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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크게 법칙,우연,목적으로 설명이 된다
게시물ID : phil_167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0
조회수 : 756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11/30 10:08:33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내일 무너질지 모르니 피하라고 했고, 당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말대로 피했는데 실제로 집이 무너졌다고 치자.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은 세가지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 하다. 그 첫째는 지금까지 언급한, '법칙' 또는 ‘자연법칙’이다. 이것은 주어진 예에서 당신에게 경고한 그 어떤 사람이 건축 토목 전문가인 경우이다. 즉, 전문가가 지금까지 확립된 자연법칙들을 기반하여 집을 측정하고 검사하여 분석해 본 결과, 집이 24시간 안에 무너질 것으로 예측된 경우이다. 우리는 자연법칙으로부터 수많은 것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하는 등의 대부분 자연현상은 자연법칙으로 설명이 되고 예측이 되며 통제가 된다. 집이 무너지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칙만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세세한 단계까지 설명하는 것을 불가능 하다. 우주는 법칙만으로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주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그 두번째는 ‘우연’이다. 이것은 앞의 예에서 당신에게 경고한 그 어떤 사람이 방금 지진 안전 교육을 받아 경각된 초등학생인 경우다. 즉, 책임질 능력도 책임질 생각도 없는 사람이 그냥 어쩌다 해본 말이 우연히도 맞아 떨어진 경우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삼라만상의 현상에는 애초에 예측이 불가능한 무작위성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가 한결같이 규칙적인 속도로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은 움직임과 관련된 법칙에 따른 필연성 현상이겠지만 지구가 마침 태양의 세번째 행성이라는 것은 우연성 현상에 의한 것일 것이다. 특히나 양자역학 단계의 극 미시세계라면 그 상태부터 아예 확률적으로 규정된다. ‘참’이 확률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극 미시세계에서는 애초에 정확한 값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틀렸다 해도 여기에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는다. 이런 극 미시세계을 구성조합으로 하는 거시세계의 현상에서는 어느 정도의 필연적인 오차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 오차로부터의 자연원리 현상은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법칙으로도 정립이 불가능 하다. 따라서 이런 것은 둘째, ‘우연’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법칙과는 달리 오차 범위 내에서의 우연적인 결과는, 설명은 할 수 있을지언정 확실한 예측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비나 통제가 불가능 하다.

그럼 ‘법칙’과 ‘우연’만으로 모든 삼라만상의 현상들이 설명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두 가지로부터 우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가지 만으로는 거의 하나도 설명할 수 없는 분야의 현상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마음현상이나 공동체 조직에서의 사회현상들이다. 이런 현상들은 앞서 언급한 법칙과 우연이라는 두 도구만으로는 조금도 설명할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법칙과 우연만으로는 왜 필자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리하여 도입하여야 하는, 그리고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는 마지막 도구이자 방법은 ‘목적’, 또는 ‘의도’이다. 이것은 앞의 예에서 당신에게 집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그 어떤 사람이 당신을 협박하는 조직폭력배인 경우다. 그러니까, 이 경우 집이 무너진 것은 그 폭력배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법칙도 아니며 우연도 아니다. 법칙과 우연만으로는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고유 규칙, 즉 목적성은 설명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법칙과 우연으로 모든 자연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이것만으로는 단 하나의 심리현상이나 사회 현상도 재대로 설명할 수 없다. 법칙화된 마음현상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 현상에 따른 결과는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그러면서도 마음 현상에 따른 결과는 분명 무작위는 아니기 때문에 우연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 현상이나 사회 현상은 ‘목적’이라는, 법칙이나 우연과는 별개의 새로운 것을 도입, 또는 가정해야지만이 설명이 가능하다.

설사 백 번 양보해서 어떤 마음 법칙이 밝혀졌다고 쳐보자.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이 기존의 자연법칙들과 그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즉, 생명체의 현상, 또는 마음현상에서의 특성은 자연현상에서의 특성과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며, 나아가 둘 간에는 어떤 공통된 접합점이 있을 여지조차도 없어 보인다. 목적체의 의도에 의해 일어나는 목적성 현상은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형태의 필연성 현상이다. 예컨대, 바람에 의해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은 자연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인류에 의해 나무가 잘려나가는 현상은 자연법칙으로 도무지 설명될 수 없어 보인다. 대신에 이런 결과는 인간이 나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로 쉽게 설명이 된다.

