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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스톨이> 퀸카, 내 여자 만들기 <1~4>
게시물ID : humorbest_1673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월향眞
추천 : 52
조회수 : 2157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6/05 21:42:49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6/04 04:18:33

 ***

 그녀는 우리 과 퀸카였다.

 그래,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퀸카가 내게 왔다.

 지금부터 모든 남자가 꿈꾸는 퀸카와의 만남을 얘기해주려 한다.

 그런데, 정말 퀸카와 사귀면 행복할까?




 < 퀸카, 내 여자 만들기 >   


  # 1  퀸카 확인!


“소개팅?”


 밥 먹고,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아는 동생이 부른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다짜고짜 소개팅에 나가라고 안달이다. 

 그나저나 소개팅이라... 

 서로 소개로 만나 일단 얼굴을 확인한 뒤, 

 다음 날 주선자를 만나, 귀싸대기를 갈긴다는 그것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거절하겠어. 

 물론 주선자 귀싸대기 갈기는 건 찬성이지만.



“난 소개팅 싫다.”



“형 왜요? 남들은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내가 소개팅이 싫은 이유? 이쁜 여자가 나올 확률은 희박하지. 

 이쁜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소개팅 따위를 나간단 말이냐. 

 설사, 이쁜 여자가 나온다고 쳐. 

 그 이쁜 여자가 날 만나 줄 확률은? 

 젠장. 로또 2번 연속으로 1등으로 당첨되기보다 더 어렵잖아. 

 혹시나 해서 나가서 역시나 이런 결과가 뻔한데, 

 내가 뭐하러 소개팅에 나간담.



“난 소개팅 체질이 아니야. 그런 가식적인 만남이 싫어.”



“돈이 없으시구나. 죄송해요.”



“너 이 자식. 천잰데?”



“후배한테 밥 얻어먹는 선배한테,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헉. 그... 그건, 후배들이 귀찮게 밥 사달라고 조르면, 

 너가 나 사주면 사줄게... 이런 식으로 대처를 해야, 

 후배가 순순히 물러나서 그런 거라고! 

 물론 얻어먹기는 했지만 ㅡㅡ;



“어쨌든, 흠.. 흠. 소개팅은 좀 그렇다. 

 올해 우리 과 1학년 중에 이쁜 애들이 많이 들어 왔다던데, 

 그 아이들부터 만나야 순서가 아닌가 싶구나.”



“아! 형 봤어요? 정지연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애가 가장 예쁘대요. 

 저도 얼핏 봤는데, 정말 연예인 뺨치게 예쁘던데요? 

 다른 과에서는 우리 문창과(문예창작과)에 

 요정 한 명 들어왔다고 난리가 아니래요.”



“아직 난 못 봤다. 

 근데 이제 막 제대한 예비군한테 넘어 올 여자가 있을까?”



 이 자식, 잠깐 머뭇거린다. 빈말이라도, 있다고 해주면 입이 발이 되냐?



“군대 다시 갈 생각은 없으시죠?”



 저 주둥이한테 많은 걸 기대한 내가 죽일 놈이다. 



“오냐, 오늘 너 죽이고 여자는 못 보지만 

 경찰 구경이나 실컷 해 보자. 이왕이면 여경으로.”



 어디 찍을만한 물건이 없나 확인하는 사이,

 이 놈 저 멀리까지 도망간다. 

 쫓아가고 싶지만, 주위에 많은 여성들이 있어 그러질 못하겠다. 

 실컷 소개팅 해 줄려고 온 후배한테 야박하게 굴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무덤을 팠다고 본다. 




 어쨌든 오늘 들은 정보는 중요하다. 

 정지연. 문창과 1학년 요정. 

 오르지 못 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지만, 

 일단 궁금했다. 그리고 난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인지라 확인하러 갔다.



“야! 정지연이 어딨어? 얼굴 좀 보자!”



