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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하러 가서 만난 동물들 이야기
게시물ID : animal_1664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apercraft
추천 : 6
조회수 : 5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03 21:41:47
 
오늘 전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비가 폭포수 사촌마냥 떨어지는 고속도로에서
'어우 조상님들아 후손이 님들 벌초하러 가는 길에서 사고나서 죽으면 조상에 대한 매너가 생기겠습니까? 버프좀'이라는 기도와 함께했고,
현장에서는 '모자+비=무거운 모자' 아이템을 장착한 채
예초기:76 사이에서 한명의 루시우가 된 것 마냥 혼자서 수많은 예초기가 휩쓴 흔적을 긁고 치웠습니다.
그것도 '풀+비=물 먹은 무거운 풀'이라는 공식을 몸으로 체득했죠.
 
고로 사진따윈 없습니다. 제 폰은 다이나마이트 익스플로전 노트 7같은 방수기능 없어서 비맞으면 훅감.
 
 
 
 
1. 제 고향은 강이 네개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에서, 놀랍게도 1뽝2일이라는 메이쟈 프로그램의 전파를 탄 적이 있는 동네입니다.
그렇게 방문가치가 있어보이는 동네인 것 같진 않습니다만, 뭐 체험이다 뭐다 해놓은 거 봐선 뭐라도 있겠죠.
아무튼 그 동네 벌초하러 갈 때 딱 정해진 순서가 있습니다.
오전:공동섹터, 속칭 레이드
오후:개별섹터, 속칭 그룹팟
뭐 저는 대충 이렇게 부릅니다.
레이드라고 하는게 정말 레이드 삘 나는게,
대규모 인원이 묘가 무슨 아파트단지마냥 경사면따라 죽 늘어져 있는 걸 동시에 와르르 달라붙어서 하는 거 보면 그생각이 딱 남.
딱 벌초하는 섹터 퀄리티도 '웰컴 후손, 너희들이 정글 구경을 못할 것 같아 올해도 정성스레 준비했단다'라는 조상님의 환청이 들릴 정도니까요.
아무튼 일단 집결지에 모여서 배치를 정합니다. 이것도 한두 군데가 아님. 아파트 대단지 1차 2차 있듯이 묘도 왕창있음.
 
 
그러던 와중에 올해 못보던 놈이 돌아다닙니다. 흔히들 블랙탄이라고 부르는 고놈입니다만...
시골에 왔으니 시골스피릿으로 '어떤 양반이 꺼먼거를 갖다 벌초할 떼 데려온겨'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골에선 대충 이럽니다. 꺼믄거 허연거 누런거. 깜둥이 흰둥이 누렁이. 
어휘구사력 고급진 어르신은 흑구 백구 황구.
물론 전 못배워쳐먹었으니 꺼먼거.
 
 
고레벨 어르신들이 섹터를 정하는 사이, 저는 그놈을 물끄러미 봅니다. 근데 눈치를 까고 옵니다.
근데 이놈... 등빨이 있다 생각했는데 체구가 작은 거 봐선 1년도 안 된 놈입니다. 어려요. 느낌이.
딱 보니까 똘망똘망하게 생긴게 눈치가 겁나 빠릅니다. 뭐 이런 놈은 대처가 쉽죠.
 
 
보통 '개를 만질 때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손을 대라 뭘 해라 어쩌고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물려요.
제가 지금 개를 키우진 않습니다만, 시골에서 개도 있었고 외갓집에도 개가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함부로 개한테 손 디밀고 냄새맡으라고 하지 마세요. 물리니까.
개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하는 말입니다만, 모든 개는 각자 지 성깔과 습관이 있습니다. 개바개다 이거죠.
그걸 갖다 공용룰로 '오우, 손갖다 대고 냄새를 맡게 하면 인지가 어쩌고저쩌고....'하시는데, 그러다 물립니다.
개가 냄새로 대상을 인식하는건 맞습니다.
헌데 걔가 널 인식하고픈지 널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은지, 혹은 그냥 뎀비고 싶은지는 걔만 알아요.
그럼 어떻게 하냐구요?
지가 알아서 오거나, 혹은 오라고 손짓해서 와서 코를 들이박아서 킁킁거린다 싶으면, 그 때 손을 뻗는겁니다.
중요한건 쟤가 먼저 나한테 코박고 '넌 뭐에염? 님 뭐하는 사람이에요ㅇㅅㅇ?'라고 알아보려는 자세에요.
내가 손흔들면서 '일루와봐'라고 하면 '어 그래 오라니까 가긴 간다 ㅇㅅㅇ'라는 정도면 거의 클리어지만,
일단 발이나 다리부터 코를 박는지 확인하세요. 손은 그 뒤에 가서 뻗는거고 만지는건 그 다음임.
손뻗었는데 혓바닥으로 핥아되면 그냥 하이패스 찍힌겁니다.
 