법칙과 목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사람과 같은 목적체가 가지는 성질인 “하(되)려는 성질”과, 물과 같은 비목적체가 가지는 성질인 “하(되)는 성질”을 명시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만, 그 둘을 속성을 우리는 이미 직관적으로 나마 어느정도는 구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직관적으로 우리는 비목적체의 성질인 “하는 성질”의 원인은 “이유”를 통해 설명하려 하는 반면, 목적체의 성질인 “하려는 성질”의 원인은 “목적”을 통해서도 설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비목적체인 물이 100도가 되면 끓는 현상을 우리는 이유를 물어야 하는 주제로 여긴다. 그리고 그 이유의 끝은 아마도 자연원리와 만나서 자연 법칙으로 설명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은 들어설 곳이 없고 규정할 수도 없다. 반면, 목적체인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의 경우, 우리는 그 현상을 목적을 물어야 하는 주제로도 여긴다. 그렇다면 비목적체에게서의 이유의 끝이 그러했듯이, 목적체에게서의 목적의 끝도 결국에는 자연원리와 만나게 될까?

다시 돌아와 내용에 사족을 좀 붙이자면, 처음의 예에서 당신에게 집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그 어떤 사람이 점쟁이 였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서도 실제로 무너진 자신의 집을 법칙, 우연, 의도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경우에서라면, 신 같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다른 초월적인 절대자를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주가, 우리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 작동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위 세가지 가능성 도구, 즉 “법칙”, “우연”, “의도”부터 충분히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알고 보니 점쟁이의 계획된 덫에 의한 사기(의도)였을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은 한번쯤 맞을 수도 있는 순전히 우연에 의한 착각 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위 세가지 만으로는 현상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경우, 그렇다면 이제는 신 같은 새로운 것을 도입해도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럴 경우 그 현상은 일단은 대개 미지(未知), 즉 아직은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음 상태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해도 안되면, 그럼 새로운 도구를 도입할 여지는 아예 없는가? 아니다. 있다. 그 현상이 나아가 위 세가지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위 세가지 만으로는 설명될 가능성조차도 명백히 없는 수준이라면 어떻게 될까?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위 세가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가정하겠다면 적어도 이정도 단계까지는 와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서 조차도 그 도입하고자 하는 그 다른 무언가는 최소한의 검증이 가능한 것이거나, 적어도 그럴 여지라도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알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알 수 없는 것을 도입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측면에서 본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버리면 우리는 사실상 특별히 알아낸 것이 없으면서도 마치 현상을 설명을 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을 ‘신이 한 것이다’ 로 단정지어 버린다면, 상황은 ‘그것은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불가지론적 관점이 아니라 ‘그것은 밝혀낼 생각이 없다’로 수렴된다. 중세 서양의 과학사를 살펴보면 이것은 나아가 ‘그것은 안 밝히려 했으면 좋겠다’, 또는 심지어 ‘그것은 밝히려 해서는 안된다’로 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관성: 바뀜이나 변함이 없는 성질
무작위성: 일관된 비일관성 
우연: 무작위성을 가진 대상에게 존재하게 되는 유사 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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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11:48:41추천 0
우연이 가능할까? 인식의 한계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우연이라고 부르는건 아닐까?
댓글 6개 ▲
2018-11-30 12:55:53추천 0
일단 보여지는 것에서부터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18-11-30 13:10:19추천 0
단지 인식되는 범위내에서 그것을 가정하고 설명을 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한게 아닐까요? 아니면 딜타이가 한 것처럼 진리와 상관없는 주관적인 세계관을 세우시는 건가요?
2018-11-30 13:46:16추천 0
시행횟수만 충분하다면 무작위성 현상에서도  우연성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죠.
다만, (인식의 한계 밖에 있는 어떤 것의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실제로는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현상을 우연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걱정하시는 듯 하네요.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으며 충분히 인식하고 조심해야겠습니다만, 그 반대(즉, 우연적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 역시 조심해야겠네요.
사변적인 결론이 아닌 보여지는 것으로부터 진실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주관성으로 해석했는지는 모르겠네요.
2018-11-30 16:00:14추천 0
2가지 부분에 있어서 지적을 해야할 것 같네요.