 1학년 강의실 문을 박차고 정지연을 불렀다. 

 물론 상상 속에서만큼은. 

 1학년 강의실 앞까지는 갔지만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겠다. 

 자판기 커피 하나 든 채로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했다. 




 괜히 사람 나오면, 커피 마시는 척 하면서 눈을 피해보지만, 

 20분 동안 그러고 있으니 1학년 중에 몇 명이 날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이것들이 하늘같이 높은 선배님인데. 

 아, 역시 날 알아주던 곳은 군대뿐인가. 




 어쨌든 더 이상 있기는 눈치가 보여서 못하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시던 커피도 다 마셔서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문득 걸어오는 3명의 여자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일단 저 3명의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갈 때까지 난 가만히 있기로 했다. 




 10m... 가운데 여자를 제외하고 양 옆으로 들러리라는 것을 알았다. 

 5m...  가운데 여자를 제외하고 양 옆으로 못 생기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3m...  가운데 여자 때문에 양 옆의 여자들이 

        기를 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m...  가운데 여자는 인간 세상이 궁금해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3명의 여자가 내 앞을 스치고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가운데 여자의 날개는 어디다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3명의 여자는 우리 과 1학년 강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설마... 

 잽싸게 난 아까 만난 동생을 보러 우리 강의실로 갔다.



“야! 이세진이 어딨어! 얼굴 좀 보자!”



 2학년 강의실 문을 박차고 이세진을 불렀다. 

 물론 지금은 실제상황이다. 

 세진이는, 내가 아까 자기가 장난쳐 내가 흥분한 줄 알고, 겁부터 먹는다. 



“형. 죄송해요. 장난 안 칠게요. 한 번만 봐주면 개과천선해서 

 앞으로 깍듯이 모시기로 혈서라도 쓸게요.”



 이 자식. 내가 인상 좀 쓰니, 아예 기는 구나. 으하하하.



“알았다. 궁금한 게 있으니깐, 살짝 나의 곁으로 다가오려무나.”



“정말 안 때릴 거에요?”



“빨리 안 오면, 군대에서 배운 행복한 고문 27연속기를 

 한꺼번에 다 보여주는 수가 있어.”



“헉! 알았어요.”



 세진이는 살그머니 다가온다. 

 그런 세진이의 어깨를 툭 치며, 안심시킨 후 

 모가지를 살짝 비틀어줬다.



“이.... 이건.....”



“그러니깐 빨리 오지.”



“으,,, 형은 얼굴이... 흉기라, 보고 있어도 떨리는데, 

 이젠... 손까지 사용하시면, 으....”



 세상 살기 험난하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는 이 철 없는 어린 양의 입은 

 아직 나의 쓴 맛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는 처지라 그냥 모가지 비틀고, 

 콧구멍에 볼펜만 박아두고 끝냈다. 



“아프냐? 그래도 참고 들어. 

 나 방금 전에 햇빛을 받으면 갈색이 도는 긴 생머리칼에 

 눈은 크고, 쌍꺼풀이 진하게 들고, 몸매는 착하고, 

 청바지가 매력적인 어떤 천사님을 봤는데...”



 세진이는 얼굴을 매만지다가(특히 코부분을)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이제야 정지연을 보셨군요.”



“그 천사님이 정지연?”



“맞을거에요. 키도 크죠?”



“응. 날개를 다리 밑에 숨겼는지 키도 크더라.”



“헉! 뭐에요? 그 말투는?”



“소개팅에 그런 천사님이 나온다면 백번천번 나가 돈을 쓸 수 있을텐데.”



“꿈 깨세요. 그런 일은 전혀 없으니깐.”



“꿈이라도 꾸면 참 좋겠다.”



 그 날 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자꾸만 지연이의 얼굴이 내 머릿 속에서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르지 못 할 나무를 쳐다 본 죄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건 또 처음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많은 여자를 만났다고 자부했지만

 (물론 만나는 건만 많았다) 

 이렇게 꿈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시 꿈이었던가. 

