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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미라주(탑-3)
게시물ID : readers_167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이안다
추천 : 1
조회수 : 2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21 16:31:07

 나라 밖 산 중턱에 있다는 삿갓 쓴 남자의 거주지는 누군가 찾으러 올것을 미리 대비라도 해놓은 듯, 가기가 쉽지가 않다. 산 깊숙이 들어 갈수록, 빽빽한 나무와 덤불 탓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가도 가도 보이는 풍경은 비슷하고, 산 밑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힘들고, 지도를 보는 것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나침반을 옆에 두고 지도를 뚫어지게 보는 시간이 늘어나도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총은 그녀를 습격하려는 산짐승들에게 유용하게 쓰인다. 며칠을 헤메며 차라리 의뢰를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수십 번을 스친다.

그리고 마침내, 이수가 그 마을에 닿는다.

덤불을 헤치고 산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바싹 마른 땅을 밟는다. 군데군데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이 보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 처음보는 사람이다!”

그녀를 발견한 아이가 그녀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그 아이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인다. 그들이 웅성거리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억양 탓에 알아듣기가 힘들다.

머리 위를 덮고 있던 무성한 나뭇잎과 가지가 갑자기 사라지자, 이수는 햇빛을 견디지 못하고 모자를 뒤집어 쓰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햇빛때문인지 유난히 희뿌옇게 보이는 강, 그 건너에 보이는 동굴.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강 위 나룻배에 앉은 삿갓을 쓴 남자.

왠지 익숙한 풍경.

마을 안에는 마땅히 가게 같은 것이 없는듯하다. 집집마다 밭이 있고, 마을 가운데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우물이 있다. 사람들은 커다란 나무통을 가져다가 그곳에서 물을 퍼가져 간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강에는 삿갓을 쓴 남자 이외에는 보이지를 않는다.

이곳은 외부인이 흔하지 않은 듯,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이 찾아오자 좋아 어쩔줄 모른다. 어디서 왔어요. 그 옷은 뭐로 만든 거에요. 아이들은 이수의 걸음걸음을 쫒으며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차분한 것은 아니다. 이수가 일찌감치 잠깐만 머물 생각이라고 말해놓지 않았더라면, 벌써 집을 짓기 위한 공사라도 벌여졌을 듯하다.

“혹시 머물 곳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이수가 마을 사람들에게 묻는다.

“왜? 여기서 살 생각이야?”

귀가 어두운 노인이 말한다. 이수는 피곤해 눈을 문지른다.

“그 청년하고 비슷한 사람인가봐요.”

아주머니가 그 노인에게 말하고는 이수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빈 집이라면 몇 개가 있으니, 맘에 드는 곳으로 고르면 돼.”

아주머니가 몇몇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나같이 창문도 없고, 대충 흙으로 바른 벽은 금이 잔뜩 가있다. 이수는 다 엇비슷해 보이는 집 사이에서, 책상이 있는 집을 고른다.

“아니, 잠깐. 저 집은 아니지.”

마침내 이수가 짐을 집 안에 내려놓으려고 하자, 중년의 남자가 끼어든다. “저 집은 엄연히 주인이 있잖아.”

“주인이라고 해봐야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가 몇 십 년인데 뭐. 자기가 이 집 주인인건 아나 몰라.”

아주머니가 말한다. 평범한 어조이지만, 주변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이수는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대충 감사 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저것 도와주겠다며 마을 사람들이 다가오지만, 다 거절해버린다. 라이플이 든 가방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도 다 내쫒는다. 문을 닫고 나서야 집 안이 제대로 들여다보인다.

자물쇠도 없고, 창문도 없는 창이라니. 머리가 아프다.

창문을 내다본다. 마을 바깥쪽에 있는 집인지라 강이 훤히 보인다.

삿갓을 쓴 남자가 나룻배를 타고 강물을 거스른다.

“이정도면 됐네.”

이수가 중얼거린다.

집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좁다. 방은 없고, 침대도 없다. 바닥은 그냥 대충 나무판자를 깔아 놓은 듯한 모양새이다. 어찌어찌하여 이불을 구하기는 했지만, 나무껍질로 만든 이불이 밤바람을 잘 막아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수가 보아왔던 마을과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수가 조잡한 책상위에 가져온 종이와 펜을 올려놓으니 그녀를 염탐하던 아이들이 신기한 듯 환호성을 지른다. 그녀가 가져온 새장 안의 새는 모두들 만지지 못해 안달이다. 이수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가방 안에 그것들을 넣는다. 이렇게 열린 곳에 놓았다가는 날이 세기 전에 가져온 것들이 바닥나지 않을까 싶다.

마을의 사람들은 외부인이 온 것이 그렇게 좋았는지, 아예 마을 한복판에서 축제를 벌인다. 집 뒤의 밭에서 채소들을 따고, 말린 고기를 가져온다. 억지로 이수를 앉혀놓고 사람들은 가져온 음식을 나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근데 바깥 사람들은 죄다 그렇게 커다란가?”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가 묻는다. “지난번에 그 청년도 그렇게 키가 크더만.”