1.동일한 현상이 과연 세상에서 반복될 수 있는가?의 문제 입니다. 당장 동전 던지기를 생각해보더라도 시행 될때 공기의 흐름, 지구와 달 위치 변화에 따른 중력변화, 관찰자 존재 유무(양자역학에서 변수로 작용합니다.), 관찰자의 생각(유심론적 혹은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변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타 다양한 변수들이 모두 동일한 상태가 반복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다"는 것과 같이 과연 동일한 시행을 반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2.보여지는 것이 과연 진실인지 역시 의문이 듭니다. 전통적인 비유로는 이것이 있습니다. 해질녘 어두워질 무렵에 멀리있는 나무에 밧줄이 묶여 있었습니다. 사람은 밧줄의 형상을 보고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서 뱀이라고 인식을 합니다.
인간은 현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 등을 통해서 현상을 해석해서 받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식되는 현상의 요소사이에 어떤 논리를 적용해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대상의 형식은 변할 것입니다.
칸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오성에 통해서 인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경험, 개인의 생각, 주관적인 논리로 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가능하지 않다면 보이는 것은 곧 진실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8-11-30 16:21:42추천 0
1번은 우연의 작용을 스스로가 너무나 잘 설명한 내용인듯 하고,
2번은 '과학적인 관찰결과' 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한 '보여지는' 이라는 말을 너무 한정적으로 이해한듯 하네요. 저의 불찰입니다. 1-1-1에 "과학"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2018-11-30 16:52:37추천 0
1. 그러한 변수들이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작성자님이 전에 올리신 답변에 잘나와있습니다.
"(인식의 한계 밖에 있는 어떤 것의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실제로는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현상을 우연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걱정하시는 듯 하네요.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으며 충분히 인식하고 조심해야겠습니다만..."
제가 제시한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우연의 작용이라는 것은 이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과 모순되게 느껴지네요.

게다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가정한다면 반복시행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과학의 과정으로 제시한 첫번째 단계인 반복이 불가능해져서 과학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제가 말한 보여진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인식구조를 말한 것입니다. 과학도 인간이 수행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인식구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학의 방법론은 과학철학 쪽의 문제겠네요. 현대 인식론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2018-11-30 18:17:05추천 1
인간이 법칙이라고 하고 우연이라던지 불규칙 하다던지 라면서 해석하고 있는데
원래의 자연은 본연에 모습이 뭐가 되든 그것을 말할때 그대로 진리값이라 불러야 겠죠.
인간이 그 본연에 값을 알겠다고 내놓으면 그걸 법칙이라면서 내놓을 것이고.
모르면 그에 맞는 표현으로 우연이라던지 그렇게 말하겠죠.
그런데 세상이 법칙과 우연과 무엇으로 나눠졌다고 말한다는 것은 좀 인간편에서 대충 편리하게만 말하는 것이고 .
법칙이나 우연은 그냥 냉정 담담하게 봐서 인간이 세상을 대하고 대처하는 분류로 보는것이 맞겠죠.
댓글 0개 ▲
2018-12-01 00:06:45추천 0
설명을 하려면 해석을 해야죠. 그 말이 그 말인데 설명가능한건 법칙으로 불가능한건 우연으로.
댓글 0개 ▲
2018-12-01 03:11:26추천 0
현상은 존재의 시공간적 질서이며, 이 시공간적 질서를 인과율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에게 의미있는 인과의 유형은 네가지인데, 관성인과ㆍ충돌인과ㆍ선택인과ㆍ작용인과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강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평시에 강가에 주거하며 생존하는 것은 관성인과,
대홍수가 나서 집이 수장되면 충돌인과,
미리 대피 하든지 안하든지하는 선택인과,
둑을 쌓아 침수를 피하면 작용인과라 하겠습니다.

우연이나 인연은 예상치 못한 충돌인과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이 특이성을 갖는 것중 하나가 인과를 개척하는 작용인과적 능력의 축적에 있다하겠습니다.
댓글 0개 ▲
2018-12-03 13:14:42추천 0
전형적인 용어 혼선들로 보이네요.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혼선.
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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