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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미라주(탑-2)
게시물ID : readers_16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1
조회수 : 20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17 15:23:42

 며칠이 지나도,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늘어놓던 이야기는 이미 모두 공중으로 흩어져버린 후이다. 새삼스럽지도 않게 보이는 쥐나 벌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줄 만큼 대단한 것이 못된다. 예고도 없이 끌려왔다. 돌아갈 기약은 없고, 두고 온것은 너무나도 많다. 오지도 않는 왕자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건 그냥 고문이다. 각자 생각 속으로 파고들수록, 이곳은 못 견디게 답답하다. 매일 나오는 뻣뻣한 빵 한 덩어리와 물 한컵은 사람들의 실의를 떨쳐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간수가 감방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의 출입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누군가 공격이라도 할까 무서워하던 간수도,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멈칫함이 없다. 사람들은 시체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그들이 들고 있던 횃불은 모두 타버리고, 훤하던 길은 어둠속에 잠겼다. 길을 잃었다.

간수가 내우에게 빵과 컵을 쥐어준다. 내우는 감각 없는 손으로 빵을 집는다. 무엇을 기대했던가. 조금씩 뜯어 입안으로 밀어넣는다. 목을 축이기 위해 컵을 든다.

얼굴을 찡그리며 컵에서 입을 땐다. 이상한 냄새. 안의 액체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내우는 간수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물 좀 다시 가져다 줄 수 있나요?”

내우가 말한다.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습니다. 방침입니다.”

간수가 대답한다. 감옥 안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그에게 쏠린다.

내우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고작 물 한 컵입니다.”

내우가 말한다.

“안됩니다.”

“이유라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루만에 생긴 이 이상한 방침에 대해서.”

“무슨 일인데 그래?”

나이든 여자가 그의 컵을 건내받는다. 내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무것도 아니란듯 입에 대고 그것을 기울인다.

“당장 컵을 내려놓으세요.”

간수가 소리지른다. 불에 손가락을 넣은 것이 아닌 이상, 이보다 빠르게 반응할수는 없을것같다. 그는 허리에 있는 막대기를 뽑기도 전에, 여자는 깜짝 놀라 컵을 떨어뜨린다. 안의 내용물은 모두 쏟아져 돌바닥을 적신다.

“간수들끼리의 이야기를 해 달라 말해도, 그러시진 못하겠죠.”

내우가 간수를 쳐다본다.

“위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음식이나 마실 것을 나눠먹지 못하게 하라고.”

간수가 대답한다. “혹시 모를 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정말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입니까?”

내우가 묻는다. 회의적인 눈길이 간수의 얼굴을 지난다.

“저는 이곳 밖에서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수가 말한다. 내우는 입을 다문다.

왜 그가 표적이 된걸까? 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알아챈걸까?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하라는 명령이라도 받은걸까? 여지껏 조용하다 대체 왜 지금?

같은 방 안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다닌다. 내우는 컵을 주워 창살 너머 간수에게 전해준다.

“마시기는 해야 할것 아닙니까.”

내우가 말한다. 간수는 컵을 들고 사라져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다. 마침내 그것을 돌려받은 내우는 망설임 없이 컵을 비운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게 허락되지 않는다. 안개가 감싼 마을에서 보이는 햇볕은 너무나도 약해 탑의 두꺼운 벽을 넘지 못한다. 간수들의 횃불은 온기를 전하기에는 너무 작다. 해초 뭉치인지 담요인지 모를 것들은 한 사람당 하나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늙은이에게 그것을 양보한 내우의 손발은 차갑다 못해 파랗게 질려간다. 그렇지만 내우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딱히 노력하는 것이 없다. 그의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내우는 창살과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눈은 건너편의 사람들을 향하는 법이 없다. 그와 같은 곳의 사람들도 쳐다보지 못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은 채 보낸다. 하지만 도무지 잠은 들지 않는다. 내우의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그를 괴롭힌다. 머리가 아프다.

귀도 틀어막을 수 있으면 좀 좋으련만.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는 간수들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언제쯤 오실지 기약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걱정 할 거 없네, 곧 오실 테니.”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아시면 분명 구하러 오실거에요.”

