어에 심취해있었다. 루저를 위한 음악. 난 내가루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밑바닥 인생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메시지와 음악이 좋았다. 난 언제나 지하철을 타고 빌어먹을 동네-수도권의 한 대도시였는데 나는 이곳에 아무런 정도 남아있지 않다-에서벗어나 홍대로 도망쳤다. 서울에는 날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스컹크헬에 가면 그곳에 항상 죽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펑크씬에는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루저들. 그때는꽤 많은 밴드들이 생겨났다. 씬이 부흥하던 시기였다. 홍대에서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체로 가장 자주 어울리는 몇명이 있었다. 모두나보다 한 살에서 두 살 정도 많았다. 나는 항상 막내였다. 하드락에미쳐있는 보컬, 메탈씬에서 한 가닥 하는 기타리스트, 시부야계를좋아하는 누나, 또 인디 레이블을 운영하는 사진가-그는 지독한변태였다-까지. 서로의 공통점이라곤 음악에 미쳐있다는 것과 16mm라는 술집에 자주 다녔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딱히 공통점이없었다) 16mm는 미성년자인 우리가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의 몇 안 되는 장소였다. 홍대 앞의 어느 골목 지하에 있는 허름한 술집이었다. 우리는 거기서맥주와 소주를 마셨고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했다. 우리는 대학생인양 거짓말을 해야 했다. 하루는 내가 교복을 입고 온 바람에 술을 마시러 가지 못할 뻔 했는데, 누군가가입고 있었던 엄청나게 큰 코트를 걸치고 들어갔더니 아무런 문제 없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우리는 밤새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 그룹에 합류하고 이탈한 여러 사람들 중에 수지가 있었다.

여름날이었다. 사진가의 아버지가 사진관을 개업했다. 그의 권유로 나와 친구들은 개업식에 축하 차 놀러갔다. 어린이대공원근처의 한 지하철역을 나오니 수지가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키가 자그마하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등뒤에 한 갈래로 땋아져 있었다. 눈꼬리에 점이 있었다. 앳된얼굴이었다. 함께 골목을 따라 걸어가니 주택가에 조그마한 사진관이 있었다. 사진관이지만 사진가의 가족이 사는 집이기도 했다. 우리는 개업식을돕고 동네를 돌면서 이웃들에게 시루떡을 나눠줬다. 수지는 나와 함께 했다. 일이 모두 끝나니 날이 저물어 어두웠다. 우리는 사진관에서 술을마셨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술을 조금 마시면서 나와 얘기를 했다.다소 차가운 인상의 여자아이였지만 의외로 나에게는 꽤나 다정하게 대해줬다. 부드러워 보이는뽀얀 얼굴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나 있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나는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취기가 올랐다. 아직 술을 마시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이였다. 집에 돌아갈 때 그녀가 나를 부축해줬다. 그녀에게 부축을 받는다는게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도도하지만 마음은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철 역에서 헤어져야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열차는 덜컹거리는소리를 내면서 계속해서 달렸고 또 계속해서 멈췄다. 나는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 후로 수지와 연락을 하며 지냈다. 종종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 가기 위해 노력했다. 수지는나보다 한살이 많았다. 나는 기타를 쳤고 그녀는 피아노를 쳤다. 그녀는재즈, 나는 하드코어와 펑크. 그녀는 나에게 하드코어와 펑크가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재즈보다는 뉴에이지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수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머지않아 그녀와 나 사이에 음악적인 공통분모가 생겼다. 나는 90년 대 그런지 밴드들 중에 스매싱 펌킨즈를 제일 좋아했다. 언젠가그녀에게 스매싱 펌킨즈의 1979를 들려줬다. 그녀는 그노래를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16mm에서 함께 술을마실 때면 언제나 그 노래를 신청했다. 그때부터 그 노래는 우리 사이에서 그 자체를 넘어선 어떤 힘과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를테면 수지와 나를 상징하는 노래였고, 또우리가 공유한 시간과 감정과 공간을 모두 빨아들이며 그 의미는 더욱 강해졌다. 지금도 나는 그 노래의힘을 느끼곤 한다.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수지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수지와 꾸준히 만났지만 그녀와 만나는 것을 곧 사귀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사귄다는 말과 약속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너무 어렸다. 그녀와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의 성숙하지 못한 면은 때때로 수지를 화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나는 그저 그녀와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같은 세계를 공유했고 나의 삶은 하루하루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모든일들이 즐거웠다. 내 안의 충만함은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녀와함께하는 시간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순간들이 영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그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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