 이것저것 알아본 정보에는 지연이라는 천사에게 

 멋진 왕자님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난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남자친구 있는 여자는 건들지 않는다는 

 여자좌우명이 있기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1학기 기말 고사가 다가 올 무렵, 또 다른 소문을 들었다. 

 지연이가 지금 혼자라는 아주 기쁜 소식을. 

 하지만 난 몰랐다. 

 그건 기쁜 소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 될 지연이가 나에게 들려줄 아주 슬픈 소식이라는 것을... 






 < 퀸카, 내 여자 만들기 >   


 
 애인이 있는 여자. 

 가시가 있는 장미에 유리관을 씌운 것처럼 

 다가설 수 없는 존재일지도...

 설사, 그 유리관이 깨졌다고 해도,

 쉽게 덤벼들 수 있을까?




  # 2  퀸카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




 1학기 학교 생활 동안, 

 그녀는 유리관이 있든 없든 나와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다.

“난 참 바보같이 살았군요.”

 라는 가사가 내 귓가에 울린다.

 
 
 그러다가 문득, 나와 같이 복학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현민아! 우리 과 소모임 하나 더 만들자!”



 “무슨 재주가 있어서?”



 가뜩이나, 1학년 때 펑펑 놀았다는 죄로, 

 부족한 학점을 열나게 채우고 있는 나에게 

 더운 여름에 부채질은 못해줄망정 일거리를 늘려주려는 

 다정스런 형의 말이 그 땐 참 못마땅스러웠다. 


  
 “너 문창과에 들어온 이유가 작사가 하고 싶어서 라며. 

 그러니깐 우리 작사 소모임 하나 만들자.”



“일단 기말 고사 끝나고.”
 


 그 땐 대충 얼버무렸지만, 다시 생각해보니깐,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모임을 하나 만들고, 그녀에게 소모임에 오라고 권유하면서

 말을 건네 본다는 그런 스토리가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승낙하면 이건 절호의 찬스고, 

 승낙하지 않는다면, 계속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었다.





 난 다음 날 학교에서 그 선배를 만나자마자 얘기했다.



 “소모임 콜!”



 “무슨 소모임?”



 “형이 몇 주 전에 나한테 소모임 만들자고 했잖아.”



 “아! 그거? 다시 생각해보니깐 귀찮아졌다. 솔직히 내년이면 졸업이고,

  이제 기말 고사 다 끝나고, 2학기 달랑 하나 남았는데 무슨 소모임이냐?”



 헉!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말씀? 

 사람이 말이야. 한번 말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선배가 저러니 후배가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삽니다.



“당신 그런 사람이었어?”



“시험이 다가오니깐 정신을 교수님한테 맡겼나, 이제 막 나가지?”



“아니, 그게 아니고, 난 선배님과 함께 소모임을 만든다면 정말 영광일 것 같은데

 하늘같은 선배님이 갑자기 말을 바꾸시니깐 그러지요.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물론, 하늘같은 선배님이지. 난 태양이고.



 “아무튼, 소모임 귀찮아졌으니깐 너 혼자 해라.”



 참자참어. 이 분은 나의 선배님이잖아. 

 입 안에서 마구 요동을 치는 혀를 간신히 잠재웠다.



 “선배님,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세요. 

 졸업하기 전에 좋은 일 하나 하면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귀여운 후배들이 우리 소모임에 온다고 야단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선배님의 선행으로 앞으로 작사가를 꿈꾸는 많은 우리 과 학생들이

 선배님의 이 업적을 길이길이 새겨나갈 수 있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소모임이 장차 발전하면, 우리가 만들었다 하고 

 자랑스럽게 후배들에게 말하면서 우러름을 받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너 무슨 꿍꿍이가 있냐?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존대말까지 하면서.”



