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가득한 백지란 까탈스런 청자가 아니기에 듣는 이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말주변이 나로썬 이보다 좋은 대화 상대를 찾을 수 없다. 백지는 그 어떤 주제와 어조를 내뱉어도 있는 그대로를 스며주는 넉넉함을 지녔다. 그리하여 고해성사를 하듯 가슴 속 허로부터 나오는 언어들을 쓰고 또 쓰다보면 심적인 애환이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인지라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홀로 설 기운이 나질 않는다. 사람이 된다면 백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스며드는 잉크에 구겨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