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부의 대도시 광주에서 19일 오전 일어난 반정부 가두 데모는 학생외 시민도 가담하여 약 1만 5천명으로 불어나고 완전무장한 군대와 격력하게 충돌하였다... (중략) ... 병사들은 총검을 휘두르며 데모대를 진압, 학생들을 차례로 연행했다."
- 도쿄신문 1980년 5월 20일 <광주의 데모 폭동화, 군이 총검으로 진압>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20년전 4. 19혁명 이래 그 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정부, 군당국과 학생,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광주에는 22일 공수부대와 수도경비 사령부의 병력이 시 주변에 배치되어 총공격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시내에 진을 치고 있는 학생, 시민의 데모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 아사히신문, 1980년 5월 23일 <광주사태 긴장계속, 군은 시주변 완전포위>
"광주항거 4일째인 수요일, 최소한 24명이 사망하고 시민은 야만군대와 경찰을 추방하고 통제권을 장악했다. 수요일에 시작된 학생시위에 대하여 전두환이 지휘하는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구타, 연행, 결딴냈으며 이로 인하여 항거는 도시 전체로 확산, 한국전쟁 이래 가장 거대한 봉기로 인하여 공수부대 출신이며 박정희의 맹신자인 전두환의 장래에 불안이 확대.."
- 뉴욕타임즈, 1980년 5월 23일 <광주시민들, 군대와 경찰을 추방>
"광주의 인상은 약탈과 방화와 난동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란 대의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한국 군부의 야수적 잔인성은 라오스, 캄보디아를 능가한다."
- AFP통신, 1980년 5월 24일 <민주주의란 대의에 움직이는 광주>
"일반 시민들은 데모대에 동조하고 있으며 18일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공수부대의 야수적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검에 찔리고 구타당했으며, 수요일에는 군대의 발포로 최소한 11명 사망, 여기의 상황은 한국의 타 지역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뉴욕타임즈, 1980년 5월 25일 <고립된 광주에서의 참상>
「 뉴스위크 」 (6. 13) 민중은 결코 잊지 않으며 광주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민중의 불만 은 총으로 억압되어지지 않으며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려는 전두환 일당의 음모는 실패할 것이다.
「 AFP 」 광주 투쟁은 약탈과 난동이 아니며 시민들은 민주실현이라는 대의로 움직였다 독일의 「 슈피겔 」지는 적어도 3백 명 사망, 2~3천 명 부상이라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전두환을 가리켜 월남전쟁의 야만인 한국의 독재자라고 했다
광주에서 군사정권의 총칼앞에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숭고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꽃을 준비했습니다. <광주를 방문한 ARD방송의 전 일본특파원 유르겐 힌츠페터>
5·18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화운동의 본보기" 모든 이들이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독일 언론인 힌츠페터>
외국의 언론이 국내의 메이저 신문사(조선,중앙,동아)보다 훨씬 정확한거 같네요 한겨레,경향.. 등의 신문보다 더 정확한것도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