“설마요, 난 단지 졸업하기 전에 우리 이름을 남기고 싶을 뿐이랍니다.”



“좋아. 일단 계획 세워 봐.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게. 

 대신 너가 회장해라. 난 귀찮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좋아. 일단, 소모임을 나 혼자 만들었다고 하면 눈치가 보이는데  

 선배랑 같이 만들면 내 이름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겠지?

 내 목적은 소모임보다는 다른 곳에 있지만.... 흐흐...



 사랑을 위해서 라는 목적이 생기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소모임 이름이 생기고, 

 2학년 중에 작사에 관심이 많던 후배들 몇 명이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이젠 1학년만이 남았는데...




 그래도 시험기간이 되자, 공부는 해야했기에, 

 소모임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리고 기말 고사가 끝나고 바로 방학이 시작돼서 

 이 계획이 무너지는 듯 싶었으나,

 내 사랑을 신이 돕고 있는지, 좋은 기회는 또 다시 찾아왔다.




 새벽 2시.

 남들은 자고 있을 시각.

 하지만, 난 어떻게 하면 그녀와 만남을 가질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야! 너 안 자면 이리로 잽싸게 튀어 와라.”



 작사소모임을 같이 만들기로 했던 선배였다. 

 선배면 다야? 새벽 2시에 사람을 불러내게.



“저 현민이형 동생인데요, 지금 형이 자고 있어서 제가 받았어요.”



“아, 그래요? 어쩌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됐네.

 소모임에 1학년 여자 후배들을 모집할 수 있는 기횐데...”



“현민이 전화 바꿨습니다.”



“너 남동생 없는 거 다 알고 있어.”



“난 형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거기까지. 너랑 말싸움 하려는 내가 돌았지. 

 어쨌든, 너 이리로 와라. 지금 술마시는 이 기회에 

 1학년 여학생들을 우리 소모임에 오게 꼬셔봐.”



“역시 내 도움이 필요한건가....”



“그래, 난 말발이 달려서 못하겠다.”



“근데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술이야?”



“아, 지금 우이동 엠티촌이야. 너 시나리오 소모임 알지? 

 지금 그 소모임 엠티에 나도 불러서 왔거든.

 근데 여기 소모임 애들 좀 우리 소모임으로 데리고 갈 수 있나 해서 전화했다.”



 여기서 잠깐!!!!!!!!!

 시나리오 소모임에는 그녀가 있잖아!



“허어,, 헉,, 허어,, 헉... 형 그래서 지금 1학년 누구누구 와 있는 줄 알아?”


“음... 말자 숙자 영자 ... 아! 지연이도 있네?”


“뚜우뚜우...”



 이렇게 흥분되는 날이 또 있었던가.

 드디어 지연이와의 첫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우이동 엠티촌과의 거리가 집까지 멀지 않았던 탓에

 난 바로 택시를 잡고 우이동 엠티촌이요를 외치고

 부푼 가슴을 안고, 달리는 택시에 내 몸을 맡겼다.




 < 퀸카, 내 여자 만들기 >   


  
 3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 때 일을 후회한다.

 늦은 밤, 울리던 그 전화벨 소리를 무시했었더라면...

 아니, 설사 전화를 받았다고 한들

 돈이 없어서 갈 수도 없는 그 곳에 가려고,

 주무시고 계시는 부모님을 깨우지 않았더라면...

 미쳤냐고, 지금 어딜 나가냐고 가지말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었더라면...

 내게 있어 그녀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이었을텐데...

 그녀도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었을텐데...



 # 3  퀸카와의 첫 만남.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택시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신호는 다 지켜가고 있었다.

 택시비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난 얼른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저... 차도 없는데, 신호 좀 무시해주면 안될까요?”



“손님이 운전할래요?”


 택시기사는 뒷자리에 앉아있는 날 백미러로 힐끔 보더니,

 내가 나이가 어려 보이는 건지, 만만해 보이는 건지 

 툭 말을 내뱉었다.



