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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에 대한
게시물ID : phil_167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2
조회수 : 6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0/12 10:40:35
어떤 중대한 실행이나 그런 실행에 대한 결과를 앞두고 긴장하는 사람에게 하기도 하는
"실패해도 괜찮아" 같은 말은 허울만 좋을 뿐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긴장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 실행 기회를 잡기 위해 상당한 인내를 하였을 것이며, 에너지도 쏟았을 것이다.
그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운, 또는 일생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여기서 실패하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는 대단한 손실인 것이다.
그런 부담감으로 인해 긴장하게 하는 사람에게 속도 모르고 '실패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다.
물론, 위로하는 사람이 그 긴장한 사람에게 만약 실패하면 당장 다시할 기회를 제공해 줄 역량과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런 맥락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면 돼"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에 실패를 한 사람에게 하기도 하는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말 역시 취지는 이해가 간다면 사실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상투적인 위로이다. 
다시 시작하면 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실패로 좌절한 사람은 실패로 입은 당장의 자신의 손실이 뼈 아프고, 
다시 한다면 얼마나 더 큰 희생이 있어야 할지, 그리고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두려운 것이다.


진정 도움이 되는 위로를 하려면 
첫째로 그 불행은 당신의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 실패는 당신히 특별히 못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운이 없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도 충분히 가능했었다고 말해주면 위로가 될듯 하다. 
또는 재난 등의 불행을 겪었다면, 당신이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누구에게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말해주면 위로가 될듯 하다. 
이런 식의 위로는 자신이 입은 불행으로 손실을 넘어 자기신념에 대한 확신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막아준다.  
불행이 힘들게 하는 것은 불행으로 인한 손실 그 자체도 있겠지만 흔들리고 불안해 지는 자기신념의 확신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손실은 어쩔수 없지만 위로를 통해 자신에 대한 확신은 보호해 줄 수 있다. 

진정 도움이 되는 위로를 하려면 
둘째로 그 불행으로 인한 당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배려해 줄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육체적인 상처이라면 눈에 바로 보이기 때문에 고통으로 인한 피해자의 상태나 행동에서의 부족함이나 어려움을 쉽게 이해하고 감안하고 배려해 줄수 있지만
정신적인 상처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고통으로 인한 피해자의 상태나 행동에서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행동에서의 부족함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정신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을 2중으로 힘들게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정신적인 상처를 볼수 있는 사람, 그래서 그 고통으로 인한 자신의 어려움이나 부족함을 이해하고 감안하고 배려해 줄수있는 사람,
나아가 그런것을 고려해 주지 않는 주변환경으로 부터 받고 있는 간접적인 고통까지도 교감해 줄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동변상련자 서로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를 가장 잘 위로 해 줄수 있다면 이 이유일 것이다. 

진정 도움이 되는 위로를 하려면 
셋째로 당신의 불행으로 입은 손실은 그렇게 최악은 아님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불행을 겪게 되면, 그 불행에 생각이 매몰되어 실제 이상으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상으로 손실을 받아들이고, 실제 이상으로 미래를 나쁘게 예측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비관은 안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게 하며 의지를 흔들리게 한다.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시킨다면 그런 불필요한 부분의 마음고생은 조금이나마 덜어줄수 있을듯 하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진정한 위로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그 고통은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다만 이런 위로는 
불행을 입은자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그 불행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할 것이며,
불행을 입은자가 보일 부족한 행동에 배려할 의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상황을 한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는 현실감각까지 있어야 하는 어려운 것이다.
이것 저것 모르지만 그래도 진정 위로는 해주고 싶다면,
도움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고 말해주는 정도가 적당할듯 하다. 
 

그리고 이런 위로를 뜻밖에도 치과에서 받는다.
치통은 고통스럽고 걱정되는 것이다.
그것을 치료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두렵고 긴장 된다.
얼마나 아플까? 이렇게 아픈게 정상일까? 치료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치료하는 사람은 본격적인 시술, 수술이 있기전에 항상 환자에게
"어느 어느 시점에 아플 것이다. 아프면 손들면 된다"라고 말해주며 안심시킨다. 
이를 통해 치료하는 사람은 환자에게
당신에게 닥쳐온(올) 얼마간의 고통은 예상할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이러다가 잘못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확실성으로부터의 불안감은 가질 필요가 없으며)
또한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래서 당신의 무기력하고 참을성 없어 보일수도 있는 부족한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배려까지 할 것이다 (손을 들면 조치를 취하겠다) 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무심하고 짧지만 그야말로 완벽한 위로와 위안이 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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