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 1. 존재론과 인식론 이데아는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다. 플라톤은 진정한 인식은 이데아를 봄으로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데아의 세계를 밝혀주는 빛은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다.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바로 이성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데아의 세계를 밝혀주는 빛은 이성이다. 철인은 이성이라는 빛을 통해 저 세계와 이 세계를 잇는다. 그러나 존재론으로 따지자면 이데아, 더 명확하게는세계를 밝혀주는 '빛'은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다. 이 빛은 이성이 아니다. 존재다. 이데아의 본질, 이데아 그 자체를 드러내는 빛은 이성이 아니며, 존재에 있다. 빛의 존재는 이데아를 이데아로 만들어주며, 이데아를 밝혀주기도 하며, 이데아를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숨기기도 한다. 혹은 이데아를 현실 속에 가능케 만든다. 사람은 빛을 본다.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빛에 비추어진 사물을 본다. 빛이 곧 사물을 형성하며, 인간은 형성된 사물을 인식하며, 그것을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존재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존재는 존재하고 있다. 즉 인식되기 이전에 존재는 존재함으로 존재하며, 인식이 되게 한다. 존재가 먼저냐 인식이 먼저냐 할 때, 우리는 당당하게 존재가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인식은 존재로부터 시작되며, 존재의 방법도 곧 존재 그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2. 신적 존재의 현현 그림자 비유는 빛을 통해서, 등 뒤에 있는 사물을 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나무가 이데아인가. 빛의 존재가 이데아인가? 태양이 이데아인가? 나무가 이데아인가? 보편적 개념 혹은 선험적 지식과 세계가 이데아인가? 겨우 빛은 이성이나 사물을 깨닫는 방법론에 치부되어야 하는가? 빛 그 자체가 이데아라고 한다면, 빛의 존재자체가 이데아라고 한다면, 신의 존재 그 자체가 이데아라고 한다면, 빛은 존재의 유출, 아니 유출 그 이상의 신적 존재의 현현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신의 현현이라 함은 거기에도 있는 신의 존재가 여기에도 있음을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이성 안으로밖에 신을 논할 수밖에 없는 그 시점속에서. 신의 현현을 통하여 이성 그 이상의 신을 말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신의 '편재' 수준이 아니라 일정 누군가에게 '현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해석이 되고, 또 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이해될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플라톤 이데아는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이해해본다. 필자의 소견에 플라톤은 '인식론', '이성', '깨달음'을 강조했다. 존재론은 명분상 상위영역에 있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하위영역에 있지 않은가 생각을 가진다. *빛 그 자체는 등 뒤에 나무도 비추고, 자기 자신도 비춘다. 마찬가지로 공기와 바람 등은 나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숨김으로 드러낸다. 신적인 존재는 자신을 숨김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의 한계로는 신을 인식하기에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