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북스의 책을 볼 때마다 이 회사는 도대체 돈 벌 생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딱 봐도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주구장창 내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하던 참에 마침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엄진섭 상무를 만나 묵은 궁금증을 풀 기회가 생겼다. 놀랄 준비들 하시라. 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다음은 엄 상무와 일문일답.
- 도대체 1년에 몇 권이나 책을 내는 건가.
“커뮤니케이션북스가 1998년부터 올해 8월까지 낸 책이 모두 2646종이다. 자매 브랜드로 지식을만드는지식이 있는데 여기에서 2008년부터 올해 8월까지 1527종, 그리고 지식공작소와 박영률출판사, 학이시습이 각각 122종과 23종, 158종씩이다. 절판 도서는 뺀 숫자다. 다 더하면 4292종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1년 동안 567종을 낸 셈이다.”
- 직원이 몇 명인데, 한 사람이 몇 종씩 만드는 건가.
“지금은 46명이다. 편집부가 25명 정도다. 보통 다른 출판사들은 한 사람이 1년에 4~5종을 내는데 우리는 1년 평균 20종에서 많게는 30종을 만든다. 애초에 생산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년에는 기획물 3종(한국희곡선집 100종,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100종, 외국인을위한한국어읽기 100종)이 있어 특별히 더 많았다.”
- 한 편집자가 한 달에 두어 종을 만든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일단 불필요한 공정을 최소화한다. 보통 다른 출판사들은 쿽이나 인디자인을 많이 쓰는데 아래아한글을 쓰면 저자와 편집자, 디자이너가 같은 파일로 작업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전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준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맥으로 작업을 하면 통째로 출력을 해서 퀵으로 쏘고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교정을 하면 교정지를 다시 받아서 누군가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그걸 또 다시 제대로 입력했는지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도구를 한글로 통일하면 그냥 파일로 주고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디자인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책의 본질적인 역할과 내용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콘텐츠의 힘을 믿고 최대한 심플하게 간다. 일하는 방식도 개선한다. 8시 출근해서 1시에 점심을 먹는데. 오전에는 회의를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8시부터 1시까지 집중적으로 몰아서 일을 한다. 이게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 안 팔릴 것 같은 책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이유가 뭔가.
“우리는 책을 낼 때 세 가지를 본다. 콘텐츠의 전문성과 독창성, 소통성. 세 가지가 되면 출판을 한다. 시장성은 안 본다. 요즘은 초판을 1000부만 찍는 데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초판을 최소 60부만 찍을 때도 있었다. 주문형 출판(POD, Print on Demand)이 가능하기 때문에 팔릴 만큼만 찍는다. 적은 부수라도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 물론 가치만큼 가격을 매긴다.”
- 정말 돈 벌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는 돈 버는 데 관심 많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이익보다는 더 많은 책을 만드는 게 목표다. 베스트셀러 하나 만들어서 1억 원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니라 100만 원짜리 100개, 1000개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희곡선집 100종 짜리도 만들고 한국동화작가선집 100종 짜리도 만든다. 아즈텍 문명의 두루마리 책을 번역하고, 스와힐리어 구전 문학이나 베트남, 태국의 고전도 만든다. 보통 출판사들은 최소 3000부 정도 팔릴 책을 만들지만 우리는 200부 팔릴 것 같은 책도 만들고 100부 팔릴 것 같은 책도 만든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 한 사람이 1년에 네 권을 만든다고 치면 이미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대 이익도 높게 잡을 수밖에 없다. 인건비라도 뽑으려면 3000부는 팔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에 기대 이익이 높지 않다.”
- 싸게 만드니까 많이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이해해도 되나.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고 우리가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한국 출판 시장이 안 팔리는 책은 낼 수가 없는 구조다. 특히 인문학이나 학술도서의 경우 기껏 열심히 책을 써도 돈을 벌기는커녕 인세 대신에 몇 백 권씩 저자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꼭 내야 하는 좋은 책들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고민 끝에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시스템이다. 우리는 편집과 제작, 유통 모든 과정에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비용을 절감한다. 빡빡하게 방법을 찾아서 수입과 지출을 맞추면서 모든 이익을 새로운 타이틀 출간에 쏟아 붓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이익이 나면 그 이익을 다시 투자한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익이 나본 적이 없다. 번만큼 지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시장 상황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는데 그 예측만큼 지출을 하고 매출에 맞춰서 쓰기 때문에 이익이 거의 안 났다. 주식회사가 아니라 사장 개인 회사고 사장도 월급만 받고 배당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이런 구조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 롱테일 출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익 분기점을 넘는 책이 비율로 따지면 얼마나 되나.
“계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 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는 애초에 접근 방법이 다른 게, 앞으로 100년을 팔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이 많다. 당장 별로 안 팔려도 꾸준히 팔면 언젠가는 손익 분기점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올해 안 팔면 내년에 팔고 후년에 팔고 10년 뒤에도 팔 수 있다. 그게 전문서와 고전의 매력 아닌가. 베트남 고전 같은 것, 찾는 사람들이 적지만 꾸준히 있다. 수익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지만 사실 손해 보는 책도 거의 없다.”
- 발행 종수가 많으니 관리하는 것도 일이겠다.
“큰 일이다. 우리는 초기부터 모든 작업 파일을 PDF 파일로 만들었다. 재고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꺼내서 제작해서 배송하기도 한다. 다른 출판사들보다 배송에 시간이 좀더 걸리긴 하지만 독자들도 양해해 주는 것 같다.”
- 직원들 성과 평가는 어떻게 하나. 잘 팔리는 책 기준도 아닐 거고.
“종수로 판단한다. 많은 종을 내는 직원이 그만큼 일도 잘 한다고 본다. 아무 책이나 막 내는 거 아니냐고? 편집회의를 통과한 책만 출간이 되기 때문에 일단 출간이 되는 책은 어느 정도 기획력을 인정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편집회의에서 아웃되는 경우가 50~70%까지 된다.”
- 출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뭔가.
“‘돈이 될 것 같다’도 아니고 ‘손해 안 날 것 같다’도 아니고. 이를 테면 위험관리를 주제로 한 기획이 들어왔다고 치자. 전문 영역은 기존 체계나 범주가 있다. 우리에게 초급 이론서는 있는데 사례집이 없다, 그러면 고급 이론서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보완해서 사례집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한다. 저자에게 사례를 50%에서 70%까지 늘려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한다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이런 게 나왔으니 한 단계 올려서 전문서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편집자들도 전공자고, 계속 트레이닝을 시킨다. 그래서 일반 출판사보다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덜 까다롭고 빠르다.”
-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동기 부여를 하나.
“거창하게 문화운동을 한다, 뭐 이런 건 아니고. 우리는 보통 출판사라고 했을 때 드는 나이브하고 자유로운 느낌 보다는 좀 더 프로패셔널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엄격하게 령(令)이 살아있고, 다른 출판사에 다니다 온 경력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출판사는 파벌도 없고 일하는 것 말고 다른 건 할 시간도 없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고들 한다. 일단 윗대가리들부터 바빠서 파벌 같은 걸 만들 여유가 없다. 직위가 높을수록 일이 많고 힘들다.”
- 여하튼 독특한 형태의 사업모델이다. 외국에도 이런 출판사 모델이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한국 출판시장이 너무 비좁다고 하지만 우리는 출판사들 밀어내기식 관행과 한탕주의식 기획에 의존하는 문화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생존 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적어도 우리는 굶어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출처 : http://mediatopping.com/2014/10/13/communicationbooks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