“아니요. 근데 왜 기분 나쁘게 얘기해요? 좋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 

 제가 운전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돈 내거든요? 아저씨가 돈 낼래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괜히 마가 낄까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손님같은 사람이 있어서, 밤에 사고가 나면, 크게 나는 거에요.”



 으,,, 내가 아무 말 못한다고 저 기사는 나한테 설교할 작정인가 보다.

 그냥 확 말발로 밀어부칠까보다. 



“알았으니깐, 속도나 내세요. 급하게 만나러 가는 사람이 있으니깐요.”



 택시기사는 더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듯 했으나,

 내가 엠피쓰리를 꺼내서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깐 더 이상 뭐라고는 안 했다.

 어쨌든, 그렇게 그녀가 있는 우이동 엠티촌을 향해

 난 설레는 맘으로 달리고 있었다.
 
 가는 도중 선배하고 계속 문자를 주고 받아서,

 어디 민박인지 알아내고,

 드디어 난 그녀가 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휴우우우,,, 휴우우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흠... 역시 그녀가 있는 곳은 공기부터가 틀리구나.

 민박집에 가까이 가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고,

 민박집 앞에 도착하니깐,

 우리 과 사람들이 민박집 앞에 있는 대청마루같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녀만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현민이 왔냐? 왜 이렇게 늦었어? 집도 가까우면서. 기다렸잖아.”



 선배가 날 아는 체를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그녀도 고개를 돌려, 날 보자 서로 눈이 딱 마주쳤다.

 괜히 난 머쓱해져서 선배한테 시선을 돌렸다.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거북이를 타고 와서...”



“뭐? 아! 맞다. 지연아, 현민이는 어때?”


 내가 오자마자, 선배는 대뜸 지연이한테 질문을 한다.

 근데 이건 무슨 소리야?



“좋아요.”



 지연이는 수줍게 웃으며 얘기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뭐야? 오자마자. 뭐가 좋은데?”



“응? 아, 지금 진실게임 중이었거든. 넌 알 필요 없어. 일단 왔으니깐 한 잔 해야지.”



 선배는 종이컵 가득 맥주를 따르고, 내게 권한다.

 술을 잘 못하지만, 지연이가 보는 앞이라 뺄 수도 없어서 원샷을 했다.

 내가 와서, 놀고 있던 분위기가 잠깐 흐렸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를 다시 되찾고, 모두들 제멋대로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지연이가 좋다고 얘기한 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제대로 놀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녀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말이 쉽게 나오지 못했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해갈 무렵, 선배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내가 너 오기 전에, 우리 작사 소모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올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한 사람 빼고는 다 거부하더라.” 
  


  헉. 이럼 안되는데...



“그 한 사람이 누군데?”



“지연이. 너도 알지? 우리 과에서 유명한 아이니깐.”



 물론 알고 있고 말고요...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맹자님 감사합니다.



“응. 알아. 그럼 지연이는 우리가 만든 작사 소모임에 들어 온대?”



“그건 아니고, 지연이만 제외하고는 전부 다 확실히 거부하고, 

 지연이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더라.”



“그럼 지연이도 확실한 건 아니네?”



“그렇지. 내가 여기까지 했으니깐 나머지는 너가 알아서 해.”



“그럼 지연이를 우리 소모임에 들어오게 하면 되지?”



“그래, 지연이만 잘 데려오면, 우리 소모임 이미지가 팍팍 상승된다. 알았지?”



“알았어! 나만 믿어!”



 이게 웬 횡제냐. 너무 일이 잘 풀리니깐 겁부터 나네 이거.

 또 선배가 든든히 뒤에서 받쳐주니깐 이건 절호의 찬스다. 물론 선배한테 미안하지만,

 어쨌든, 나만 잘 되자고 하는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하지만 난 여전히 지연이와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한 채로

 어색하게 있었다.

