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내가 자리 있다고 했는데 지가 그냥 앉겠다잖 아! 그러니까 거기서 하게 냅둬!”
“뭐? 자리 있는데도..지가 그냥 앉겠대...??”
이런 분위기...참 지랄 같다.
“아, 아닙니다. 여기 앉으세요. 제가 3번 자리에서 할께요. ^^;”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재빨리 진화에 나서보지만..
“됐으니까 그냥 거기 앉아서 하쇼.”
“아, 아닙니다. 제가 양보..”
“앉으라 했다.”
“옙!”
아 자존심 열라 상해...;;
“환자라서 봐준다. 환자라서.”
환자라서 봐주겠다는 저 한마디.
참..
고맙다..-_-;
물론 마음속에서 열불이 터져오지만..어쩌겠는가?
환자인 내가 힘이 있나?
40kg도 안 되는 초등학생 몸으로 건달한테 개길 힘이 있나?
없다-_-
남자는 내 옆에 있는 3번 컴퓨터에 앉는다.
난 별 생각 없이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순간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온다.
지금의 난 장기로 비유하자면..
왼쪽馬(휠체어소녀) - 중간漢(나) - 오른쪽馬(밥샵)
대충 이런 상황인데..
중간에서 내가 받을 압박이 상상이 되어 지는가?
그때였다.
“아저씨.”
옆에서 날 부르는 그녀.
“응?”
하고 대답하며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니 너 말고, 저 쪽에 있는 아저씨.”
“...........”
오늘 무슨 날인가?
민망과 무안의 연속이다.
두 사람은 날 중간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 병원에 있다니까..그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
“뭐라고 안하긴, 완전 개지랄을 틀지.”
“왜?”
“너 때문에 일이 완전 빵구가 나버렸는데..당연 한 거 아냐?”
“많이 지랄하지..?”
“엄청. 너 지금 그렇게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그럼 내가 어떡해야 되는데?”
“얼른 전화해서 죄송하게 됐다고 싹싹 빌어.”
“............”
“알아 들었어?”
“그러긴 싫어.”
“싫어? 너 지금 싫다고 그랬냐? 야 시발..그럼 너 이대로 주저앉을래??”
“어차피 나..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 될 대로 되겠지.”
“아 미친년..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키보드를 세게 내려치는 남자였다.
“너 왜 그렇게 네 멋대로야?!!”
“.................”
“그래 샹년아. 술 쳐 먹고 5층에서 뛰어내리니까 좋디? 팔 다리 다 부러지 고 나니까..스트레스 확 풀리디? 죽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쳐 부르더니..자. 어때? 지금 네 꼬라지를 봐바! 이렇게 되니까 좋냐? 좋아?”
“..................”
“니가 죽고 싶다고 지랄해서 얻은 게 뭔데? 뭐가 해결 됐는데? 병원비로 돈만 졸라게 깨졌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뭔지 알아? 너라는 년은 목숨이 졸라게 질겨서 어떤 생쇼를 부려도 안 죽는다는 거다. 알겠냐? 사람 목숨 끊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줄 아냐? 너 네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 아 니잖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살기 싫어도 억지로 살라고! 왜 살아야 되냐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무엇을 얻 기 위해 사느냐는 개소리 하지 말고..그냥 되는대로 쳐 살아! 니 꼴리는 데 로 살라고...”
남자의 끝맺음이 흐려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는 남자였고, 눈에는 큼지막한 눈물을 머금고 있던
남자였다.
깍두기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 팔에 용문신을 하고 있는 남자, 흰색 나시
티에 근육질 몸매의 남자, 눈물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강렬한 인상의 남자가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우는 게 쪽팔렸던지, 소리 없이 조용히 흐느꼈고..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는..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_-; 리니지를 꺼버린다.
나는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 눈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저 눈물의 의미를..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왜냐면 난 저 똑같은 친구 서기에게서 본 적이 있기에.
#. 무관심.
작년 7월, 난 혼수상태로 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고..
정밀 검사를 마친 나는 담당의에게서 간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간암?
인구 10만 명당 간암의 발생율은 남자가 30명, 여자는 7명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 간암은 암으로 인한 사망율중 위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매 우 치명율 높은 암질환.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놀랍긴 커녕 그저 우스웠다.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10만 명중에 30명이 걸리는 병에 내가 걸렸으니..
이 어찌 웃기지 않단 말인가?
내겐 고정관념이 있었다.
간암, 폐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등등..암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는 병
인 줄 알았고, 인생을 살만큼 사신 분들만 걸리는 병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 충격 진단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도 이런 병에 걸릴 수 있구나.
스물일곱 나이에도 이런 병에 걸릴 수 있구나.
나도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구나..
나도 죽을 수 있는 거구나..
그리고 작년 12월. 대학병원 담당의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얘기는 이러했
다.
“더 이상의 수술은 불가능 합니다. 병원을 옮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편히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처음엔 몰랐다.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의사가 시한부 선고를 그런 식으로 통보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날 친구 서기가 병문안을 왔었는데..
