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집은 서울이지만, 어른들만 아는 그런 사정 때문에 나는 7살 후반부터 9살 초반까지 약 2년여를 인천에서 보냈다.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1학기까지는 인천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2학년 2학기가 되어서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됐다. 전학가던 날 아침. 나는 왠지 모를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오빠는 나보다 두 살이 많기에 이미 전학 경험이 한번 있던터라 전학을 가면 친구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인기가 많아진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학 첫날 조회시간. 선생님과 함께 앞문으로 들어가 선생님께서 “인천에서 온 전학생이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자 인사해야지?” 하시면 “안녕? 난 한송이라고해. 앞으로 잘부탁해.” 라고 인사할 작정이었다. 그럼 선생님께서 조회를 마치고 나가시자마자 친구들이 우루루 내자리로 몰려와 “어디서 전학왔어?” “인천?” “사이다의 고장?” “이름이 한송이야?” “우와. 이름도 예쁘다. 친하게 지내자.” 라고 말하겠지. 라는 상상을 일주일 전부터 하며, 입고갈 옷도 챙겨놓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전학가는 날 아침. 난 너무나 떨렸다. 그 전날 미리 엄마와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하고온터라 전학하는 날임에도 난 혼자 등교해야했다. 게다가 난 당시 9살이었기에 이젠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 슬기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실제로 부풀진 않았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전날 챙겨놓은 남자들의 로망 청바지에 흰티셔츠를 챙겨입고가방에도 교과서를 챙겨넣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는 20분가량 걸리는 거리. 그런데 시계를 보니 이게 웬걸 너무 준비를 철저히 하다보니 지금 뛰어나가도 지각하기에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난 거의 울상으로 다급하게 가방을 메고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전학하는 새학교 첫등교날이니 태워다주겠다고 하셨다. 난 너무 신나서 아빠 차에 올라탔고, 아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아 학교앞까지 데려다주셨다. 다행히 등교시간 10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난 여유롭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교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교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건물앞에서는 친구들이 실내화로 갈아신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실내화주머니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급하게 나온탓이었다. 하지만... 그래, 난 전학생이니까 하루쯤은 괜찮을거야. 대신 신발이 깨끗하...미아럼;ㅈ댦닝림눙리.... 그제야 내려다본 나의 두발에는 작고 귀여운 운동화대신 아빠가 동네에서 신고다니시는 270mm의 포탄같은 검정 슬리퍼가 신겨져있었다. 때마침 우리학교를 방문한 안상수가 내가 신고있는 슬리퍼를 집어들고는 이게 포탄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쳤다면 덜 쪽팔리는 건데. 아깝다... 난 너무나 창피했다. 모두가 내 발을 쳐다보고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해야할지 난감했다. 집에 갔다오고싶었지만, 집에가면 지각할게 뻔했고, 그당시 내겐 삐삐도 휴대폰도 가끔 들고다니던 무선전화기도 없었다. 이걸 어쩌나. 5분여의 고민 끝에 내린결론은 그래. 원래 발이 270mm인것 처럼 행동하자. 였고 나는 발이 큰 사람처럼 보폭을 크게해서 성큼성큼걸어 교무실로 향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께서는 내 신발에는 별 관심을 갖지않으셨고, 내 작전이 먹혔다고 생각한 나는 더욱 당당한 발걸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인천에서 전학온 한송이 학생이에요. 다들 잘해주고 친하게 지내도록하세요.” “안녕, 얘들아. 난 한송이라고해. 잘부탁해.” 난 키가 매우 작았지만, 빈자리가 맨 끝에밖에 없었기에 맨 뒤에 가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전달사항을 말씀하시고는 잠깐 쉬는 시간을 주셨고, 내 예상대로 친구들이 우루루 내 곁에 몰려와 말을 걸었다. “인천이 황해도에 있지?” “인천은 사투리 안써?” “이름이 왜 한송이야?” “동생은 두송이야?” 예상 밖의 질문들. 난 아무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구들의 놀림 “우와아아아. 얘봐. 아빠 신발 신고왔나봐.” “어? 뭐야. 너 신발없어? 푸하하항가하가하가하가” “신발이 저게 뭐야. 엄청 크다. 전학온애 신발 없대요!!” 나는 당황했다. 선생님은 아무말씀도 없으셨었는데... 아무리 발을 뒤로해서 뒷꿈치를 슬리퍼 끝에 맞춰보아도 친구들의 눈은 정확했다. 내 신발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나 빨리 알아차릴 줄이야. 난 얼굴이 빨개졌고, 아무말 없이 고개를 푹숙이고 시간표를 꺼내 자연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첫시간은 산수시간이었고, 뒤늦게 깨달은 것은 인천에 있던 학교와 내가 새로 전학온 학교는 다른 시간표를 쓴다는 것... 그땐 왜 그 쉬운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난 당연히 전국의 모든학교가 똑같은 시간표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덕분에 겹치는 수업이 하나도 없었던 터라 난 교과서 없이 4교시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시무룩해진 난 아빠 슬리퍼를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옆자리 지연이라는 여자아이가 뛰어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아까 내가 너한테 말안해준게 있는데, 우리반에 소영이 있지? 걔랑 놀지마. 걔 엄청 못된애야. 그것만 명심해! 그럼 안녕!” 하며 내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교문밖을 빠져나갔다. 난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도 친구가 생길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첫날이니까. 앞으로 친구들 많이 많이 사귀어야지!! 하며 기쁜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있는데 누군가 또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쉬는시간마다 와서 유독 말을 걸던 소영이라는 아이였다. 지연이라는 친구가 놀지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소영이. 난 날 불러주는 소리에 기뻤지만, 지연이는 내 전학 첫짝꿍이기도했고, 지연이와 더 친해질것같은 예감 때문에 웃으면서 대답해주진 못했다. “왜?” “방금 지연이가 뭐라고하고갔지? 걔 진짜 못됐어. 너 지연이랑 놀지마. 걔가 얼마나 못된앤데. 진짜야. 낼부턴 지연이랑 말하지마!! 그럼 안녕!!” 이라고 말하며 또 다시 내곁을 떠나간 소영이라는 아이. 난 지연이가 놀지말라는 소영이랑은 놀 수 없었다. 지연이가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소영이가 놀지 말라는 지연이랑 놀 수 없었다. 소영이가 쉬는 시간마다와서 지연이와 놀지못하게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