 그러나 밤은 길고, 지연이는 내 옆에 있다.

 섣불리 덤벼들기 보다는 차근히 기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나저나 지연이는 정말이지 웬만한 연예인 빰치게 생겼다.

 얼굴도 작지, 남자들이 가장 선호한다던 긴 생머리.

 눈도 크지, 사르르 녹일 듯한 목소리에...

 나 참, 정말 내가 오를 수 있는 나무인지 원...



“야, 이젠 술은 그만 마시고 잘 사람은 들어가서 자고

 안 잘 사람은 노래방이나 가자.”



 시나리오 소모임 회장인 상후형이 분위기를 정리하면서,

 다음 진행코스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잘하면 변수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

 지연이가 미녀는 잠꾸러기야 이러면서 민박집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떡해.



 헉! 이럴 수가!

 사람들 몇 명이 민박집으로 들어가고, 지연이도 그 뒤에 따라 들어간다.
 
 망했다! 이러면 친해질 기회가 없잖아.

 오늘이 지나면, 이제 방학이란 말이야!



“상후형, 나도 피곤하다. 들어가서 자야겠어.”



 시나리오 소모임 회장인 상후형도, 나와 같은 학년이고, 같은 복학생이기 때문에

 서로 친한 사이다. 난 어쩔 수 없이 지연이를 따라 민박집 안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상후형에게 못 간다는 의사를 전했다.



“무슨 소리야? 너 노래방 좋아하잖아. 놀려고 왔는데 자러가는 게 어딨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술 좀 마시니깐 몸이 안 따라주네.”



 지연이가 자러 들어간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야.

 사람들은 다 자고, 나와 지연이와 단 둘이......



“그래? 할 수 없지. 들어가서 자라.”



“응. 미안.”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일단 지연이와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

 난 상후형과 이야기를 마치고, 민박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지연이가 민박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와 다시 눈이 딱 마주쳤다.

 난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넌 왜 다시 나와?”



 지연이와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지만,

 일단 선배고 서로 얼굴은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냥 편안히 반말로 얘기했다.

 어차피 친해질 거면 존대말 이런 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나온 말은 나도 놀라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온 말이다.



“아, 날씨가 추워서, 옷 좀 가지고 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지연이 손에는 얇은 잠바가 하나 들려있다.



“선배님은 주무실려고요?”



 헉! 어떻게 대답을 해야지. 지연이 따라 가야하는데...



 “응? 그렬려고 했는데...”



“야! 지연아, 사람들 간다. 빨리 와. 현민이는 자러 간다니깐 냅두고 와.”



 멀리서 상후형이 외치고 있다. 오 마이 갓!


“네, 갈게요. 선배님 안녕히 주무세요.”



 지연이는 꾸벅 내게 인사를 하고 저만치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다.

 이게 아니잖아!!!!!!
 
 나 이젠 어떻게 해야 한담.

 내 무덤 내가 팠잖아.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했어.

 하느님 제발, 살려주세요!!!




 < 퀸카, 내 여자 만들기 >   


  내세울 건 

 그댈 바라보면서 조금씩 키워간

 사랑밖에 없었어요.



 해주고 싶은 건

 하늘과 땅 가득한 모든 것들을

 그대에게 드리고 싶었어요.



 간직하고 싶은 건

 그대가 날 생각해 주는 마음.

 함께했던 추억.

 그리고 그대와 처음으로 해보는 것들...


 
 하지만 

 바라지 않았던 눈물 속에 

 왜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죠?




 # 4  퀸카와의 듀엣.




 그렇게 깨어있는 자는 오직 나뿐인 이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는 것뿐이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좋다고 와서 남의 소모임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고...




 그 때였다.

“딩동! 문자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오!!! 이건 필시...

 난 치우고 있던 소주병을 던지고 핸드폰을 찾았다.




