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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미라주(탑-1)
게시물ID : readers_166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0
조회수 : 18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10/14 16:54:38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엄청나게 큰 탑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 한창 전쟁으로 땅을 넓히고 있을 무렵에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 이후에는 잘 쓰이지 않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 쓰던 감옥은 이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가 없다.

두시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가뒀다. 군인들은 늘 누군가를 잡아가기 위해 순찰을 도는듯 했고, 술에 취해 두시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거나, 이전 왕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만 나와도 잡아가기 일쑤였다.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로 매일같이 어디선가 사람들을 잡아왔지만, 그곳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탑 안에서 보이는 천장은 집 몇 채를 쌓아야 닿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철창이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그 안의 사람들은 초췌하게 말라 죽어가고 있는듯 하다. 초점이 없는 그들의 눈은 누가 새로 들어오던 관심도 없어 보인다. 간수들의 떠밀림에 일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매 층에 닿을 때 마다 사람이 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감옥 안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들이 오르는 계단은 끝이 없다.

“여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멀어 잘 보이지도 않는 간수의 말이 들린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들리는듯 하더니, 철문이 열리며 돌바닥을 긁는다. 간수들이 가축을 우리에 넣듯, 그들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미 자포자기해버린 내우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감옥 안으로 밀쳐진다.

철문을 닫는 소리는 귀에 거슬린다. 바깥 날씨는 춥지 않지만, 돌바닥과 시멘트벽에서 냉기가 올라온다. 이불이라던지 담요라던지, 덮을 수 있을 만한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우가 방을 둘러본다. 빽빽이 차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내우는 두시에 의해 가장 호되게 내쳐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절대 겪을 일이 없던 것들을 겪었고, 보았다. 그는 더 이상 그의 할아버지나 더 위의 사람들처럼 살 수 없었다. 쫒겨나다시피하며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후에 내우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몇 년을 안개 속에서 살면서 조용히 숨어지냈다.

그럼에도.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어디에 홀린 것처럼 눈에 초점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허공만 보다가 새벽녘이 되자 찬 바닥에 누워 골아 떨어진다. 내우는 잠을 이루기에는 너무 생각이 많다.

간수들이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간다. 밑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누가 찾아왔나? 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을 향해 조용히 움직인다. 가장 밑에 층에서 간수들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울려서 잘 들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깨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할 즈음, 소리가 갑자기 멈춘다. 두런두런 작은 말소리와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내우가 있는 곳은 너무 높아 제대로 된 이야기가 들리는 데에는 한참이 걸린다.

“아니 그보다 먼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얘기를 해주시면 더....”

보기에 꽤 높은 직위에 있는 것 같은 남자가 눈에 보인다. 이곳의 총책임자 정도는 되어보인다. 그는 눈치를 보며 쩔쩔 맨다. 옆에 있는 남자는 그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탑을 열심히 둘러본다.

누구지?

“저....저기.....”

“위에 있는 당신 방에서 이야기 하겠다 벌써 말하지 않았나요?”

남자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재촉에 짜증이 났는지 목소리가 날카롭다. 내우는 다시 그의 얼굴을 자세히 훑는다. 자기 볼일이 있어 왔다고 여기기에는 너무 어려 보인다. 그렇다고 하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말하는 것을 보면 큰 귀족가나 왕족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우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아무래도, 힘드실 것 같아서....”

이곳의 대표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어 하는 듯 하다.

“괜찮은데”

젊은 남자는 여전히 다른 남자의 말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내우가 있는 방으로 그의 눈이 향한다. “저들이 어제 들어온 사람들인가요?”

운도 없지. 남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사방에 부딪쳐 울린다. 이곳의 책임자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버둥거리고 있는 동안,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철창 안을 쳐다본다. 내우는 그의 생각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귀족같은 남자는 처음으로 동행인을 본다.

“앞장 서시죠.”

알 수 없는 남자는 진땀 흘리는 남자와 함께 위로 올라간다.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세어나오지 않는다.



파로는 단 한 번도 이 탑 안으로 들어 와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폐쇄되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도 있고. 역사 관련된 책 속 글자로야 몇 번 봤지만, 대충 읽고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 속에서 말하는 이 나라는 지금과는 너무 달랐다.

계단은 많고, 어두컴컴하다. 담배 피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닌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텁텁하다. 녹슨 쇠사슬은 쥐들의 다리로 이용되고 있는 듯 하다. 파로가 못 볼것을 본듯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다리 많은 무언가가 떼지어 그의 발밑을 지나간다. 맙소사. 동굴에 사는 도깨비도 이런 곳에는 발을 들일 것 같지 않다. 좁은 방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볼거리로 적절치 않다. 성의 군인들을 통솔하는 인간이야 감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느니 어쩐다느니 떠들겠지만, 그가 생각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라와 있는 건 아니니까. 암벽을 등반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간수사무실은 차라리 좀 낫다. 곰팡이야 좀 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애써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이곳을 나가고 없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한참을 허둥거리던 책임자가 지저분한 천 조각 더미를 들고 온다. 파로는 잠깐 멈칫하더니, 그것을 든다. 천 조각을 풀러 안의 것을 확인한다. 이내, 낡아빠진 천을 구석으로 던진다. 그의 눈은 손안에 든 브로치를 향한다.

“사람들이 뭐라 하던가요, 이것에 대해서.”

