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개신교의 실수는 한 두가지가 아님
자신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지못하면서 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모순임
또한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으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이들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그냥 교회의 형식이나 교회의 제도를 따르는 것 뿐임.
그나마 교회의 제도라도 따르면 몰라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함.
그럼 진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으며, 그들은 과연 전도의 자격이 있는가?
꼭 그렇지도 않음.
누가 진짠지, 누가 가짠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임?
교리가 조금 다르면 이단취급하고, 지옥간다 하니 이것이 무슨 자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단가.
더 나아가
일단 교회자체가 예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도 상반됨.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인간도 마찬가지임, 나도 포함
예수는 필경 세리나 창기들이 천국에 더 일찍 들어간다 하셨음.
또한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고 하셨으나
교회의 질서를 핑계로 위계질서가 꽉잡힌 교회에서는 숨이 턱턱막힘.
예수는 무신론자를 사랑했으나
교회는 무신론자를 사랑하지 않음.
신의 자격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인간예수는
서른 살이 되는 해까지 무엇을 했는지 가르쳐준 바 없지만
제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술집을 드나드셨고
익명으로 선한 일을 도모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창가를 사랑하셨다.
식민정책을 벌이던 로마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셨고
국민들의 세금을 띠어 먹고 살아가는 부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셨고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여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위선자들, 즉 서기관 혹은 제사장. 오늘날의 목사들을 꾸짖으셨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큰 예로
불행에 처한 자의 선한 이웃은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셨다.
교회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자들은 누구일까?
그렇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일 수 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잘 것 없는 비천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시고, 직접 찾아가 사랑을 선포하셨던 분이 바로 인간예수다.
개신교는 착각하고 있다.
진리에 있어서는 결코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독선적인 태도가
구약에서 표현된 아주 협소하고도 편협한 하나님을 향한 사상이
전혀 문화적으로 개방되지 못한 미개인들의 사상을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다.
아니, 구약시대에 살았던 신앙인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들의 고백은 이방인, 즉 세계 만국을 향하여 하나님에 대해 서술하나
지금의 개신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교회,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친구, 우리로 좁혀지고 있다.
어찌하여 개신교는 예수를 제한하는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운명이라는 틀에 가두어 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스스로..
예수의 실수인가
개신교의 실수인가
무신론자의 실수인가
하나님의 실수인가?
우리가 아는 바, 하나님, 즉 신은 실수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신의 존재가 존재하는 바 실수가 있어서는 아니된다.
이것 또한 인간의 생각으로 인식하는 신의 존재이겠지만..
개신교는 말할 것이다.
"선교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말할 것이다.
"선교와 삶은 다른 차원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예수의 존재 유무를 떠나
예수의 가르침도 따르지 못하는
스스로인 나를 질책하며
또 나를 만들어낸 개신교를 질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