 < 너, 지연이 꼬신다고 하더니 자빠져 자냐? 지금 잠이 오냐? >




 기성선배였다.

 아, 지금까지 말을 못했는데 같이 소모임을 만들자고 했던 이 선배 이름은 기성이다.

 내가 먼저 문자하면 눈치 보여서 못하고 있었는데

 먼저 해주시다니 이렇게 눈물날 때가



 < 막상 자려고 누우니깐 잠이 안 오네. 지금 노래방이지? 갈까? >



 < 그걸 말이라고 하냐? 빨리 안 튀어와? 여기 XX노래방이야. 빨리 오도록! >



 후훗,

 이미 아까 전에 출발했사옵니다.

 어쨌든 노래방에 들어가지 전에,

 거울을 통해 얼굴부터 확인하고.

 윽! 맞다! 모자를 쓰고 왔구나.  




 어쨌든 난 노래방 안에 들어갔다.

 7번방. 

 문을 조심스레 열자, 또 다시 한 번 나에게 시선 집중.

 하지만, 기성선배가 내가 온다고 말을 했는지

 내가 왜 왔는지 사람들이 의아해 하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주위를 힐끔 보니깐,

 오! 지연이 옆이 비어있다!

 하느님! 일이 너무 잘 풀리잖아요.

 뻔뻔하게 냉큼 가서 앉았다.



“안 오신다면서요?”

 지연이가 시끄러운 와중에 나에게 말을 건냈다.

 뭐, 더 시끄러운 상황이라고 해도, 난 지연이 말이면 다 들을 수 있지만...



“막상 잘려고 누우니깐 잠이 안 오네.”

 최대한 미소를 방긋 지으며 지연이를 보았다.

 언제 봐도 사람 혼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다.




“선곡하세요.”

 지연이가 책을 준다. 

 상당히 자연스러운 대화고 행동이지만 왜 이렇게 부자연스럽지?

 그렇게 난 받아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야 나와.”

 뭐야 또 이건. 

 헉! 지연이 옆자리가 비어 있었던 건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또 뭐야. 나오라는 건.



“일어서기 귀찮은데, 그냥 아무 데나 앉아.”

 일단, 나랑 동기고 남자니깐 함부로 비킬 수 없다.



“자리 없잖아. 너가 늦게 왔으니깐 탬버린이나 치면서 서 있어.”

 정말 자리가 없다. 

 하지만 나도 비킬 수 없다




“안돼. 너보다는 내가 지연이 옆이 더 잘 어울려.”

 내 말에 당황했던지 내 동기녀석 갑자기 우물쭈물한다.



“왜 틀린 말 했어? 지연이도 내가 옆에 앉는 걸 더 좋아 할 거야.”



“물어본다?”



“물어봐.”

 이번엔 지연이가 당황한다.

 뭘 당황하고 그래. 그냥 나라고 하면 되지.



“지연아! 누가 서 있는 게 나을 것 같애? 나야? 현민이야?”

 자식. 돌려 얘기하기는...

 지연이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만.



“그럼, 두 분 다 서 계세요.”



“암! 우리 둘 다 서 있어야...”

 엥? 이게 아니잖아!

 지연아... 너 우리 사이에.
 
 오늘 처음 만나 자그마치 다섯마디나 주고 받은 사이잖아. 

 하지만, 지연이가 나오라고 해도 못 나오지.



“들었지? 우리 둘 다 서 있으래. 그냥 너 혼자 희생해라.”

 내 동기녀석. 

 그래도 천성은 착한지 내 말에 탬버린 들고 문 앞에 가서 선다.

 그래, 나중에 학교에서 음료수 한 잔 뽑으면 한 모금 줄게.




 그렇게 지연이 옆자리를 사수하고, 

 하지만 지연이 옆에서 노래는 차마 못 부르겠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옆에 있는 지연이가 말을 건네 줄 것이다

 라는 내 생각을 믿었다.