파로가 브로치를 이리저리 뒤집어본다.

“그 죽었을지 도망갔을지 모르는 왕자에 대해서 떠들더군요. 마치 그가 이곳에 오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입니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책임자가 소리 없이 입만 뻥긋거린다. 이야기를 듣는 파로가 씩 웃는다. 책임자는 영문을 알 수가 없다.

“혹시 말입니다. 그러니까....”

“왕자의 귀환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신경쓸 일도 아닙니다.”

물론 당신이 내일 당장 일에서 짤리고 사람들에게 몰매 맞을 일은 없겠지. 물론, 그가 신경쓸 바는 아니다. 그는 지금 당장 두시와 연관된 모든 인물의 안위와는 상관이 없다.

사실, 그가 알기 전에 나라를 뒤집어 놓을 만한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럼 이제, 가시는 겁니까?”

책임자가 말한다.

“그 전에 어젯밤 들어온 사람들의 명단을 좀 봤으면 하는데요.”

파로가 손을 내민다.

“아, 그것은 조만간 성으로 보내드릴.....”

“당장.”

파로는 그의 말을 끊어버린다. 책임자는 멍하니 있다가 허둥지둥 명단을 찾기 시작한다.

아니, 오늘밤에 만든 명단을 찾아야 된단 말이야?

파로의 손에는 바라던 것이 떨어진다. 파로는 그것을 천천히 훑기 시작한다. 책임자가 끊임없이 뭔가 말을 걸지만, 파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해버린다. 종이를 누비는 그의 눈은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움직인다.

파로의 표정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의 설명 없이는 뜻을 알 수가 없다.

“잡혀 들어온 사람들이 꽤 많군요.”

파로가 말한다. “물론, 제가 이야기 했던 대로 이곳이 움직이고 있다고 믿어도 되겠지요.”

“아, 그거야 당연히 잘 하고 있습니다.”

책임자가 말한다.

와우, 그것 참 놀랄 일이네.

“며칠 내로 제가 말하는 일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파로가 마침내 다시 명단을 넘겨준다.

“혹시 폐하와 상의 해보신 일입니까?”

책임자가 묻는다.

“폐하의 도장이 필요한 것이라면 오늘 밤에 보내드리죠.”

파로가 말한다. 책임자는 영 마음이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하지만 파로는 말을 가로채버린다. “아무래도 귀찮아질 것 같으니 이야기를 좀 바꿔볼까요? 책임자께서 제 말을 무시하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거.”

파로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다, 입을 연다.



귀족같은 남자가 다시 계단을 내려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가 이곳을 나가기 전까지, 간수들은 모두 긴장한 듯 뻣뻣이 서있고, 심지어 이 안의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어보인다. 마침내 그가 가고 나서야, 간수들의 얼굴이 펴진다. 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시 보초를 서고, 쇠창살 앞을 지킨다.

내우가 있는 곳을 지키는 간수는 아직 경험이 없어 보인다. 그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아 보인다. 가끔 책임자가 이곳을 둘러볼 때마다 들을 수 있는 꾸중은 모두 듣는 듯 하다. 그의 표정은 늘 어둡다.

그들을 가두는 사람은 분명 상종할만한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간수들은 결국엔 고용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 두시의 높은 세금을 견디다 못해 땅이나 가게 같은, 밑천을 팔아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돈을 벌 길은 많지 않다. 성에서 일하거나, 그 아래에 있는 기관에서 일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신하건데 이정도면 운이 좋은 거다.

한편, 감옥 안 사람들은 어디서 브로치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방이 텅 빈 벽 밖에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입을 열면 하는 얘기는 하나뿐이다. 사라진 왕자. 내우가 생각하건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나가지도 못한다. 벽돌 수를 세는 거나 창살의 녹을 관찰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이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 왕자가 이곳으로 돌아왔다. 브로치는 그에대한 증거이다. 왕자는 빠른 시일 내에 이곳으로 돌아와 왕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죄가 없는 우리들도 풀려나게 될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이야기 때문에 거의 세뇌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내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무엇이 이들을 헛된 이야기에 묶어두었는가?

“그런 얘기 계속 하시면 안 됩니다!”

간수가 창살을 길다란 막대기로 두드린다.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확연하다. 사람들은 한창 열을 올리다가도 입을 다문다. 돌바닥은 너무나 차갑다.

“저기,”

내우가 먼저 그를 부른다. “좀 묻는다고 가중처벌되거나 할 일은 없겠죠?”

“질문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간수가 대답한다.

“오늘 이곳을 찾았던 남자가 누구인지 묻는 것도 그런 질문에 해당됩니까?”

내우가 묻는다. 간수의 표정이 이상하다. 왜 그런 걸 궁금해 하지? 생각을 감추는데는 전혀 일가견이 없는 것 같다.

“성에서 온 사람입니다.”

간수가 대답한다. “폐하를 보좌하는 하인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내우는 이 말들을 당장에 이해하지 못한다. 하인이다. 귀족도 아닌 하인이다.

“보통 하인을 그렇게 대접하지는 않을텐데요.”

내우가 묻는다.

“그는 보통 하인이 아니니까요.”

간수가 말한다. “왕의 일 대부분을 대신하는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곳을 관리하던 일이라던가.”

내우가 다른 것을 묻기도 전에, 다른 간수가 다가온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간수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그 간수의 자리에 선다. 아까전의 간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내우는 다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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