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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미라주(1-4)
게시물ID : readers_165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0
조회수 : 18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11 09:23:45

 다음날, 집에 나이든 남자가 내우의 집을 두드린다. 내우는 쥐고 있던 것을 놓고, 문가로 향한다. 이전에는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매우 경계했지만, 지금은 그러기에 그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와 같은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지가 오래이기에 어찌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근방에서 그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기에, 또 이제는 빛을 잃은 그의 것들을 아직도 떠받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들고 오곤 한다. 문을 열자 역시나, 문밖에 농부 한명이 서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내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일 있나요?”

내우가 묻는다. 농부는 자꾸만 손을 꼼지락 거린다. 그의 눈은 두서없이 자꾸만 어딘가로 향한다. 내우가 그의 시선을 쫒는다.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그들의 발소리는 거리를 울린다. 내우가 숨을 들이쉰다.

이거 괜찮은가?

“일단 들어오시죠.”

그가 겨우 이야기한다. 직접 문을 닫는다. 농부보다 앞서 집으로 들어가 집안의 모든 창문을 닫는 동안, 남자는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린다.

“이제 괜찮습니다.”

내우가 농부의 맞은편에 앉는다. 농부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못한 듯 자꾸만 뜸을 들인다.

“그러니까, 제가...”

“그냥 편하게 말하시면 됩니다.”

내우의 목소리에 한숨이 배어나온다.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남자는 말문이 막혀버린 듯하다. 군인들이 눈앞에 들이 닥친 것 같은 얼굴이다. 한참을 허둥대던 농부는 옷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손을 뻗던 내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다. 그의 표정은 굳어버린다.

커다란 브로치. 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듯한 금은 이리저리 굽어져 무늬를 이루고 있다. 그 위에는 귀족들이 두를법한 보석들이 빽빽이 붙어있다. 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건을 찾기 시작한다.

망토를 입은 소년. 깔끔한 인상, 약간 작은 키. 그리고 그 가슴에서 반짝이는 황금 브로치. 한참을 들여다봐도, 연상되는 것은 하나뿐이다.

왕자.

“어디서 찾았습니까?”

내우의 목소리가 무겁다.



이전보다는 훨씬 줄었지만, 나라 외곽에는 아주 예전부터 내려오는 내우의 땅이 있다. 그는 이를 농부들에게 빌려주고 값을 받는다. 높은 곳에 올라가도 지붕밖에 안 보이는 이곳과는 달리, 외곽지역은 벌판뿐인지라 보통 밭들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 물론 짓다만 것같은 건물이라던지, 폐가들도 여럿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쪽에 가본지가 너무 오래라 그려보기가 힘들다.

이 농부는 내우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중 하나이다. 그날도 밭에서 이것저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는 꽤 거셌지만, 집으로 달려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또한 농부가 보기에 그리 오래 내릴 비는 아닌 것 같았기에, 근처에 있는 빈집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집이 어디인지 알아차린 것은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번 왕의 죽음 전후에 이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여러번 났었다고 한다. 이상한 괴물이 산다는 말도 있었다. 그때문인지, 성에서는 이 집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었고, 마차도 여러 번 다녀갔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아무 얘기도 없지만,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 또한 알고있었다. 괜히 불안해진 농부는 창문에서 눈을 떼고, 폐가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브로치는 부숴져가는 옷장 안, 찢어진 망토에 끼워져 있었다고 했다.

내우가 소작세를 많이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농부는 분명 돈이 궁한 직업이다. 이것은 누가 봐도 비싸게 팔수 있는 물건이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칠 만큼 어리버리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 비가 그치자마자 그 집에서 달려 나와 아내에게 이것을 보여줬는데, 왜인지, 그녀는 내우에게 이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분명, 그의 아내가 옳았다.

“만약 아무 말씀도 안하시면, 돌아가는 길에 이것을 팔려고.....”

“아니요, 절대 팔면 안됩니다.”

내우가 그의 말을 끊는다. “그냥 가지고 있으세요. 이걸 파는 길에 누가 당신을 보기라도 하면 끌려갈 겁니다.”

어제의 일이 갑자기 내우의 눈앞을 스친다. 모여있는 열댓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던 남자.

“어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까?”

내우가 묻는다.

“예?”

농부는 점점 얼이 빠져가는 것 같다. “아니, 전 그저....”

“그 사람들, 잘 아는 사람입니까?”

내우가 꼬치꼬치 캐묻는다.

“전 나라 외곽에 사는 사람입니다.”

농부가 대답한다. 내우의 머릿속에서 온갖 가지의 생각들이 스친다.

“정말, 이게 그 왕자의 물건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농부가 내우에게 묻는다.

두시가 왕이 되고나서 가장 집중했던 일중에 하나가 이전 왕가, 특히 왕자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왕자는 두시가 왕좌에 앉자마자 도망가버렸지만, 성에서는 혹시나 있을 왕자의 물건을 찾기 위해 엄청난 인력을 투입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성으로 흘러들어가면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다 해도 놀랍지 않다.

내우의 눈은 탁자위의 브로치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정말로 그들이 놓친게 있는걸까? 진짜로?

내우가 망설이다 마침내 대답한다.

“솔직히 말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밖이 어둑해진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이곳을 나간 농부의 흔적은 아직도 테이블 곳곳에 남아있다. 내우는 멍하니 앉아있다 일어나 성냥을 켜고 집안 곳곳에 불을 붙인다. 구석에 널려있는 천 조각에 물을 묻혀 테이블을 닦는다. 그의 움직임이 텅 빈 집을 울린다.

창 위의 커튼은 여전히 드리워져있다.

책상위에 있는 것들을 파헤쳐 책 한권을 찾아낸다. 그의 방을 밝히는 촛불은 글자를 비추기에는 너무 어둡지만, 내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책을 펴지만 책장은 넘어가지 않고, 그의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들을 읽어나가기에는 머릿속에 빈틈이 없다.

나라 끄트머리에 있는 흉가에서 왕자의 찢어진 옷이 발견되었다.

왕자는 두시가 왕이 되자마자 도망갔다고 했다. 그 둘이 마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바가 없고, 왕자가 마차도 없이 숨어다니며 도망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걸어야 했다 해도, 이 나라는 성에서 국경까지 며칠이 걸릴 만큼 큰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빠져나갈 때 그 집에 들러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찢어진 망토를 봤다고 했다. 왕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왕자가 나라를 빠져나가기 전, 군대를 움직여 그를 잡은건 아닐까?

왕자가 이 나라 밖에 있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일까?

생각에 잠긴 내우의 귀에는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문을 부수는 듯한 소리가 그를 깨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의 걸음이 문으로 향한다.

문이 열리고, 들이닥친 찬바람이 집안의 촛불을 끈다. 문간에 군인이 서있다. 내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낀다.

“무슨일이십니까?”

겨우 뱉어낸 그의 말은 군인의 귀로 들어가지 않는다. 군인의 시선이 옆에 서있는 사람으로 향한다. 이미 해가 졌지만, 군인들이 드문드문 들고 있는 횃불만으로도 남자의 으깨진 얼굴을 보는 데에 무리가 없다.

내우의 가슴이 철렁한다.

“이사람이 맞나?”

낮에 보았던, 그 농부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군인들은 예고도 없이 거칠게 그를 끌어낸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찬 철창으로 둘러쌓인 마차에 밀어넣는다. 내우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군인의 채찍질에 수많은 말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찬바람은 그의 몸을 할퀴고, 그를 둘러싼 마차 안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아무것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의 머릿속은 지나는 길처럼 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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