“그 청년만 키가 컸지, 같이온 다른 사람들은 그닥...”

젊은 여자가 끼어든다.

“아냐, 같이 붙어 다니던 그 남자도 한참 크더만.”

그 남자가 말한다.

“이 전에도 밖에서 사람이 온 적이 있었나보죠?”

이수가 말한다.

“암, 어떤 청년이 사람들하고 같이 왔었지.”

남자가 말한다. “그게 언제적이더라. 이 마을 막둥이가 태어나기 전이니까...”

이수의 눈이 이 곳에 모인 사람 중 가장 어려보이는 아이에게로 집중된다. 그 애는 엄마로 보이는 자신을 안고 있는 여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흙바닥을 맨발로 뒤뚱뒤뚱 걸어다닌다.

“괜찮은 청년이었어. 아주 훤칠하고.”

나이든 여자가 말한다. “짐 하나도 제대로 못 들 것 같기는 했지만, 아주 맘에 들어서 내 딸 사위로 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는데 말이지.”

이수는 자기 옆에 앉아서 자꾸만 그녀의 옷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손을 떼어낸다.

“그래도 아가씨는 머리색하고 눈 색깔은 멀쩡 하구만. 난 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상한 색깔인줄 알았지.”

이빨이 없는 할아버지가 웅얼웅얼 말한다.

“맞아. 얼굴은 허여멀건 해가지고. 무슨 병이라도 걸린줄 알았다니까.”

아까 그 남자가 다시 대화에 끼어든다.

“아니지. 그것도 그 제일 커다란 청년 하나만 그랬지. 나머지는 얼굴이 좀 빨개서 그렇지 까무잡잡하더만.”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 원래 그런거였어? 나는 그 아저씨들은 죄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간가 했지.”

젊은 여자가 아까 그 아장거리는 아이를 다시 안으며 말한다.

“근데 그 커다란 청년하고 같이 붙어 다니던 남자는 뭐야? 아비로 보기에는 너무 어려보이던데.”

또 다른 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근데 이 언니도 얼굴 허여멀건한건 똑같아요.”

서커스단을 구경하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여자아이가 말한다.

“옷도 이상해.”

서너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낄낄 웃는다. “말도 이상해.”

여지껏 이수가 입을 연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적이 있었나 당황스럽다.

해가 다 진 뒤에야 사람들이 그녀를 놓아준다. 가로등도 없고, 횃불도 없으니 앞이 잘 보이지를 않는다. 하지만, 이수가 생각하기에 이 떠들썩했던 축제가 끝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어찌나 활기차게 즐겼던지, 그녀만 빼고 모두 제풀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몇 번이나 자리를 뜨고 싶었던 이수는 마침내 자유를 되찾아 머물게 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다. 나무판자로 대충 덮어놓은 바닥은 딱딱하고, 뚫린 구멍 같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산에서 노숙하는 것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지만, 지칠 대로 지친 이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명상하듯 눈을 감는다. 그녀의 총은 언제나 그녀의 손에 닿는 곳에 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엇비슷해 보이는 아주머니중 하나가 친근한 척 말을 붙인다.

“아, 그러고 보니 말 안 해준게 있는 것 같은데...”

어이쿠, 앉은채로 잠들면 어떡하나. 이수가 미동도 없이 있으니, 그녀가 잠들었다 생각했는지 아주머니가 중얼거린다. 그녀를 눕히려는 듯 오두막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와중에 가방을 넘어뜨린다. 쇳덩이라도 넘어진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수가 그 소리에 눈을 뜨니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다.

“저런, 저 소리 때문에 깼나보네.”

아주머니가 어쩔줄 몰라한다. 그런데 이건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무안한듯 중얼거리며 가방을 다시 세워두더니, 열어보려는 듯 다시 가방에 손을 댄다.

“만지지 마세요.”

이수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아주머니가 무안해하며 몇 번 사과를 하더니 밖으로 나간다. 누구나 열수 있는 조약한 문이 닫히자, 이수는 찬 바닥에 눕는다.

그날 밤, 이수는 의심스러운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뜬다. 흙을 밟는 발소리가 자꾸만 그녀가 있는 오두막 주변을 맴돈다. 창문으로 얼굴 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수염과 머리가 길고 지저분한 남자. 아까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곳에서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누구야.”

이수가 말하지만, 그 남자는 대답이 없다. 이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간다.

“누구야.”

이수가 반복하지만, 그 남자는 여전히 대답 없이 그녀를 빤히 들여다본다. 이수는 손을 뻗어 권총으로 가져간다. 그녀의 말은 조금의 떨림도 없다.

권총이 그의 얼굴에 닿자, 그는 뒷걸음질 치더니 도망가버린다. 이수는 눈으로 그의 뒤를 밟는다.

그의 발은 마을에 있는 오두막이 아닌, 강가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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