 
뭐 아무든 간에, 저런 지론으로서 개가 온 다음에 발부터 냄새 좀 맡고, 손뻗으니까 손냄새 맡으면....
그리고 쓰담쓰담. 역시 가만히 있습니다. 처음 봤을때 어르신들 곁에 지맘대로 돌아다닐때부터 이럴줄은 알았어요.
암만 생각해봐도 어린 녀석인데, 이런 놈이 다 크면 정말 똘똘하게 됩니다.
너무 좋다고 헥헥거리고 들이대는건 똥멍청이가 될 가능성이 높고(....)
너무 으르렁대는건 시골에서 '나는 올해 여름의 건강 쏠루션이 될끄야!'라고 주장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명심하세요, 여긴 시골이에요. 신뢰받지 못하는 도그밋은 미트 프롬 도그가 되는 동네에요.
 
 
 
 
2. 벌초레이드 1번섹션은 동네 근처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단지죠.
그리고 매년 입구 들어갈때마다 고생을 합니다. 거 어르신들 매년 고생하실거 한번 딱 마음 먹으시고 입구 뚫으시지...
매년 미끄럽고 매년 조심하래 몇 년 전에 짬푸하다 무릎이 육신에서 짬푸당할뻔 했구만.
보통 예초기는 높으신 분들 용이고, 저같은 항렬상 밑찌끄레기급은 그냥 갈퀴노예입니다.
뜨거운 햇살아래에서 갈퀴질을 하다보면....
'아 시바 흑인들은 정말 착해 나같으면 목화솜으로 슬링이라도 만들어서 반란이라도 일으킬텐데'라는 생각이 들죠.
허나 올해는 비가 옵니다. 햇볕은 없네요.
문제라면 비가 쏟아지는 와중이라서 문제지. 예초기에 쓰러진 풀의 무게가 실시간으로 늘어나요.
하지만 이 팟에 예초기:76은 다섯이고 나혼자 갈퀴시우죠. 으아아.
 
 
아무튼 그렇게 갈퀴질을 하다가 제제를 받습니다. 아니 갈퀴노예 하나밖에 없으니 풀가동을 해야 이 풀을 치ㅇ.....
어, 어후. 뭐가 있네요. 허연 둥그런 게 네 개. 새알이네요. 둥지가 있네요.
살펴봐서 무슨 새의 알인지는 안 알아봤습니다. 당연히 새알만 보고 품종 알아보는 건 닭밖에 못해요.
거기에, 어쩌다 보니 새가 여기에 둥지를 틀고,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근접해서 망칠 순 없죠.
아무튼 예초기도 가급적 거리를 두고 갈퀴는 진작에 거리유지를 합니다.
 
 
한시간 가량 인간놈들이 설쳐댔지만, 둥지가 버려지진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조상님이라도 그래도 그 양반네들은 이미 훅 간 쪽이고 이쪽은 이제 펼쳐질 생명이잖아요. 포더 리빙.
어유 조상님 멘트가 그렇다는거죠 리빙피플이니 리빙멘트가 먹힌단 말이에요 어우 조상님 잘못해쓰요 그래요 만물은 다 죽죠
 
 
 
