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안에서
조수석의 창문을 조금 열면 그가 들어온다.
이름이 멋지다, 가을바람.
안녕, 나는 가을바람이라고 해.
그 흔한 인사도 한 적이 없는
무뚝뚝한 계절의 아이콘이
저돌적으로
혹은 당연히
'내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그런 모습으로 들어온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한 줌 혹은 두 줌의 시월의 뭍 바람이
살랑살랑 내게도 찾아온다.
영광이다.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이름 멋진 네가 반갑다 그 뿐이다.
너는 내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혹은 나는 네게 무엇을 들으려 했는가.
니가 부는 그것이 내 피부에 닿기 전
내 가슴에 먼저 저미었다면
너무 피천득 스러운가.
사실 나는 울 뻔 했다.
네 탓은 아니다.
가톨릭 식으로 말하자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내 입과 내 무능과 내 자책 혹은
그로 말미암은 총체적 우울이 너를 우연치 않게 마주한 것이다.
너는 예상대로 10월에 내게 왔다.
올 줄 알았고, 오는구나 했다.
그 슬픈 바람 끝에 노을과 함께 내 1톤 트럭에 네가 왔을 때,
오는 줄도 알았지만,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틀지 말 것을.
다만 그것이 후회스럽다.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