너무나 놀랬던 나는 녀석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울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날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서기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휴지를 손에 쥐고서 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서기.
그때 녀석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지금 저 남자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이랑 똑같은 눈물을.....
난 무슨 생각에 그랬던 걸까?
환자복 상의에 넣어두었던 휴지 몇 장을 꺼내어 남자에게 내밀었다.
“.................”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고 날 쳐
다보며 딱 한마디 했다.
“너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냐? 시발놈아??”
“아, 아니요. 전 그게 아니라..”
남자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팔을 세게 뿌리친다.
그러자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휴지는 휴게실 바닥으로 내 팽겨 쳐지고..
“너 이 시발새끼. 오늘 나한테 두 번 맞을 뻔한 거..저 기집애 때문에 넘긴 줄 알아라.”
그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는 남자.
휴게실 안은 조용하다..
아니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침울한 분위기 미칠 것만 같다. 신물이 난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어색한 침묵이 싫어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날 보며 입을 여는 그녀였다.
“아저씨.”
“응?”
“부탁하나 하자.”
“무슨 부탁?”
“나 좀 밀어줄 수 있겠어?”
“에? 그게 무슨?”
“바보야. 그러니까 휠체어 좀 밀어줄 수 있겠냐고.”
“아 휠체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바보라는 단어.. 왠지 듣기 좋다.
욕인데도 전혀 욕같이 들리지 않는 단어.
“대답해. 어서! 나 걸을 수 있을 때까지..밀어줄 거지?”
“응.”
나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해버렸다.
별 뜻도 없었다. 그저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별 일도 아닌 것 같았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해버린 것이 전부였다.
“아저씨.”
“응?”
“나 옥상에 올라가고 싶다. 바람 좀 쐬고 싶어..”
그녀의 뒤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전혀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정상일 때의 경우고..-_-; 난 내가 환자라는 사실도 깜빡 잊고
있었나보다.
왼 손엔 링겔이 꽂혀 있었기에 오른손으로만 휠체어를 미는데..숨이 차서
죽는 줄 알았다.
문득 담당의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이동훈님. 절대 무리하게 운동하시면 안 됩니다. 가벼운 산책도 이동훈님 에겐 위험하니까 지금은 면역 수치 올리는 데만 집중하세요.”
지금 나의 행동이 잘못 된 것일까?
이미 해주겠다고 했는데..그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대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칠 않는다.
하지만 ..어지럽잖아?
그녀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데 점점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저 앞에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머리가 어지럽다.
“뭐냐? 아저씨 남자 맞아?? 겨우 이거 밀고 헉헉 거려?”
“아, 아니..헉헉...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완전 죽을라카구만 ㅡㅡ”
“헉헉...아, 아냐..헥헥.......헥..”
“이봐 이봐. 내 말이 딱 맞다니까. 운동은 전혀 안 하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만 해대는 남자애들..”
“아니라니까!!!!!!!! 살이나 좀 빼고 그런 소릴 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 옥상으로 올라오는 내내 욕을 쳐 먹었다-_-;
물론 욕먹을 짓을 한 건 안다.
여자에게 살 빼라는 소리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체중 39kg밖에 안 나가는 남자에게 휠체어를 밀어 달라고 부탁했으면..
최소한 이정도의 부작용은 예상했을 것 아닌가??
밤이라 그런지 옥상은 한적했고 쌀쌀했으며,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
다.
그땐 12월 이였기에, 날씨가 무척 쌀쌀했던 걸로 기억한다.
입술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추워?”
병원 옥상에서 부산 야경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날 보며 물었다.
“아, 아니 괜찮아. 견딜만 해.”
“전혀 괜찮아 보이질 않는데?”
“아냐 정말 괜찮...으으으~~”
“..................”
“사실 많이 춥다.”
“좀만 참아. 곧 내려갈 거니까.”
그녀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옥상위의 바람 때문에 라이터로 불붙이는 데만 5분이 걸렸지만..-_-
“아저씨. 나 답답해. 모자 좀 벗겨줘.”
“으, 응..”
바로 그때였다.
내가 그녀의 모자를 벗기던 바로 그 순간 거센 바람이 불었고, 내 손에 있
어야 그녀의 모자는 저 멀리 날아가 내 눈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
았다.
“아....”
좆 됐다는 생각에-_-; 엄청 미안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데..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여자를 보고야 말았다.
그녀는 겨울바람에 긴 생머리를 흩날리고 있었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제
대로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얼굴이 네온 싸인 불빛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
금씩 드러나는데...순간 난 모자를 놓쳐서 미안하다는 생각보다, 바람에 흩
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며 멍해 있었으니..
“아저씨.”
“응?!!”
“뭐야 왜 그렇게 놀래?”
“아, 아니..미안.”
“아냐. 미안해할 거 없어. 어차피 아저씨가 내 휠체어 밀어 줄 건데..그 정 도는 내가 감수해야지.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