 
3. 레이드를 다 뛰면 딱 점심시간 됩니다. 아무리 많아도 이쪽도 머릿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레이드 뛰면 무조건 점심은 고기입니다.
당연하죠 이쪽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산비탈에서 대지에게 효자손을 들이밀었다구요.
산비탈 오바 아니냐구요? 농담같죠? 슈1바 농담같지? 묘지가 현충원스타일만 있을 것 같지? 조선시대 후기형 묘소도 평지에 깔아둘 것 같지?
아무튼 폭풍흡입합니다. 이쪽은 이제 오후작업도 남았으니까요. 그룹팟 뛰어야죠.
단백질력으로 보충하고 작업 들어가기 전에, 예초기 한대를 손봐야 합니다.
이쪽 팀 인력이 세 명이고 예초기는 두 개인데, 외가에서 대여온 일제제품이 초반엔 잘돌아가더니 맛이 갔거든요.
물론 전문가의 손길로. 요새 농업은 기계화농업이고, 엔지니어들이 각 면소재지에 있습니다.
이런 기계는 뉴비들은 시동도 못켜지만 전문가는 무조건 한큐에 틀어버리죠. 그러니까 전문가죠.
아무튼 전문가에게 가서 물어봅니다. 요즘은 벌초시즌이라 이런 손님들이 자주 오죠.
 
 
어... 그런데 쬐그만한 고냉이가 있네요. 물론 님들 랭귀지론 고양이나 고냥이겠죠.
하지만 여긴 시골입니다. 여기 시골에선 고냉이라고도 불러요. 시골에 왓으니 시골룰을 따르십쇼.
딱봐도 3~6개월, 제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입니다. 이 어린피플이 여기에 있다는 건... 뭐, 여기서 밥주니까 그렇겠져?
아니면 대충 눌러앉아서 살거나. 시골스타일이 그런 거죠.
아무튼 애가 눈치를 슬슬 봅니다. 보통 고냉이들은 사람한테 잘 안 오죠. 호기심강한 저런 꼬맹이들은 오기도 하구요.
슬슬 옵니다. 그리고 저는 손을 뻗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구요? 위로 가보세요. 제가 좀 전까지 뭐했져?
 
여러분은 지금 고기냄새가 솔솔 풍기는 손 안으로 고냉이가 지발로 앵겨드는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예아!
 
냄새 맡고 좋아라합니다. 손가락으로 쓱쓱 긁고 어미가 핥듯이 싹싹 만져줍니다. 왼손으론 말이죠.
오른손은 바빠요. 애가 머리를 부비부비하느라 못움직이거든요. 예아!
고냉이를 아시는 분이시라면 이게 얼마나 신명나는건지 아시리라고 봅니다.
처음 보는 애가 손에 대고 머리를 부비부비! 예아!
슬쩍 들어서 온몸을 긁어줍니다. 그동안에도 헤벌쭉 좋아합니다.
그래 좋겠지, 고기에 둘러쌓인 기분이 날테니까. 냄새만 나지만.
 
 
그렇게 노는 사이 테크프리스트 비슷한 포스를 지니신 분이 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 돌아가던 놈이 딱 한방에 시동 거니까 돌아갑니다.
오오 기계교 오오 농업기계교 테크프리스트.
'ㄲㄲㄲ 여기 들고 올 시간에 한군데는 돌았겠네염'이라고 쿨하게 말하고 떠나십니다.
뭐, 역시 '전문가가 만지면 뉴비가 쎄가 빠지게 해도 안 되는 거 한방에 돌린다'는 이론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만지고 싶으면 고깃집에서 고기먹고 냄새 풍기면서 다가가면 된다는 진리도 터득했죠.
누가 고기향 스프레이 좀 팔아봐 고양이 유인할때 써먹게
 
 
 
4. 시골에서는 가끔 상식이 안 먹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길가에 닭장이 있고, 닭장 밖에 닭들이 있는 상황같은 거 말이지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산길 올라가는 길 곁에 닭장이 있고, 닭은 그 밖에 있는데 도망도 안 가고 거기 근처에 느긋하게 서 있다 그겁니다.
 