 역시.

 지연이가 내가 한동안 가만히 있으니, 먼저 말을 건낸다.



“선배? 선배는 노래 안 해요?”

 좋아! 걸려들었어. 



“나 노래 못 해.”

 최대한 쑥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또 지연이가 말을 건낸다는 생각에.

 역시 지연이가 책을 집더니 나에게 준다.




“그러지 말고, 한 곡 해요. 선배 노래 듣고 싶다.”

 애교 섞인 그 말을 앉아서 들었으니 망정이지 서 있었으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럼 같이 한 곡 부르자.”



“좋아요. 무슨 노래 할까요?”



“이거.”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가락은 연풍연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연이가 웃으며 리모콘으로 번호를 눌렀다.

 아! 첫만남에 노래방에서 듀엣까지 부르고.

 이 정도면 거의 잘 되고 있는 분위기 아닌가?

 아니면, 지연이가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있는 건가?




 어쨌든, 그 전에 예약한 노래들이 끝나고

 우리가 예약한 연풍연가가 시작됐다.

 지연이가 마이크를 챙겨서 내게 준다. 

 노래가 시작된다.



“날 사랑할 수 있나요 그대에게 부족한 나인데

 내겐 사랑밖에 드릴께 없는 걸요. 이런 날 사랑하나요...”

 지연이가 먼저 부른다. 

 후훗, 그 사랑 내가 받겠소이다.




“이젠 그런 말 않기로 해. 지금 맘이면 나는 충분해.

 우리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커다란 사랑하는 맘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 둘이 듀엣을 부르는 것을 보고 난리다.

 남자들은 부럽다는 듯이 날 보고 있고,

 기성선배는 넌 역시 지연이 잘 꼬실거라 믿었어 하는 눈으로 날 보고 있고

 여자들은 저 자식 지연이한테 찝적댄다. 재수없어. 이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듀엣은 끝까지 노래를 다 불렀다.

 대게 1절까지 하면 알아서 끄는데,

 우리 둘 다 1절에서 노래를 끄지 않으니 

 다른 사람은 끌 엄두도 못 냈다.

 사실, 내가 리모콘을 갖고 있었다. 




“선배! 노래 잘 하시면서, 왜 안 했어요?”

 사실, 내가 노래방이라면 사죽을 못 써서, 

 고등학교 때에는 노래방에 죽치고 살았다.

 돈 없었을 때에는 오락실에 딸려있는 노래방이라도 가야했다.




“그냥 노래 가사 보느라.”

 오 내가 한 말이지만 멋지다.




“아! 작사소모임 만든다고 하셨죠?”



“응. 노래라는 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참 좋은 것 같더라.

 하지만, 내가 작곡을 못하니, 작사라도 하고 싶어.”



“와, 멋지다.”

 엥? 그걸로 끝? 

 나도 작사하고 싶어요. 이런 말이 안 나오냐?

 이렇게 멋진 말을 했는데도?




“멋지지? 좋아, 너도 앞으로 우리 작사소모임 회원이다. 

 노래를 잘 아는 것 같다. 내가 아무나 안 받는데, 

 너가 좀 아니깐 특별히 받는 거야.” 
 

 헉! 제발... 들어와 주세요.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지연이는 아무 말 없이 웃는다.

 역시 힘든 건가?




 어쨌든, 그 날 노래방 일은 잊지 못할 것이다.

 지연이와 조금은 친분을 쌓게 된 중요한 날이면서,

 이 일로 나와 지연이가 잦은 만남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 일이니깐.




 그리고 그 이후로 알게 된 건 또 있다.

 천사같은 외모라서, 천사같은 성격인 줄로만 알았는데

 노래방에서 본 지연이와는 사뭇 다른

 지연이의 본래의 성격을...





 ***
 제목 바꾸고,
 다시 한번 글 올립니다.
 베스트 못 가면 의욕상실되서 중단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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