“어쩌면 지금쯤 준비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지.”

수백번을 오간 이야기지만, 단 한 번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평소보다 무거워 그의 머릿속을 짓누른다.

언제까지 견뎌야 하지?

왕자가 돌아오는 것은 예수가 재림 하는 것만큼 희박하다. 만일 그가 온다 해도,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일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죽는게 무서워 권력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도망간 사람이 왜 굳이 사람들을 도와 생을 단축하려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이렇게 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걸까. 동화속 왕자와 다름없는 인물을 논하느니 차라리 탈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곳을 나가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우는 이 곳에 들어온 이후로 입을 잘 열지 않았다. 마을에서도 입 닫고 있었던 건 마찬가지지만. 오래 전에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그의 이야기도 얼핏 들은바 있지만, 한 번도 그것에 반응한 적이 없다. 성안의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어가도, 그는 귀를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두시의 등장은 그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나라 외곽의 마차 있고, 정원 딸린 집에서 살다 쫒겨나 막연하게 걸어 주변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던 때, 정착해야할 곳을 찾지 못해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허름한 여관에 방을 빌리면서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왕자가 도망갔다더라. 그때에는 두시가 성을 차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 대단한 이야기가 떠돌지는 않았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두시에 대해 긍정적이였다. 작은 위협에 꽁지 빠져라 줄행랑치는 왕자. 왕족이 아님에도 그 자리에 선 두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생각은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왕이라면, 귀족들보다 우리를 더 신경써주지 않을까.

내우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대는 무너져 내렸다.

기다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우는 작은 집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왕자 이야기에는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처음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내우는 이것들을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셔대던 술과 성분을 알수 없는 약처럼, 두시로부터 잠시 이들을 해방시켜줄 무언가라 생각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시점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왕자는 신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내우는 그런 파도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야 예전부터 많았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만한 인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굳이 환상을 꺨 필요도 없고, 십자가에 매달려 타죽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는 고립된 사람이었다. 돈이 부족한건 아니었지만, 몇 년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듯한 집에서 살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아봤지만 내우에게는 아무 뜻도 가지지 못했다

그에게 피해가 닿지 않는 한, 다른 일에 신경 쓰려 하지 않았다. 더 생각하는 것은 애써 피해왔다. 그는 대답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최선의 길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내우는 감옥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팔다리는 죽어가는 나무 같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 몸살이라 여겼지만, 조금도 나아짐이 없다. 아니, 이제는 누가 봐도 감기 같지 않다. 하루가 갈수록 그의 기력이 쇠해간다. 처음에는 걱정스럽게 여겼던 사람들도 이제는 멀리 떨어져 구경만 한다. 그의 손이 닿는 곳에는 신발조차 떨어져 있지 않다. 혹시 옮는 것 아닐까. 내우는 사람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전염성이 있을지 모르는 환자가 나오는 건 행복한 소식이 못된다. 환자의 병이 심해보이면 더더욱. 사람들에게는 가엾게도, 지금 내우는 정신을 붙잡는 것조차 힘들다.

물론 정말 전염성이 강한 병이었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벌써 남아나지 않았겠지만, 내우는 누군가를 안심시켜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내우에게는 하루가 이상하리만큼 빨리 흘러 가는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그가 정신을 잃어서인지, 그냥 기분이 그런건지 알 수가 없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왕자께서 빨리 돌아오길 바래야 할텐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환상 속에 있는 건지, 정말 사람들이 내뱉은 말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간수가 안으로 들어오고, 사람들에게 빵과 마실 것을 전해준다. 내우의 손에도 쥐어주지만, 내우는 그것을 구석에 밀쳐놓는다. 컵이 넘어지는 소리에, 이미 나가버린 간수가 뒤를 돌아본다.

“뭐라도 먹어야죠.”

간수가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내우를 피하지 않는다. 이곳 안의 사람들과 대조될 정도로. 그가 뭐라고 더 말을 하긴 하지만, 외국어를 들은듯 내우가 알아듣는 데에는 한참이 걸린다. 그의 말을 대충 짐작한 내우가 손을 뻗지만, 그의 손은 돌바닥만을 더듬는다. 그의 손에는 이상하게 감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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