 
...뭐지 저 닭놈들은. '족쇄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곧 나를 가두는 족쇄'라는 깨우침이라도 얻은건가.
산길 올라가면서 참 희한하다 생각... 어, 잠깐만요. 저 수탉 지나치게 큰데? 뭔 봉황사이즈만한 장닭이 하나 있대.
.....어, 그 뒤에 완전 새카만거 저거 오골계인데 대체 뭐여.
아무튼 시골은 여러분의 일반상식을 거부합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스스로를 속박한 닭을 지나치고 산길 방화도로를 올라가는데...
이번엔 칠면조들이 반겨줍니다. 그것도 길에 풀어놓은 채로
 
 
...제가 이 동네 1박 2일에 나오긴 했는데, 별 거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말했었나요?
어쩌면 제가 이 동네의 진면목을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칠면조를 산에다 풀어놨는데 애들이 왜 안도망가고 방화도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던거지??
 
 
 
 
5. 대여한 예초기를 반환하기 위해 외가로 갔습니다. 여기에는 백구가 있죠.
이름이 백구입니다. 물론 님들이 생각하는 그 백구기도 하죠.
....예, 사실 외할아버지가 개 이름 짓기 귀찮으셨나 봅니다.
 
 
참고로 이 친구는 백구 2호입니다. 1호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놈은 신명나게 질주하다 도로로.... 어, 그리고 중간과정 생략.
모든 시골개의 운명의 종착지인 동네 어르신의 뱃속에 안착했습니다. 뭐 그런거죠.
아무튼 백구 1호와 같은 길을 걷게 하진 않기 위해, 이녀석은 주간에는 목줄신세입니다.
야간에는 해방되지만 그땐 대문을 닫죠.
 
 
이놈은 근 10여년을 봐왔습니다만, 제 아버지를 진짜 미친듯이 좋아하고, 저에 대해선 그리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 사실 얘는 저한테 살짝 겁을 먹은겁니다. 위축된다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왜냐면... 어, 얘가 백구 2호기로 왔을 적이 강아지, 정말 강아지, 님들이 상상하는 그 손안에 들어오는 그 강아지 시절이었는데....
제가 나름 이뻐해준다고 낮에도 쓰다듬고 밤에 폐를 불태우러 나올때도 쓰다듬어줬었는데....
아무래도 꼬꼬마 멍멍이 눈에는 야밤에 입에서 불빛과 연기를 내며 자신을 쓰다듬는 양반이 마냥 반갑진 않았나봅니다.
아니 난 그냥 네가 밤중에 낯선집에 와서 쓸쓸하고 외로워할까봐 쓰다듬어준거란 말이야.
 
 
그래도 나이 먹으니 좀 나아진거에요. 몇 년 전까진 제가 딱 등장하면 일단 바닥에 내려깔고 오줌부터 지림(.....)
좀 쓰다듬으려고 보면 바닥이 흥건해진게 눈에 보였어요.
아니 귀여워해주는거야 너 조지려는거 아니라고 야이 개1새끼야
절대로 뭐 때리거나 폭력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리얼리.
저는 개 패듯 팬다는 속담이 별로 와닿지 않는 사람입니다. 개 때려본 적이 없음.
 
 
아, 아버지를 미친듯이 좋아한다고 말했죠? 그건 왜 그렇냐구요?
그 분을 동물이 잘 따르기도 합니다만.....
저놈에게 산책을 시켜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거든요
외갓집에 올 때 자고 와야 할 일 있으면 일어나서 데리고 한바퀴 돌아보고 오십니다.
낮에는 목줄, 밤에는 대문잠금, 거기에 80넘으신 무뚝뚝계열 시골영감님이 개 산책을 시킬 리 없으니....
그놈에게 산책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죠. 그래서 미칠 듯이 좋아함.
여러분들이 개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산책이 좋은 솔루션입니다.
 
 
 
아무튼 간에, 시골에는 자연이 가득합니다. 동물도 많죠.
비 그치니 후두둑 튀어나오는 빌어먹을 모기도 가득하죠
 
p.s 그나저나 진짜 개보고 개1새끼라고 하는 것도 욕필터링에 걸리네요. 이새끼 저새끼하는 대상이 개라서 개1새끼라고 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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